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수의 이야기

그때 만났던 아이들 (4) 글에는 순간의 제가 담겨있어요.

by 안녕

'여왕'이라는 필명을 만든 아이였다. 예전엔 공주가 되고 싶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왕이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지닌 여왕. 필명을 소개하는 짧은 글에서도 당당함이 느껴졌다. 녀석을 힘들어하는 선생님도 종종 있었지만 난 참 좋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자신감이 부러웠다. 수업에서 만나 더욱 가까워졌는데 원격과 대면 수업 모두에서 열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글 설문지를 보내주면 언제나 빼곡하게 작성해주는 정성, 패들렛에 과제를 올리면 누구보다 센스 있게 글을 올리는 능력. 모든 것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였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계획은 NO! 여행은 그저 발 닫는 대로!"라고 계획해 MBTI 강사님께서 저게 바로 ENFP의 모습 중 하나라고 하게 만든 아이이기도 했다. (나도 대학시절엔 ENFP가 나왔더랬다.) 사람 좋아하고, 글 쓰는 것 좋아하고, 특히 나를 좋아해 주는 덕에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혹은 보이는 정이 담뿍 쌓여갔다. 글쓰기 동아리 마지막 정예 멤버로 섭외했었고, 그와 함께 할 1년이 무척이나 기대가 됐다. 그래서일까. 친해진 아이들에겐 유난히 짓궂게 장난치는 나는, 해수에게 특히 장난을 많이 쳤던 것도 같다. 편해서, 좋아서, 친구 같아서.


3학년이 되어 학생회 생활을 하게 된 해수가 무척이나 바쁠 것을 알면서도 약간 독촉했다. 분명 힘들었을 일정에도 불구하고 자정 넘어서까지 빼곡하게 작성해준 설문지가 고마웠다. 우리는 30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분명 가까이 있는 기분이었다. 글로만 소통해도 마음이 통할 수 있구나, 새삼 느낀 밤이었다.


그 마음을 담아 해수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 본다.




1. 해수! 요새 어떻게 살아?

우선... 학생회가 많이 바쁘네요 :( 매일매일이 힘들고 또 보람찬 나날들... 방학부터 블로그에 글을 끄적일 생각을 했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실패해서 책부터 다시 접하려 2학기 개학부터 매일 방과 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요.

참! 학교 도서관이 카페처럼 완전 리뉴얼해서 책 읽을 맛 빵빵 나요!! 듣기론 1억 들였다 합니다. 인테리어 장난 아니에요. 쓰앵님 너무 그리워요. 참... 작년엔 국어시간이면 기대되고 즐거웠는데 요즘 국어시간엔 잠이 오네요..ㅜ.ㅜ

요즘 고등학교 수학을 선행하고 있는데 재밌긴 하지만 벅찬 것도 사실이에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시간은 적고 해야 할 것도 많아서 정신없지만 이것도 다 추억이고 경험이자 행복이라 생각하고 즐기는(?) 중입니다. 3학년이 되어 새 반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참 귀하고 소중한 애들이에요. 저랑 참 잘 맞는 애들이라 좋아요.


2. <이야기 창작반>을 들어오기 전에도 이야기를 써 본 적 있었어?

써보긴 했지만 어디에 내놓긴 좀 부끄러울 정도로 졸작이에요...ㅎㅎ


3. 소설이든 에세이든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네게 어떤 의미니?

이상이지 않을까 해요. 글을 쓸 때, 글로 하여금 저를 표현할 때는 제가 가장 완전하고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단어 하나 선택하는 것에도 수도 없는 고민을 하는데, 글을 쓸 때 고심 끝에 써 내린 문장 하나하나마다 제 최선이 담겨있는 것 같아 좋아요. 글에는 그 순간의 제가 담겨있어서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며 다시 읽었을 때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도 값진 것 같아요.


4. 2020년에 <이야기 창작반>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 (좋은 것이든 힘든 것이든)

재혁이랑... 여러 이유로 말다툼이 (많이 심하게) 오간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워낙 자극을 추구하는 저인지라...^^ 아직도 그 일 생각하면 좀 후회가 남아요. 둘 다 어렸고 어리숙해서 나름의 배움이 되고 좋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이 서로에게 상처만 됐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지금 제 기억에 재혁이는 좋은 아이이니... 잘 살고 있지 않을까요? 저만큼 즐겁게 살고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편집하면서 한 번 날려먹은 것도 참 제게 신선하고 큰 충격이라 아직도 생생하네요. 물론 편집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누른 엔터가 아직까지도 제 머릿속에서 딸깍거리네요.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ㅠㅠ!


5. <이야기 창작반>을 통해서 얻은 것을 적어 본다면?

추억, 경험, 즐거움 같은 나름 뻔한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도 있겠지만 제게 이야기 창작반은 이런 추상적인 것들보다 훨씬 값지고 귀한 선생님을 줬죠.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산다.'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경험보다 값진 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힘이고 가치이자 자신감의 원천이거든요 :) 이야기 창작반의 늦은 밤 넘어가는 달과 동터오는 아침을 담은 책 두 권도, 무엇보다 오랜 숙원이었던 <시간을 파는 가게> 완결이라는 값진 결과물을 얻었죠!


6. 우리가 공식적으로 두 권의 책을 냈는데, 책을 내고 난 후 내게 찾아온 변화가 있을까? 있다면 무엇인지 자세히 적어줄래?

가끔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보고 희미하게 걸리는 입가의 미소, 책을 냈다는 뿌듯함 정도일까요. 이야기 창작반 때까지만 해도 책도 냈으니 본격적으로 더 글을 열심히 쓸 거라 생각했지만 제게 생긴 변화는 '책도 냈으니' 하는 마음에 게을러진 제 모습? ㅎㅎ


7. 지금도 혹시 자주 글을 쓰는지 궁금해. 쓴다면 어떤 글을 쓰는지?

요즘은 시간 부족으로 못 쓰고 있지만 블로그를 열게 된다면 장르 가리지 않고 다 도장 깨기 하듯 써볼 예정이에요!


8. 중학교 시절 <이야기 창작반>과 같은 프로그램을 또 한 다면 언제, 어떤 학년에 해보고 싶어? (고등학교도 상관없어.)

안타까운 말이지만 제가 목표하는 대학입시 때문에 아마 같은 프로그램이 고등학교 때 있다면 학업 때문에 참여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건 씁쓸한 일이네요... 조금 현실감 없이 얘기해보자면 고3... 10대의 마지막을 글로 치열하게 남겨보고 싶어요.


9. 마지막으로 나도 너희들에게 시를 한 편 띄운다. 보고 싶다. 내 제자들. :-)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저도 제가 읽던 책 중 좋아하는 구절 올려봐요.


나는 늘 우리가 있었던 곳에 서 있을게.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면 웃으며 반겨줄게.

그러니 그날처럼 다시 와.

처음 사랑하는 것처럼 사무치게 사랑할 테니.





작은 질문에도 이토록 성실하게 제 색깔을 담아서 보내줄 줄 아는 아이. 그러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쓰면서 제 스스로를 발견해 나간다는 말이 너무도 나와 같아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난, 해수가 참 좋았다. 물론 지금도.


자기주장이 강하고 목소리가 큰 편인 해수가 재혁이란 아이와 소설을 쓰면서 많이 싸웠던 기억이 난다. 재혁이란 아이도 꽤 유쾌하고 괜찮은 아이인데 글을 쓰면서 갈등이 많아 힘들어했던 것 같다. 당시 자세히는 몰랐는데 얘기하는 걸 보니 꽤나 심각했던 모양이다.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둘을 불러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괜찮아, 선생님이 지금 미래에서 왔는데, 너희 그 작품 완벽하게 완성해서 책도 내더라, 하고 말해줄 테다.


사실상 우리는 앞으로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무척이나 낮을 것이다. 헤어지고 난 후, 엄청난 의지가 있어야만 서로 만나게 된다는 것을 10년 동안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삶의 반경도 무척이나 달라서 아마, 우리가 우연히라도 다시 만날 확률은 0.001%도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이렇게 글로 가끔 소통해도 온전히, 충분히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 그래서 2년 전의 나를, 1년 전의 나를 잘 살았다고 다독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선생님이 쓰는 에세이가 꼭, 잘 되길 바랄게요.라고 덧붙여주던 해수의 바람대로, 이 글이 엮어 책이 된다면 좋겠다. 나만 알고 있는 해수의 매력을 나눌 수 있게.




Photo by Ashton Mulli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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