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일이 된 비극
이건 꽤 슬픈 이야기다. 내면의 농밀한 고백이라 개인적으로는 눈물 닦을 휴지가 필요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소 공감이 어려워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는 차라리 혼자 읽을 일기에나 적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20대에 작곡할 때면 기타든 피아노든 멜로디언이든 소리 나는 물건만 쥐어주면 종일 새로운 멜로디를 면발처럼 뽑아댔다. 악기가 없어도 멜로디는 뇌에 한가득 채워져 있어서, 상대방이 나를 미친놈으로 여기지만 않는다면 대화도 뮤지컬로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원하면 하루에 20곡이고 30곡이고 작곡할 수 있었고 그렇게 작곡했던 날도 있었다. 영감은 한순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곤 했다. 멜로디와 감성을 흘리지 않고 담으려 5분 안에 작곡했고, 늦어도 30분 안에 악기 구성과 스캣 보컬을 녹음해 순간의 뉘앙스를 움켜잡아야만 했다. 그건 마치 낚은 고기가 죽기 전에 아프지 않게 바늘을 빼고 물 담긴 보관통에 넣어두는 과정과 비슷했다. 나는 100년 전 화가 클로드 모네가 찰나의 인상을 그림에 담아내던 마음을 이해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뉘앙스는 느슨해지고, 영감은 엉망이 되어버려 가이드 녹음은 대부분 단번에 끝내버렸다.
30대가 되어 음악적으로 보다 원숙해져서 영감이 길게 지속되었다면 축복이겠지만, 불행히도 영감은 여전히 찰나인데 열정마저 쪼그라들어버려서 제대로 담아내질 않았다. 그저 드라마든, 앨범이든 운 좋게 기회가 나면 창작 당시의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 써먹을 요량으로 대충의 희뿌연 스케치만 하곤 던져버렸다. 작곡해둔 곡이 2천이 넘지만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발표곡이 600여 곡이 채 되지 않는 이유도 열정 없음과 곡 작업 공포증 때문이다. 그렇게 삭혀뒀다 나중에 꺼내어 부르고 연주한 곡은 불행히도 처음 창작의 의도나 감정과는 멀어졌고, 식어버렸거나 밍밍한 결과물이 나오기 일쑤였다. 피처링 보컬에게 노래를 맡기거나 세션 멤버들에게 연주를 넘기면, 더 심한 경우 디렉팅도 거의 하지 않은 채 편곡을 맡겨버리는 때면, 메시지와 이미지의 희석은 더욱 심해져서 그런 곡에서는 IMF 시절 군대에서 먹었던 멀건 김칫국 같은 맛이 났다. 그런 곡이라고 애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열정 없는 곡에 애착보다는 후회와 미련이 더 끈끈하게 붙어 질척댔다.
세상에 새로 접하는 것이 드물어짐과 더불어 감정의 기복도 하류처럼 완만해진 40대가 되고부터는 멜로디가 떠올라도 작곡을 하지 않는다. 기타를 튕기다 영감이 몰려와도 따로 적거나 녹음해 ‘살려두지’ 않고 순간만 즐기고 매정하게 ‘버렸다’. 물고기를 낚고도 인심 좋게 다시 바다에 풀어 놓아줬다기보다 무심하게 물 없는 땅에 던져 말라 죽였다는 게 더 적당한 비교 같았다. 의도적으로 저장/보존 상황을 피하기까지 하는 데 뭔가 거창한 창작의 고뇌 같은 명분이 있었다면 그럴듯했겠지만, 빌어먹을 게으름 외에 딱히 이유는 없었다. 여전히 창작의 샘은 마르지 않았고 곡의 가치를 모름도 아니며 내 자작곡이 싫어서나 별로 여서도 아니다. 성의 없어 보이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마인드랄까.
실험실 원숭이에게 퍼즐 놀이를 던져주면 주체적으로 풀며 활기차게 노는 데 반해, 퍼즐을 풀어야만 보상으로 먹이를 주면 퍼즐을 푸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배고프지 않으면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내재 동기에 관한 심리 실험이 있다. 단명한 유명 DJ 아비치Avicii는 관중을 들썩이게 만드는 공연으로 유명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공연을 극도로 꺼려서 나중에는 매니저와 마찰을 빚거나 건강을 이유로 공연을 취소시키곤 했다.
나는 절감한다, 놀이가 일이 된 비극을. 나는 절감한다, 놀이가 일이 된 죽음을.
음악이 일이 되어버려 한스럽다.
좋아하던 음악으로 돈을 받음으로써
동시에 나는 저주받았다.
열정 없는 창작에 침을 뱉어라.
*표지 : <기타백을 든 뮤지션, 큰아빠くなぱ.> 조카 주리Juri 양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