아이패드에선 노래가 흘러나온다. 어두운 방, 스탠드 하나만 켜 놓은 책상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본다. 분명 오늘 하루 종일 머릿속을 굴러다니던 글감이 있었는데. 그랬는데. 하나도,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메모장을 뒤적여도, 노트를 꺼내도, 소용이 없다. 이제 밤 12시.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없다. 생각이 날 때까지 일단 무엇이라도 써보도록 한다.
3월이 참, 많이도 힘들었다. 매일 밤늦게부터 시작한 업무는 끝이 없었고 나는 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기에도 하루가 바빴다. 연구부장이라는 위치는 성취감이라는 빛과 함께 중압감이라는 어둠을 가져다주었다. 스스로 하겠다 말한 일이었다. 누구 앞에서도 투덜거리기 힘들었다.
아끼고 아꼈던 3학년 아이들이 떠나가고 그 마음 제대로 달랠 새도 없이, 하필이면 그 건물, 그 반에 새로이 1학년 아이들이 자리 잡았다.
제이, 산초, 그리고 M, T. 많이 아끼고 사랑했던 아이들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자꾸만 나를 2025년으로 데려갔다. 녀석들이 써 놓고 사라진 낙서, 아직도 3학년 2반이라고 되어있는 바탕화면. 교실 뒤 '알림 게시판'의 '알'자가 떨어져 비뚤어진 게시판 제목. 심지어, 지난 12월. 아이들과 함께 만든 영상제의 홍보 포스터까지.
정신없이 수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녀석들의 흔적을 발견할 때면 나는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알아서 척척, 적당히 착착 해내던 녀석들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 같이 깔깔거리다가도 훌쩍이며 함께 나누던 순간들.
<노새 두 마리>라는 소설을 가르친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사라져 가는 것을 의미하는 '노새'를 아이들에게서 찾고 싶었다. "너희들에게 노새(사라져 가는 존재, 하지만 내게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존재)는 뭐야?"라고 물으며 멘티미터로 의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아이들의 대답 속에서 "선생님한테 받은 편지 아직도 갖고 있어요." 하는 말이 마음에 콕, 하고 박혔다. 2023년에 써 준 편지를 2025년까지 가지고 있다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그 덕분에 내가 무척이나 반짝이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아이들은 떠나고, 이제 <노새 두 마리>를 가르치지 않지만 작년 3월의 교실은 아직도 커다란 행복으로 남아있다.
버틸 수 있는 힘은 생각보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 나오는 법이었다. 올봄이 유난히 춥고, 시리고, 아팠던 것은 내게 '버틸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월 동안 아주 잠깐의 여유를 가진 후로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고, 한 편의 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2월엔 새로운 교직원에게 학교의 철학을 안내하는 3일간의 워크숍을 홀로 준비해야 했고, 3월엔 새롭게 시작한 학교의 모든 계획을 다시금 수립해야 했다. 나 혼자서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그것이 큰 부담이었다. 나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아내이기도 했으니. 온전히 나에게만 쓸 수 없던 나의 시간은 쪼개고 쪼개져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나의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시간을 빌려 주어진 일을 해내야만 하는,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모든 울적함의 시작은 내 것이 없음에서 비롯되었다. 글을 쓸 때, 책을 읽을 때, 다만 30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때 충만함을 느끼는 내게서 3월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사라진 시간의 자리엔 제출해야 하는 공문, 계획서, 수업 자료만이 남았다. 일을 사랑하지만 일은 내가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한들, 나를 채워주진 못했다.
우울했다. 울적했다. 아주 오랫동안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고. 아주 잠깐동안은 그만두고 휴직이나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에라 때려치우자, 내가 이거 이렇게까지 안 한다고 누가 뭐래? 하는 마음에 콱 멈춰버릴까 싶다가도 나를 내가 못 이겨 꾸역꾸역 버텼다. 하루에 4시간을 자고 출근하고선 커피 3잔, 4잔에 잠을 깨워가며 수업을 했다.
교무실 창문 너머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조금씩 들려올 때 즈음, 4월이 되었다. 얼추 급한 일들을 마무리하니, 문득 봄이었다.
흐드러진 벚꽃 잎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괴롭게 했나, 무엇이 그토록 나를, 깊은 심연에 빠지게 했나.
내 것.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글을 쓰고 싶어도 차분한 마음 상태를 만들지 못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일을 마치고 나면 아주 늦은 시간이나 아주 이른 시간이 되고 말아, 늘 글쓰기는 뒷전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지우며, 나를 갉아내며 일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 하지만 아주 확실히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글쓰기의 부재.
사실 어느 정도는 놓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무리 써도 투고해도 좋은 답이 돌아오지 않으니, 이제는 글쓰기로 뭔가를 할 생각은 접고 차라리 인정받는 업무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수업이나 업무에서는 제법 성과를 내고 있으니 딱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니. 적어도 시간 투자 대비 효과가 확실한 영역이었으니.
하나, 글이 사라진 곳에 채워진 일은, 그저 '일'이었다. 나는 어찌 되었든 나를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감정이든, 힘든 감정이든, 누군가와 겪었든, 혹은 스스로 다독였든. 내 안에 쌓인 크고 작은 감정의 조각들을, 일상의 흔적을 어떻게든 풀어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수업에선 할 수 없는 이야기. 동료와는 나누지 못했던 마음들. 그것들을 그러모아 글로 표현하는 일이, 나에게는 유일한 해방구이자, 나를 살리는 길이었던 것이다.
작년, 연구부장 1년 차에 일이 버거워 울고 싶던 순간에도 제이가 아직 중3이었을 때에, 함께 글을 쓰던 6월부터 11월은 누구보다 행복하지 않았나.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글을 쓰면서 새삼 심장의 쿵쿵거림을 느끼지 않았던가. 우리들의 책을 엮어 책으로 펴냈을 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고.
결국 나를 살리는 것은 글.
글을 써야 살았다.
글을 토해내야, 숨을 쉬는 사람. 그게 나였다.
이제는 돌아올 때.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음 깊이 남아있는 쓰고 싶은 마음을 끌어올리면 될 일이다. 마침 찾아간 공원에서 흩날리던 벚꽃 잎 하나를 손에 쥐었다. 떨어지는 꽃잎을 줍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 다지. 마음속 세 가지 소원을 간절히 빌었다.
-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세요.
- 2027년도 연구년, 부디 합격하게 해 주세요.
- 그리고 저, 글로 데뷔하는 작가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셋 중 하나만 이룰 수 있다면 주저 없이 마지막을 택하겠다 되뇌는 것을 보니,
어찌 되었든 평생 쓸 팔자인가 보다.
4월. 옷깃을 여미던 바람은 잦아들고
햇살이 조금씩 세상에 제 영역을 넓히는 계절이 되었다.
봄, 그래 봄이다. 나는 그 봄에, 그 시리고도 찬란한 봄에, 다시금 나로서 존재하겠다.
글을 써야 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