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1년 후 혼인신고를 하다
우리는 작년 8월에 결혼을 했지만 곧바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아니 이유가 있었던가.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확하게 1년이 걸려서 서로를 잘 알아가기에는 짧은 시간이라 생각했고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결혼을 선택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므로 서로에게 안전한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서로를 더 잘 알게 된 후 결혼하면 되지 않나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는데 나는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었고 임신을 하기 위해서는 내 나이가 녹록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서둘렀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명확하게 알게 된 점은 나는 결혼 전부터 '임신'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그때부터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8월이 아닌 12월에 결혼했어도 아마 나는 지금과 같이 난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2022년 12월에도 테스트기는 선명한 한 줄이었으니깐.
실제로 우리는 신혼 초에 사소한 일들로 서로의 마음에 크고 작은 흠집을 냈었는데 농담 삼아 '우리 아직 혼인신고 안 한 거 알지?'라며 서로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가했다.
난임 시술비를 지원받으려면 사실혼 증명이 필요하다. 사실혼 관계는 1년 이상부터 가능한데 우리는 작년 8월에 결혼을 해서 시술 시작일을 기준으로 아슬아슬하게 1년이 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 내게 시간은 금인데 시술 시작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난임을 계기로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다.
혼인신고는 주민센터가 아닌 구청에서 가능하다. 신고의 절차가 의외로 너무 간단했기 때문에 이렇게 법적인 부부가 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단, 신고 접수창구 앞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것'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가족관계등록신고는 접수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므로 취소가 불가하다는 글을 나는 혼인신고와 동시에 법적으로 남편이 된 나의 진짜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혼인 접수증을 들고 집에 들어오는 길의 풍경은 어제와 크게 다름없었다. 하늘도 구름도 심지어 바람의 온도도 비슷했다. 어제저녁 식탁을 사이에 두고 오늘 하루 일과를 나누며 밥을 먹던 그 사람이, 내 옆에 누워서 코를 골며 잠든 그 남자가 이제 나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사람이 되었다는 말인데 기쁘다는 감정 대신 약간의 무게감이 올라왔다. 그리고 내 옆에 서 있어 줄 든든한 누군가가 생겼다는 것에 든든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나는 그날 저녁 남편에게 작은 꽃다발을 선물했다.
혼인신고 후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병원에서 미리 받아온 난임 진단서와 나와 남편의 신분증을 들고 관할 보건소에서 난임 지원서를 작성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보건소에서 사실혼 증명 후 시술이 가능한다는 짧고 불친절한 안내문만 받았기에 지원서를 받기까지 정보를 검색하고 병원과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서 필요한 서류를 직접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또한 서울시 난임지원 확대로 인하여 2023년 8월 이후부터 부부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난임부부에게 혜택이 지원되며 시술 간 횟수 제한이 폐지되면서 신선배아, 동결배아, 인공수정을 합쳐서 총 22회까지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8월부터 시술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신선 1차인 110만원을 지원받게 되었고 3개월마다 보건소에 가서 지원서를 재발급받아야 한다고 한다. 지역마다 지원 범위가 다르므로 타 지역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하루빨리 전국적으로 지원이 확대되었으면 한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모든 여성들이 확대된 지원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현실적인 부담을 덜 수 있길 바란다.
난임지원을 받기 위해 구청에서의 혼인신고, 보건소 방문, 그리고 다시 병원 방문(병원은 시술 전이나 시술 시작 당일에 서류를 제출해도 된다)의 과정은 번거롭다고 말하면 에이, 공짜가 어딨어~라는 말이 단번에 떠오르지만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나도 난임이 처음이라 심적으로 편안하지 않은 상태였고 혼인신고까지 겸하여 여러 기관에서 증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시술까지 남아 있는 2주는 나에게 너무 소중했다. 마치 방학을 맞게 된 아이의 마음 같다고 할까.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생각하다가 나는 요즘 들어 유독 많이 떠올리는 엄마의 얼굴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때 당시에는 시술을 시작하게 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를 또 언제 보러 가나 하는 조급한 마음이었는데 임신을 생각하며 결혼식을 서둘렀던 그때의 내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험관 시술은 한 달 내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데,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 엄마의 얼굴이 그리웠다. 그렇다면 서둘렀던 결혼식도 그랬을까. 단지 임신의 조급함만이 아닌 그때 내 감정과 선택에 충실했던 것일까. 모두 지나온 일이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찾아올지 안 찾아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아기를 통해 진짜 부부가 되었고 나는 요즘 들어 엄마에게 예전보다 더욱 자주 안부전화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