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이신 에어맨 베이스 22 루미너스 GMT GL0213
"양 한 마리만 그려주세요!"
"뭐?"
"양 한 마리만 그려달라고요!"
나는 벼락을 맞은 듯 벌떡 일어나 두 눈을 비비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정말 신비하게 생긴 조그마한 아이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중에서>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와 짧지만 큰 임팩트를 갖고 조우한 것처럼 글라이신 에어맨과의 만남이 그러했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 최초의 멀티 타임 항공시계, 독보적인 디자인의 헤리티지 등등 글라이신 에어맨을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시계였습니다. 지금도 여러 브랜드에서 파일럿 시계나 항공 시계가 나오지만 글라이신 에어맨과 같은 유니크한 디자인은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GMT(Greenwich Mean Time) 기능을 포함한 시계는 많지만 Purist모델로 24시간계 시계는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이 에어맨은 1951년 출시된 이래로 지금까지 동일한 이름으로 시계를 만들고 있으니 그간 쌓여 온 헤리티지는 말할 것도 없겠죠.
미 공군 조종사들이 사랑한 시계이고, 우주인의 손목에 채워져 우주까지 다녀온 스토리는 에어맨에 대한 기대감을 더 크게 만들어 줍니다.
만약 생텍쥐페리가 살았던 시대에 이 시계가 있었더라면 아마 그의 손목에도 채워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모든 사람들은 별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에게 다 똑같은 별은 아니에요.
여행자들에게는 별이 길잡이가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하늘에 빛나는 작은 불빛에 불과하죠. 학자들에게는 연구과제가 되고, 사업가에게는 황금이죠. 하지만 별은 말이 없어요.
아저씨는 누구도 갖지 못한 별을 갖게 될 거예요..." <어린 왕자 중에서>
글라이신 에어맨을 알게 되고 처음 접한 시계가 에어맨 루미너스였습니다. 한낮에도 깨끗한 얼굴을 갖고 있지만, 루미너스는 역시 밤에 더 빛이 납니다.
밤하늘에 많은 별들이 빛이 나듯 내 손목에서는 에어맨 루미너스가 빛나고 있습니다. 야광 다이얼을 보면서 아이처럼 신기해하며 두 손을 모아 야광 다이얼을 가리고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댑니다.
어른은 모두 어린이였지만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어맨 루미너스는 어른을 어린아이와 같이 동심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만듭니다.
만약 이 시계가 어린 왕자의 손목에 채워졌다면 더 잘 어울릴 것 같네요.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는 전혀 달라. 아직까지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냐.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도 누군가를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은 길들이기 전의 내 여우와 같아. 그 여우는 수많은 다른 여우들 중에 한 마리이 여우에 지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 나와 친구가 되었지. 이제 그는 나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여우야." <어린 왕자 중에서>
저는 시계를 콜렉팅 하지 않습니다.
장식장에 모셔만 놓고 관상용으로 바라만 보지 않습니다. 실사용할 시계를 원하기에 너무 고가의 시계는 부담스러워집니다.
시계를 사용하다 보면 당연히 흠집이 생깁니다. 사용자의 습관이나 환경에 따라 다양한 사용의 흔적이 남습니다. 그 흔적이 많아질수록, 더 깊어질수록 시계와 사용자 간의 추억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핸드폰은 주기적으로 교체하지만 시계는 그 보다 더 오래 사용하곤 합니다. 어떤 시계는 세대를 거슬러 아버지가 아들에게 넘겨주기도 합니다.
처음에 시계를 구입할 때는 여러 모델 중 하나이지만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만의 시계로 거듭나게 됩니다. 늘 손목에 채워져서 가장 가깝게 시간을 공유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죠.
<정리하며>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있고 지붕에 비둘기들이 앉아 있는 장밋빛 벽돌로 된 아름다운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한다면, 어른들은 그 집에 대해서 어떤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른들에게 "10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 보라 그러면 '오, 정말 멋진 집이겠구나."라며 감탄할 것이다 <어린 왕자 중에서>
오랜만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어느덧 순수한 호기심은 없어지고 숫자가 포함된 설명을 좋아하는 어른이 돼 버렸네요.
그나마 책을 읽는 동안 파일럿인 생텍쥐페리가 에어맨을 알았다면 그의 비행에 동행을 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해 오랜만에 어린이 같은 상상을 해보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