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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May 09. 2023

최선의 삶

북리뷰


- 제목 : 최선의 삶

- 저자 : 임솔아  



- 책소개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자 임솔아는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바로 그 시인이다. 이미 시인으로서 인지도를 쌓고 자신만의 시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던 임솔아가 다시 신인으로 되돌아가는 모험을 감행하면서까지 써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오직 소설이라는 형식으로만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던 이 이야기는 열여섯 살 이후로 끈질기게 작가를 찾아왔던 악몽에 관한 것이다. 


가족과 학교에 대한 불신, 친구를 향한 배신감을 빨아들이며 성장한 인물이 친구를 찾아가 살해하려는 꿈. 물론 이런 서사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선의 삶'은 가출 청소년이자 학교폭력 피해자인 한 인물의 삶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개성적인 인상을 각인시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작품이 ‘낯선’ 성장소설로 읽히는 까닭은 임솔아가 보여주는 감정의 절제에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 앞에서 혼란스럽고 두려울 것이 분명할 내면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차라리 그는 제가 처한 상황을 특유의 간명한 문체로 정의한 뒤, 그저 더 나아지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일에 몰두한다. 형용사나 부사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움직이는, 동사의 세계. 그 속의 주인공을 보는 독자에게 문득 섬뜩함이 엄습하게 되는데, 우리는 삶에 서툰 영혼의 성숙을 그리며 ‘미숙했던 그 시절’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보통의 성장소설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의 삶'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물을 연민할 틈을 주지 않는다. 최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과정을 덤덤하게 쓸 뿐이다. 돌이켜보면 작가가 등단할 당시 받았던 “서늘하도록 선명하고 넓으며, 위태로우면서도 태연하다”는 평이 임솔아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정확히 짚어낸 셈이다.

[출처 : 알라딘]  



- 기억에 남은 한 문장

투어  


투어는 아름을 대신해 나와 살았다. 나는 투어를 강이라고 불렀다. 강이는 평소에는 잘 헤엄치지 않았다. 플라스틱 물풀 뒤에 보라색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침을 먹을 때에도 점심을 먹을 때에도 강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강이는 혼자서 살았다 다른 물고기와 함께 있게 된다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온전치 못할 것이다. 상대방이 사라지거나, 자신이 사라지거나. 그것이 투어의 운명이었다. 살기 위해서 강이는 혼자서 살았다. 

손거울 하나를 어항 옆에 두었다 손거울을 강이에게 보여주었다. 물풀 뒤에 숨어있던 강이는 거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굵은 핏줄이 팔뚝 위로 뒤어나오는 것처럼 붉은 지느러미가 강이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강이는 지느러미를 흔들어대며 유리에 머리를 박았다. 다시 뒤로 물러나 입을 크게 벌렸다. 강이는 거울 속의 자신과 남인 것처럼 싸웠다. 싸울 때면 지느러미가 부채처럼 활짝 펼쳐졌다. 

p. 149   



- 감상평

어릴 적 방황하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떠올랐다.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쓰인 소설이라고 하는데 어린 중학생 소녀들의 이야기는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도 누군가 보기에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몰랐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시기를. 그럼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건 있다. 이제는 내 선택에 내가 오롯이 책임을 진다는 것.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이렇게 성장해가고 있다. 아직도.  


글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심사평이다. ‘좋은 소설은 특별하지 않은 소재를 특별하게 만든 이야기다.’라는 말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살짝 힌트를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작가의 표현력이다. 상반된 표현의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희망을 향해 다가가려는 태도가 나를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았다.’, ‘무서운 것에 익숙해지면 무서움은 사라질 줄 알았다.’와 같이 표현한 문장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한 번쯤 방황이라는 걸 해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며 읽어볼 만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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