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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Jan 26. 2024

소원을 빌지 않으니 소원이 이루어졌다

시험관 1차 난자채취

 

 임신이라는 필터를 끼고 나를 바라보면, 난소수치 1 이하와 더불어 '고령'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간간이 들어왔던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귀를 호강시켜 준 달콤했던 말은 시험관의 세계에 입문하면서부터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알처럼 사라졌고 생전 처음 난자가 힘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의 겉과 속은 예상보다 많이 달랐다. 난자에 힘이 없는 나는 자가주사를 시작한 지 8일 만에 난자채취를 하게 되었다. 


 시험관을 시작한 후 하루 일과가 되어버린 일은 핸드폰에서 나와 유사한 사례들을 찾아보며 혼자서 공감하고 위로하는 일이었다. 내 궁금증이 해결될 때까지, 핸드폰에서 불이 날 때까지. 여기에 인터넷 카페까지 가입하면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 가입하지는 않은 채 문턱을 매번 기웃기웃 거리며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했다. 나이가 젊은 여성이거나 난소수치가 높은 여성일 경우에는 20개 이상의 난자가 채취될 수도 있다는 점과 내 또래 여성들에게서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나 5개 정도의 난자채취는 기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채취된 숫자에 관계없이 공난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는 결과적으로 내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보더니 나는 '2'개의 난자가 채취될 예정이라 말해주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모두 수술대에 묶인 채 팔의 혈관을 통해 들어오는 마취제는 매번 그랬듯이 석연치 않은 기분을 선사하며 나를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보내버린다. 의료진은 심혈을 기울여 나의 난자를 채취했겠지만 눈을 감았다 뜨면 끝이 나있는 나로서는 참 간단한 과정이다.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채취 후 배가 뻐근하거나 복수가 찰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편이 복수를 대비하여 미리 주문해놓은 코코넛워터를 떠올리니 민망해질 정도였다.


 나는 2개의 난자가 채취될 예정이라고 안내를 받았기 때문에 회복실에 누워있을 때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간호사가 회진을 돌면서 주의사항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희미하게 들린 난자채취의 개수는 최소 10개 이상이었다. 간호사가 커튼을 젖히며 내게 다가왔고 조용한 목소리로 채취된 난자개수를 말해주었다. 이 소리가 혹시나 맞은편 침대에는 들리지 않았을까 나만 조심스러웠겠지. 종이에 적힌 숫자는 '4'였다. 2개가 아니라 4개나 나왔다고? 



4라는 숫자는 내겐 기적이었다. 

회복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마치 학교에서 상장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4개나 나왔어!"

남편이 화답해 주었다.

"이야 많이 나왔네!"



 채취 전 매일 아침 한큐주스를 갈아 마시고 근력운동을 하면서 남들이 쏟는 정성의 손톱만큼이라도 하자고 했던 나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단지 손기술이 좋기로 유명한 담당의사의 실력이었을까. 아무렴 상관없다. 2개의 난자채취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날부터 동결배아는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고 이번이 첫 시술이니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동결배아개수가 나오기까지 14일이 흘렀고 나는 5일 동결배아로 4개 중 1개가 성공했다는 안내를 받았다. 나와 남편은 무려 25%의 확률이라며, 채취되는 개수는 상관없다며 우리의 결과를 아름답게 포장했다. 하지만 총 2개의 배아를 이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추후 난자채취의 과정을 한번 더 겪어야 했다. 남들은 1차 난자채취에서 채취된 수가 많거나 동결된 개수가 많아 그 이후로 이식만 진행하기도 하는데 나는 2개를 모으기 위해 2번의 채취과정을 거쳐야만 했고 2차에서는 또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결과에 만족했다.  다음 채취까지 '쉬세요'라는 심플한 의사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를 옮아 매고 있던 족쇄에서 벗어나 해방된 기분이었다. 내게는 자가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두 달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시험관을 하면서부터 나의 의지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일들이 단 하루도 없었던 날의 연속이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보석 찾기를 하듯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험관을 하기 전 나는 얼마나 많은 보석들을 놓치고 살아왔던 것일까. 


 소원을 빌지 않으니 소원이 이루어졌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둘씩 할 뿐이었고 예측이 불가한 결과를 받아들일 때마다 일희일비하는 나를 마주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했고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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