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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Nov 17. 2019

원래 나의 드림잡은 아니었다

차를 만나기 전의 나

"요즘 어떻게 지내?"

"차 관련 일 하고 있어요"

"오 그래? 난 미정이가 자동차에 관심 있는 줄 몰랐네!"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매번 설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번거롭다거나 싫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오히려 그로 인해 차에 대해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나마 이제는 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도는 많은 지인들이 알고 있어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다. 원래 이 일이 내가 꿈꾸던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나의 꿈꾸었다 이루고 지나온 상태였다.

그 꿈을 이루던 중 차를 만났다. 그리고 차가 나를 이리로 데리고 왔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라디오를 달고 살던 나는, 이 세상에 항상 음악이 틀어져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나름 많이 좋아했었다. 라디오를 정말 좋아해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좋아하던 국어 선생님께서 내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진심을 담아 감싸며 만류해 (자신의 친구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너무 힘드니 너는 그 길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졌거나 아니면 내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 길은 선생님의 우려를 받아들이고 일찍이 접었다. 그리고 찾은 건 당시 패션잡지에서 찾은 음반사 직원의 인터뷰였다. 팝을 좋아했던 터라 외국계 음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던지. 더군다나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고 몰래 다녀온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공연을 보러 갔다가, 그 인터뷰를 하신 분을 직접 만나 인사까지 하고 나니 더 뚜렷해졌다.


그 뒤로부터는 나름 일사천리였다. 대부분 영어로 소통하는 팝스타들을 만나려면 영어를 해야 하니까, 대학은 영문과를 선택했고, 하와이로 교환학생으로 가서는 음악수업과 마케팅을 듣고, 라디오 방송국의 인턴을 했다. 영어를 더 잘해야겠단 생각에 통역 수업도 빠질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내가 세운 목표를 위한 것들이었다. 한 점으로 모든 것을 모았던 것이다.  


하와이 라디오 방송국에서의 생활은 아주 정점을 찍는 계기가 되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벅찬 상태로 둥둥 떠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 곳에서 만난 친구들을 덕분에 내 프로그램의 DJ를 하고, 행사 때는 디제잉도 하는 등 교환학생을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닌 라디오 방송국을 위해 다녔다. 


꿈같은 하와이 생활을 지내고 서울에 오니, 살갗을 스치기만 해도 아픈 바람이 쌩쌩 부는 시베리아 벌판 같았다. 요즘이 더 심한 취업난으로 많은 젊은 영혼들이 고생하고 있지만, 나름 나도 그 시기의 시초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지원하는 족족 떨어졌다. 인터뷰까지 봐도 음반 몇 장만 쥐어주고 끝나는 것이 일쑤였다.


다행히 그 와중에 작은 음반사 겸 공연기획사인 곳에서 나를 거두어(?) 주셨고, 주말에 불려 다녀도, 새벽 3시에 끝나도, 심지어 너무 적은 월급을 안겨주어 아빠 몰래 엄마한테 돈을 꾸게 되어도 나름 행복하게 다녔다. 당시에는 내가 들어오기 힘든 이 음악 업계에 발을 디딘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2년을 다니고, 내가 꿈꾸던 음반사로 이직을 했다. 처음으로 메이저 회사로 오는 것이 많이 두려웠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며 5년을 더 음악과 함께 일했다. 하. 지. 만. 너무 바빴다. 전보다 더 바빴고, 나 자신이 부족해 바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를 채울 생각만 하던 때였다. 그럴 때마다 떠오른 말이 있었다.


"음악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즐겁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


배철수 아저씨의 말씀이었다. 이직하고 얼마 안돼서, 라디오 방송국 관련 분들과 여러 음반사 분들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우리 보고하신 말씀이었다. 그날도(!) 우리 회사 사람들은 장소에 늦게 도착했다. 아마도 다른 일을 처리하다 늦었을 것이다. 늘 바쁜 이미지였던 우리 회사 사람들은 매번 많이 늦긴 했었다. 근데 그 날 우리가 뭔가 더 힘들어 보였던지, 아니면 평소 아저씨를 만나며 맨날 쫓기며 다니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그랬던 건지, 어떤 연유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 말은 내 맘 속에 콕 박혔다. 그리고 난 그 뒤로 아저씨의 팬이 되었다. 아저씨를 뵙는다는 말에 눈망울이 커지던 엄마를 보고 그러려니 했는데, 정말 멋진 아저씨셨다. 


'그래, 내가 즐거워야 다른 사람들을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지 않겠어?"


여러모로 힘들고 내가 일로 인해 즐겁지 않을 때마다 아저씨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더 이상 무슨 짓을 해도 나의 일들을 더이상 내 자신을 즐겁게 만들 수 없단 것을 알았을 때, 난 퇴사를 결심했다.


생뚱맞게 돌아와 다시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그러고 나서 내 업으로 생각하는 것은 차이다. 자동차 아니고 마시는 차! 그리고 이거면 내가 즐겁게 즐길 수 있고, 그러니 더 즐겁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 계속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이렇게 차에 대한 글도 쓸 생각을 하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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