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형 상담사

부모의 공감, 아이의 공감 12

by teaterrace



한 달 전에 예약해둔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유명세 때문인지 상담을 받으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유명세만큼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상담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한 달을 보냈다.


TV 출연했던 사진들과 유명인들과의 기념촬영 사진들이 여기저기에 붙어있어 유명세를 증명해 보이는 듯했다. 그동안의 심리상담소와는 다르게 직원들이 모든 안내를 했고 정작 원장의 얼굴은 뒤늦게 볼 수 있었다.


20~30분 정도 검사지에 체크하느라 열을 올리는 사이, 상담실에서 나온 원장은 아빠와 아이를 놀이치료실로 불렀다. 최소한의 눈인사도 없는 첫 만남이었다. 그다음은 엄마 차례인데 아이와의 놀이 장면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지난 상담기관에서도 경험하였는데 새로운 장난감에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를 보며 최소한의 도움만 주고 대부분은 지켜보게 되었다.


놀이치료실을 나와 본격적으로 부모상담을 시작했다. 상담받는 동안 아이는 거실처럼 꾸며진 대기실에서 TV를 틀어준다. 이것 역시 이례적이다. 어린아이의 TV 시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전문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상담 시 원장 스스로가 'TV나 핸드폰을 30분 이상 보는 것은 아이들의 뇌를 손상한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라고 말을 했다. 최소한 부모가 상담을 받는 동안 아이와 놀이를 해주는 인력이 대기하고 있어야 하며 대부분은 그러했다. 직원이 두 명이나 있었지만 1명은 주로 상담의뢰 전화를 받고 예약 스케줄을 잡는 듯했고, 나머지 1명은 아마도 내가 체크한 검사지를 컴퓨터로 입력하였으리라 생각되지만 그중 아무도 아이를 위해 대기된 인력은 없었다. 대기하는 아이에 대한 배려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블로그나 TV에서 비춰지 원장은 상냥하고 미소가 밝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원장은 계속된 상담에 지쳐서 소위 피곤에 절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기계식으로 레코딩된 멘트만 쉼 없이 떠들어대는 사람이었다. 이 상담을 위해 아이의 성장이력과 문제 상황, 그리고 궁금한 점을 A4 2장에 걸쳐서 정리해 온 우리는 원장의 온기 없는 강의(?)를 듣다가 어느새 주의가 흐트러졌다. 가끔씩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보게 되고 정리된 종이를 쳐다보게 되는 횟수가 늘어났다. 자신의 상담경력과 얼마 전 초등생의 아파트 투신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상당히 일반적이고 지극히 예측 가능한 이야기를 지속했다. 뿐만 아니라, 간혹 부모를 자극하는 말을 섞어가며 놀이치료나 부모상담, 가족상담의 필요성을 어필하였다.


요는 이런 것이었다.


첫째, 아이의 언어표현력이나 언어 이해력은 확실히 높다. 그러나 이런 능력을 사장시키지 않고 계속 지속시켜 주기에 부모의 지극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게 해주기 힘들 것 같다.

둘째, 아이가 월등히 높은 능력 이외에 다른 부분의 편차가 크다. 따라서 높은 언어표현력이나 언어 이해력보다는 사회성이나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치료가 더 시급하다.

셋째, 영재성을 보이는 아이들 중에 ADHD 증세를 보이는 아이가 많다. 이것은 6세가 지나면 약물치료를 해야 하므로 그전에 정서적인 치료를 해 줄 필요가 있다.

넷째, 육아 동반자들의 육아에 대한 신념이 통일되어야 하고 의견이 통일되었으면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훈육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혼란스러워한다.

다섯째, 자극 추구 성향과 위험회피 성향이 혼재된 아이이므로 키우기는 까다로울 것이다. 온 방면에 눈과 귀가 열려있어서 아이 앞에서의 말과 행동, 심지어는 옷 입는 것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주의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와중에 정신 붙들고 이해한 내용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밖에도 부부의 관계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적어온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적절한 답을 얻지 못해서인지 인상에 남는 것이 없었다.


상담 내내 상담내용을 타이핑하며 듣다 보니 눈을 마주치는 상담보다는 기록하고 수치화하고 결과 해석을 하는 상담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아이의 짜증과 분노에 대한 원인이나 대처, 언어능력에 대해 부모로서 조력해줄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아쉽게도 들은 기억이 없다.


부모의 상담시간을 TV로 때우던 아이마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상담실 문을 열었고 우리는 부랴부랴 상담비를 결제하고 그곳을 나왔다. 눈이 녹아 질적해진 땅을 밟으며 우리 부부는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상담비는 검사비를 포함하기 때문에 아깝지는 않다. 하지만, 상담을 위해 기다려 온 시간과 이곳에 오기 위한 갖가지 노력, 이를테면 우리 부부 둘 다 조퇴를 하고 왔고, 1시간의 거리를 운전하여 갔으며, 주차공간이 마땅치 않아 애를 먹었고, 상담시간에 맞추기 위해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의 노력들이 굉장히 아깝게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TV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상담을 받으면서 본모습은 연예인이 TV에서 말할 때와 일상에서 일반인들과 대할 때의 갭만큼이나 컸다. 우리는 '강남형 상담사'라며 적어도 우리에게 맞는 상담사는 아니라는 것에 동의했다.


당분간, 아이를 위한 상담을 받지 않게 될 것 같다. 다만, 우리 아이에게 맞춤형 부모가 되기 위한 컨설팅은 받아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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