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운전대를 잡다: 시즈오카

시즈오카 4박 5일

by 턱시도 Tuxedo

신칸센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정해진 선로 위만 달린다. 과거 동경 주재원으로 일하며 숨 가쁜 비즈니스를 위해 도쿄와 오사카를 오갈 때, 차창 밖의 후지산은 늘 스쳐 지나가는 웅장한 배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치열했던 30년의 궤도를 벗어나 온전한 나의 속도로 여행을 즐기게 된 지금, 나는 기차역을 빠져나와 주저 없이 렌터카의 운전대를 잡는다.

렌터카를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이드북에 나온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운전대를 꺾어 소도시의 깊숙한 골목과 숨겨진 풍경을 마주하기 위해서다. 시즈오카(静岡)의 굽이진 산길을 직접 운전해 올라가다 보면, 기차 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짙은 녹차 밭의 향기와 거대한 후지산의 호흡이 창틈으로 밀려 들어온다.

원하는 곳에서 시동을 끄고 머물 수 있는 자유. 시즈오카의 한적한 풍경 속에 차를 세우고 걷다 보면, 100년의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이곳에서 말년을 보낸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철학이 문득 피부로 와닿는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

이에야스의 이 무서운 인내와 기다림은, 대기업이라는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나 30대 초반 홀로 야인으로 나섰던 내 지난 삶의 궤적과 묘하게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