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너는 기억 안 나겠지만
엄마와 아빠는 연애할 때부터 새해가 되면 꼭 하던 일이 있어.
바로, 새해 첫날에 서점에 가는 것이지.
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는, 둘 다 한 때 꿈이 작가였거든.
그러다 보니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그날에 서점에 가서 서로가 원하는 책을 사는 것,
혹은 선물해 주는 것이 큰 의미였어.
그건 네가 태어나서도 마찬가지였단다.
하루 이틀 차이가 있을지언정 가지 않은 날은 없었어.
그림책 한 권, 만화책 한 권이라도 꼭, 손에 들고 돌아왔지.
그런 날이면 너를 일찍 재우고
엄마와 아빠는 책을 읽곤 했어.
물론, 그마저도 네가 울어 버리면 멈추곤 했지만.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어.
수십 권짜리 전집보다는
네가 직접 고른 책 한 권이 주는 행복함을 선물하고 싶었어.
이제 너는 대부분의 한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있기에
책 표지와 목차를 보고 고른 네 첫 책을 선물하고 싶었지.
마침, 문화상품권도 있었고
엄마도, 아빠도 살 책이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어제 서점에 달려간 너는
아직은 책보다는 장난감이 좋았나 봐.
네가 좋아하는 티니핑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장난감 코너를
벗어나질 못하더라.
몇 번이고, 책을 사자, 책을 보러 가자, 설득해도 엄마 말은
귀에 잘 안 들어오는 듯싶더라고.
속은 상했지. 엄마에게는 딸과 함께 책을 골라 카페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뭐 그런 로망이 있었거든.
너도 나처럼, 혹은 아빠처럼 책을 좋아하길 바랐단 말이지.
그런데 아직 어린 너는,
책보다는 장난감이 더, 좋았을 거야.
그래서 한참을 장난감을 구경하고,
책은 사실 한 권도 고르지 않고
집에 왔어.
집에 와서
엄마와 아빠의 책은 있는데
자신의 책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넌,
펑펑 울었지.
"나도 공주 책 사고 싶었단 말이야~~~." 하며
한 참을 울었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옆집에서 놀랄 정도로.
네 손엔 분명 아빠가 직접 골라 선물한 책이 있었는데도 말이지.
화가 났어.
"그러니까 아까 고르라고 할 때 골랐으면 됐잖아."
라는 말에 감정을 빼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되더라.
아마 서점에서 너를 설득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아.
아빠의 중재로
인터넷 서점으로 원하는 책을 골라 사기로 결정하곤
일단락되었지만, 엄마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
딸아.
사랑하는 나의 딸.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너에게 변하지 않는, 하지만 사실 너무나 작고 소중해서 보잘것없는 것들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어.
클릭 한 번에 원하는 책을 사고
언제 올까 기다리는 것보다는
엄마 손 잡고 찾아간 서점에서
한참을 고르고 골라 사 온
그림책을 아끼고 아껴가며 읽는 일의 소중함,
1,000장씩 되는 색종이를 사서
아무렇게나 쓰는 것보다는
동네 문구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직접 돈을 내고 사는 일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
그래서, 엄마는
너와 많이 다니고,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고 싶어.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거든.
그날, 서점에서 네가 고개를 조금만 돌려
책을 골랐다면 느꼈을 감정이라는 게 있는 거거든.
그래서 엄마는,
네가 결국 책을 샀지만
어쩐지 아쉬워.
그 안엔 한참을 고민하고 고르고
생각하고 망설이고
결정했다 취소했다
다시 결정하는 네 마음이 없는 것 같아서.
두 손 가득 책을 안고 돌아오는
네 발걸음 속에 담긴
설렘이 사라진 것만 같아서.
그러니까 딸.
우리 앞으로는 순간에 집중하자.
하기로 한 것에 함께 발을 맞춰 가보자.
그래야, 뒤늦게 후회하고
다시 돌이키고,
그래서 또 후회하는 일이
덜 생길 테니까.
사진: Unsplash의Fang-Wei 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