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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Nov 13. 2019

왜 그곳이었을까

실론티가 홍차 인지도 몰랐던 시절의 나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고 나만 바라보던 일들이 산더미 같았다. 이런 여름휴가 따윈(?) 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가느니, 차라리 한국에 남아서 하루하루 일하고 저녁에 맥주 한 캔 하고 말지... 심지어 이번 여름휴가는 스리랑카로 간다. 그것도 아빠 환갑 기념으로!!!!!!


 원래 하와이로 가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던 내가 부모님께 비행기 티켓을 쏘겠다고 생색을 내며 하와이를 적극 추천했다. 중국이나 동남아로만 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너무 좋은 하와이에 꼭 모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병은 내 동생이었다.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내 동생이 덜컥 여행을 앞두고 코이카에 합격되어 스리랑카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그러자 따님들을 너무 사랑하시는 우리 아빤 둘째 빼고 여행을 갈 수 없다며, 어차피 자신의 환갑 기념이니 스리랑카로 목적지를 바꾸시겠단다. 


'아니, 무슨 스리랑카!!!!! 왜 거길 가냐고!!! 거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잖아!!!!!'


이렇게 느낌표의 수만큼 부모님께 언성을 높이진 않았지만, 꽤 많이 아주 너무 정말 탐탁지 않았다. 비행기표 사겠다 한 거 바로 없던 일로 하고 싶었고, 일도 바쁘니 난 빠질까 싶었다.


게다가 가기는 또 어찌나 힘든지, 일주일에 몇 번 없는 직행을 놓친 우린 여러 번 나라와 나라를 거치며 그곳에 도착했다. 실론티의 나라, 스리랑카에!


스리랑카에 도착하기도 험난 했지만, 동생 집에 도착하기까지도 그다지 편하진 않았다. 물론 여행 다니던 내 내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저녁에 도착해 밤 동안 차로 울퉁불퉁한 길과 매끈한 길을 번갈아 가던 우린 와라카폴라라는 작은 동네에 있는 동생네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뭔가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떨어진 느낌이랄까. 사교성이 좋으신 우리 아빠는 아침부터 말도 안 통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시는데, 난 이 상황이 실제인지 체감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주인집 아주머니는 내게 뭔가를 건네셨다. 그 유명한 실론티 한잔! 


'세상에, 이렇게 아침부터 더운데 차를 마시라고?!'


하지만 자연스레 나는 두 손을 내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도 녹일 듯 따뜻하게 그것도 방긋 웃으시며 달그락 거리는 찻잔을 내미시는데 어찌 안 받을 수가 있었을까. 그렇게 내게 전해 주신 그 한 잔은 내게 잊지 못할 한 잔이 되었다. 내가 마셨던 정말 맛있던 첫 홍차이자, 아직도 생각나는 한 잔의 차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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