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소환하는 음악

by tearliner

음악은 추억을 소환한다. 어떤 음악은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 특정 장소와 날씨, 함께 있던 사람, 당시의 냄새나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떠오르게 한다. 마치 최면을 걸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저 깊이 있던 추억이 불쑥 수면 위로 솟는다. 옛 연인과 즐겨 듣던 곡이 흐르면 그리움이든 애수든 혹은 회한이든, 감정은 다를지언정 당시의 이미지와 함께 추억은 짙게 밀려온다. 월드컵 응원가처럼 시대 트렌드에 접목되어 세대에게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개개인의 다른 삶과 경험에 따라 같은 음악을 들어도 서로 다른 감정을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특별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자신만의 주제곡이 존재한다. 기억과 연계된 특정 음악은 한 추억을 꺼내는 그만의 맞춤 열쇠다. 그날, 그 장소, 그 사람을 떠올리고 싶으면 이어폰을 꽂고 그에 맞는 열쇠를 찾아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된다.


뮤지션 이전에 지독한 록키드였고 여전히 음악광인 나에게도 추억에 젖게 만드는 음악들이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카펜터스Carpenters의 노래를 들으면 비 내리는 버스 차창 밖을 보던 학생 시절로 순간 이동하고,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노래를 들으면 대학생 때 읽었던 소설 <모비 딕>의 장면들이 떠오르며, 스미스The Smiths의 노래를 들으면 군 병장 시절 야간 근무하던 경계 초소가 어제 일인 것처럼 떠오른다. 통학하며 카펜터스를 즐겨 들어서고, 소설의 세계에 빠져 있는 동안 듣던 음악이 이야기에 마치 OST처럼 연결되었을 테고, 당직 경계 근무 시절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내가 신청했던 스미스의 곡이 흘러나와 닭살이 올랐던 충격이 굳어져서일 것이다.

영화나 TV 드라마에 삽입되는 OST나 BGM은 이야기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뿐 아니라, 기억을 소환하는 노골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에 흐른 음악은 시간이 지나 다시 들어도 당시의 줄거리나 캐릭터가 어제 본 것처럼 떠오르게 만든다.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즐긴 시청자처럼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공통된 기억이자 감정의 기재로 작용하는 경우, 음악은 강력한 힘을 가지기도 한다. 월드컵 당시 유행하던 응원곡이나 집회에서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팝 캐럴, 왬Wham의 ‘래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 같은 곡이 그렇다.


음악을 창작하는 데도 추억은 깊이 관여한다. 겪은 만큼, 기억하는 만큼, 아는 만큼만 멜로디를 그리고, 가사를 짓고, 노래할 수 있다. 다른 음악에 담긴 추억과 감정을 흉내 내 만들 수도 있지만(이런 경우 해당 음악을 ‘레퍼런스’ 삼는다고 한다), 그런 음악마저도 창작자의 경험이나 감정이 전혀 녹아 있지 않은 음악은 드물다.

나의 경우로 예를 들자면, MBC 드라마 <트리플>에 삽입했던 피아노 연주곡 ‘비가 멈췄고 음악이 그쳤다’는 2009년 용산 참사가 일어난 얼마 후 작곡한 곡이었다. 당시 사건 영상으로 고스란히 전해진 참상을 뉴스로 접하고 큰 충격을 받은 터였다. 음악을 듣는 사람마다 이 곡을 다른 감정으로, 다른 메시지로 이해하고, 어쩌면 그만의 서로 다른 추억을 연상하겠지만, 나는 이 곡을 들으면 강압적인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절망했던 당시의 쪼그라든 감정이 살얼음처럼 엄습한다. 피아노 선율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때때로 어디서 나는지 모를 씁쓸한 쇠 맛이 입에 감돌 정도다.

비록 떠오르는 감정의 원인은 옅어졌어도 무력감과 슬픔은 여전히 남아 지분댄다. 멜로디에 들러붙어 끈적이고, 아물어가는 기억의 생채기를 굳이 헤집어 벌린다. 당시 경찰 책임자는 참사 이후 일본 영사로 재직하며 비난과 책임을 피해 있다가 공사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고, 이후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적잖은 정의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존재한다는 걸 역사를 공부하며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매번 분노하고 절망했다. 곡명은 철거민 진압과 화재 진화를 위한 물대포로 건물 전체에 물이 흥건했던 참사 영상을 보고 두서없이 적은 메모 중 ‘음악이 내리고 비가 흘렀다. 비가 멈췄고 음악이 그쳤다’에서 따왔다. 발매했던 드라마 OST 앨범 부클릿에는 관련해 애도의 글을 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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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내리고 비가 흘렀다.

비가 멈췄고 음악이 그쳤다.


OST에 수록된 피아노 연주곡 '비가 멈췄고 음악이 그쳤다'를

용산 참사에 희생된 고인과 아직도 고통받는 유가족께 올립니다.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라이너 군은 '언론 악법'과 '4대강 사업'에 반대합니다.


서로 보듬고 사랑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노래합니다.

앉으나 서나 감성 공유.


창작자가 어떤 추억을 소환해 어떤 의도로 곡을 쓰고 어떤 감정을 의도했든 같은 음악을 두고 청자들의 마음에 서로 다른 추억과 다른 감정이 피어오른다는 점은 흥미롭다. 음악은 작곡가가 짓고, 작사가가 가사를 붙여 연주자들이 연주하고 가수가 부르지만 발표된 순간 그들에 한정되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공통의 추억이든, 자신만의 맞춤 열쇠든 다채롭게 퍼져 개개인에 의미를 가진다. 내 음악에 대한 감상평을 읽거나 공연 도중 관객의 눈길과 표정을 보는 일은, 굳이 표현하자면 청자의 가슴에 정착한 음표의 씨앗이 발아해 서로 다른 수많은 꽃과 식물 사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은 정원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정원의 토양은 추억이고 햇빛은 감정이다. 잘 가꿔졌든 덜 가꿔졌든 서로 다른 꽃과 과실이 만개한 하나의 정원을 감상하는 일은 뮤지션에게 경이로운 행복이며 보람이다.

과학 원리로는 단순히 공기의 떨림으로 전해지는 파장일 뿐인 음악이 타인에게 들려지는 순간, 그만의 감정 덩어리로 치환된다. 음악에 과거의 순간을 담아도, 아무리 오래된 곡이어도 들려지는 순간 현재의 감정이 된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형되어 과거를 치장하는데 많은 경우 음악이 큰 축을 담당한다. 그 감정이 즐거움이든 슬픔이든 향수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든 음악은 시냅스를 자극한다. 특정 경험이나 기억과 멜로디가 한번 연결되고 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으로 떠올리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라디오나 TV에서 내 음악이 흐를 때, 내가 알지도 못하는 드라마나 예능, 교양 프로그램 등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내 감정의 결과물이 BGM으로 조각이 맞춰져 삽입될 때, 길거리에서 내 음악이 둥둥 울릴 때, 누군가 내 음악을 듣다가 추억을 떠올릴 때, 가본 적 없는 멀리 남미나 동남아 외딴섬의 팬이 내 음악에 대한 감상을 SNS에 올리거나 댓글을 달고, 커버해서 부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릴 때, 우리는 얼마나 깊게 이어져 있으며, 이런 연결을 통해 나는 얼마나 강한 동기를 얻는지 깨닫고 새삼 놀라곤 한다.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재생하자 말랐던 마음이 추억으로 다시 촉촉해진다. 가뭄 끝 소나기처럼 추억이 가슴을 적시고 싹을 틔운다. 새싹은 당시를 가감 없이 온전하게 담아낸 추억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된 주관적 재창조일까. 그게 뭐든 좋지 아니한가.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고, 감정을 윤택하고 다채롭게 꾸며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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