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만난 아이들 (3) 글쓰기는 보이지 않는 행복이 글로 보이는 것
본능적으로 feel이 느껴지는 아이가 있다. 얘는 왠지 나랑 잘 맞을 것 같아, 깊이 있게 이야기를 해보면 잘 통할 것 같아, 하는 느낌이 드는.
나름 촉이 잘 발달된 나는 매년 아이들을 새롭게 만날 때마다 반에 '느낌이 통할' 아이들을 꼭 발견하곤 했다. 한두 번의 대화만으로 찾아낸 그런 아이들은 대게 나와 무척이나 잘 맞았다. 좋아하는 웹툰이 같다든지, 취미가 비슷하다든지, 지나온 경험치가 비슷하다든지. 그러면 나는 마치 그 시절 친구를 만난 것처럼 살갑게 대했고 대부분 나의 그런 관심을 좋아했다.
Hee는 바로 그런 아이였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나와 잘 통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은 그런 아이.
<이야기 창작반> 첫 시간에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앉아있던 녀석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다소 경직된 얼굴은 마스크 뒤에 숨긴 채, 어떤 것이든 열심히 듣겠노라 다짐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예의, 예절에 대해 둔감한 요새 아이들과 다르게 항상 조심스럽고도 섬세하게 다가오는 모습에 매번 감동받기도 했다. 훗날 작가가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결이 비슷한 녀석이란 것을 알게 되며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2학년 때에는 1년 동안 수업에서 함께 했다.
"선생님,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국어 시험은 정말 잘 볼게요!”라고 다짐하며 교과서 빼곡히 필기를 하던 Hee가 이 인터뷰에서 빠질 수 없었다. 3월 경, 애들이 다 선생님 보고 싶어 한다며 눈물 흘리던 카톡 메시지 위로 새로운 이야기가 쌓여갔다.
1. 요새 어떻게 살고 있어? 얼른 썰을 풀어 봐! ^^
저는! 요즘 글쓰기를 많이 하고 싶지만 그렇지는 못했고 블로그를 개설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거기에 짧은 글을 쓰고 아이디어도 기록해보려고요. 그리고 방학 동안 고등학교 생각도 해보고 영상편집도 해서 유튜브에 게시도 해보고...ㅎㅎ 좀 슬픈 건 글을 많이 못썼다는 것...ㅠㅠ 벌써 2학기라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ㅠㅠㅠㅜㅠㅜㅠ (제 친구들 다 한 번씩 코로나 걸렸는데 저는 진짜 슈퍼항체인지 한 번도 안 걸리고 정말 건강해요!!)
2. 혹시 <이야기 창작반>에 들어오기 전에도 이야기를 써본 적이 있었니?
살짝 애매한데, 전에는 글을 썼다기보단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적었어요. 완결한 작품은 없고요!
3. 소설이든 에세이든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네게 어떤 의미야?
제 꿈을 써 내려가는 것, 보이지 않는 행복이 글로 보이는 것
4. 2020년에 <이야기 창작반>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 (좋은 것이든 힘든 것이든)
제가 꼭 쓰고 책으로 내고 싶었던 글이 있었는데 그걸 마감시간까지 완결을 못하고 너무 많이 남아버려서 결국에 시로 대신 작품을 넣은 게 기억에 남아요. 그때 되게 슬퍼서 아직도 제일 먼저 기억나요ㅋㅋㅠㅠ
5. <이야기 창작반>을 통해서 얻은 것을 적어 본다면?
책 다 쓰면 ‘어디서 출판해야 하지?’라는 상각을 자주 했는데, 이야기 창작반에서 글을 쓰고 책을 직접 내봤으니 궁금증이 풀려서 한결 수월해졌어요.
6. 우리가 공식적으로 두 권의 책을 냈는데, 책을 내고 난 후 내게 찾아온 변화가 있을까? 있다면 무엇인지 자세히 적어줄래?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도 같이 보고 생각하는 게 한층 더 높아진 것 같아요.
7. 지금도 혹시 글을 자주 쓰는지 궁금해. 쓴다면 어떤 내용이야?
짧게 설명하자면요!!! (이후 이야기는 분명 나중에 작품으로 공개해 줄 것이라 믿는다!)
8. 너에게 중학교 생활은 어떤 의미일까?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버린 행복한 나날들
9. 오랜만에 글로 소통하는 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적어줘!
우선 쌤! 잘 지내셨나요? 저는 예상과는 너무 다른 1년을 보내서 살짝 당황한감이 있긴 해요ㅋㅋ 제가 근래 글을 많이 못썼거든요..ㅠㅠ 쌤 매주 한 편 에세이를 쓴다고 하신 거 너무 멋져요. 저도 얼른 글을 막 쓰고 싶은데 학교 숙제에 학원 숙제, 비교과 과목도 공부해야 하고 공부할 시간도 부족해서 너무 슬퍼요..ㅠㅠ 그래도 다시 힘내서 짬짬이 글 쓰려고요!
이런 연락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2, 3학년 때 선생님이랑 하는 수업들은 저한텐 다시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 같았어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저도 여러 장르의 글도 써보고 백일장도 나가보고 싶어요ㅎㅎ.
앞으로 많은 경험도 해보고 글도 쓰면서 열심히 성장하겠습니다!!!
추신) 후에 글이 중반부로 달린다면 중간 점검으로 글 쓴 거 피드백해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쌤... 항상 사랑합니다.
10.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시를 한 편 띄운다. 보고 싶어! 내 제자들! :-)
저도 시를 한편 짧게 써보겠습니다...ㅎㅎㅎ
비록 제목도 없는 짧은 시지만..ㅎㅎ
힘든 시간들을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힘든 시간들을 행복했던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힘든 시간들을 미래에 행복한 날들로 덮어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힘든 시간들을 후회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새벽녘에 작성했다던 글은 그 자체로 녀석이었다. 사람의 성향이 글에서도 느껴진다면 녀석의 글은 맑고 따뜻한 구름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작가가 되고 싶어 앞으로의 진로를 문예창작학과로 정했다던 말이 떠올랐다. 열심히 글을 쓰고 싶은 욕심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녀석이 나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선생님에게 글을 배운다면, 분명 좋은 작가가 될 것만 같다.
요새 쓴다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으나 이곳에서 다 공개할 수는 없어 가리기로 결심했다. 대신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부치니 제 마음을 담은 시를 보내온 것에 또 한 번 뭉클하여 녀석의 시는 원문 그대로 싣는다. 글엔 그 순간의 마음이 담기기 마련인데 '힘든 시간'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요새 조금은 힘든가 보다.
당장 몇 년 후, 교보 문고든 밀리의 서재든 어느 곳에서든 Hee의 이름 석자가 적힌 책 한 권이 나타난다면 나는 기꺼이 구매하곤 연락할 것이다. 너는 그럴만하다고, 더할 나위 없다고 덧붙이면서. 싸인이 담긴 책이 서재에 꽂히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 같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행복한 나날들 중 한 페이지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추신 : 앞으로 한 명의 인터뷰를 더 싣고 이어서 고군분투했던 <나도 작가다> 이야기가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