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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Nov 17. 2019

다시 시작하던 그때

다시 만난 차가 전해준 새로운 꿈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티소믈리에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 여행을 다녀온 후, 그 홍차의 맛을 잊지 못해 자꾸 생각이 났다. 그렇게 차가 궁금해져 티소믈리에 자격증을 덜컥 따보았다. 어디에 쓸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은 그냥 차를 공부하고 싶어서 수업 등록을 했고, 이왕 듣는김에 자격증도 따고 싶었다. 자격증은 따 놓았지만, 차에 대해 딱히 자신도 없었고 내가 그렇게 차를 많이 마셨던 때도 즐기던 때도 아니어서 더욱 차에 대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 자격증은 내가 추후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어느 카페든 아르바이트 자리에 지원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살짝 든든해지는 그런 종이 한 장이었다.


다른 직장을 구해놓지 않고 그만두는 나에게 걱정의 시선을 주는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보통은 나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긴 했다. 나를 진짜 생각해 주는 사람들은 그렇게 까지 걱정하진 않는다. 오히려 나를 믿어주려고 하지. 나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겠지만, 걱정 중 가장 큰 걱정은 이것이었다.


내가 더 이상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

내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있지만 이전의 것만큼 올인하고픈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직접 연주하거나 만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음악을 듣는 것을 꽤 많이 좋아했다. 그래서 관련 일을 하고 싶어 뛰어들었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밌고 자부심이 생길 만큼은 일을 했다. 근데 이것을 박차고 나왔을 때의 두려움은 이것만큼 좋아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택할 수도 없었다. 한 번 좋아하는 것을 했더니,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하는 건 정말 싫었다.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면 했지, 생뚱맞은 일을 정규직으로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찾았다. 나의 일을! 마치 고등학교 시절도 돌아간 것 같았다. 10대 후반의 나 역시 딱히 하고 싶은 것은 없었다. 무작정 인터넷에 있는 직업리스트를 프린트해하기 싫은 것에는 빨간 줄을 치고, 그나마 괜찮은 것은 파란색 세모를 치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도 정말 하고 싶어 동그라미를 치던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무작정 음악을 듣고, 라디오를 듣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기만 했지, 음반사를 생각했던 것은 한 참 후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찾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시작했다. 10대의 마음으로... 복잡하고 답답한 시간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책도 많이 읽고, 체험과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던 중 계획해 놓았던 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퇴사 후 다들 하는 그런 여행이긴 했다. 그냥 쉬기 위해 바로 떠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 몇 달 후로 잡아놓았는데, 벌써 그 날짜가 다가온 것이다. 왠지 그냥 여행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테마가 필요했다. 가고 싶은 나라도 그렇게 정했다. 그때의 테마가 바로 '차'였다. 


첫 나라는 스리랑카였다.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다시 한번 가고 싶기도 했고, 차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시절 다녀온 그곳을 떠올릴 때면 '차와 관련된 곳을 다녀왔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라고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조건 한 달은 그곳에 있을 생각으로 한 달의 일정은 스리랑카로 꽉 채웠다. 이후 차를 처음으로 유럽에 들여왔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차로 너무나 유명한 영국과 프랑스, 차를 즐기는 나라 중 하나인 체코도 함께 넣었다.


그러다 뭔가 차를 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막연히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차를 공부할 때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자꾸 나서 차를 공부하고 오면 더 즐겁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처음엔 스리랑카를 알아보았지만, 다원은 많아도 교육적인 기관은 딱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다음은 막연히 좋아하던 프랑스, 사실 그곳에 더 머무르다 오고 싶은 맘에 더 찾아봤지만 거긴 수업을 프랑스어로만 진행한다기에 패스! 그러고 나서 찾은 곳이 바로 영국이다.


영국에서 차를 배우면서 비로소 나의 방향을 찾았다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나의 첫 차 선생님, 제인 페티그루 선생님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꽤 연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항상 생기 넘치고 활발한 모습으로 우리는 대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그 에너지만으로도 언제나 우리를 기분 좋게 하셨다. 거기에 차를 시음할 때면 'Lovely!'라고 감탄하시며 차 한 잔을 진지하면서도 기쁘게 또 맛있게 드시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저게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었다. 근데 정말 차를 좋아하셔서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만나면 만날 수록 느껴졌다. 차 업계에서 유명한 분 중 한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늘 배우고 탐구하시려는 자세, 그리고 차를 대하는 자세와 더불어 차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어 하시는 모습에 감명했달까. 그렇게 선생님을 초롱초롱하게 쳐다보던 나는 선생님과 같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짐이 되고, 그 다짐은 나의 새로운 꿈이 되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난 아직은 너무나 부족하지만, 꼭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같이 공부하던 한 친구가 선생님께 여쭌 적이 있다. 선생님께선 스스로의 호칭을 어떻게 말씀하시냐고. 선생님께선 본인은 차를 가르치고 학문적으로 다가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티 마스터(Tea Master)'까지 되긴 힘든 것 같다며, 그런 티 마스터는 정말 차를 직접 재배하고 그로 인해 더 잘 아는 분들만이 쓸 수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기에 자신은 '티소믈리에(Tea Sommelier)' 정도가 맞을 것 같다고. 그래서 나도 티소믈리에가 되기로 결심했다. 선생님께서도 그 호칭을 쓰시기에 부족하단 느낌으로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에 비해서는 아직 한참 부족하기에 티소믈리에라기보다는 티소믈리에 주니어 같은 느낌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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