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올해 수능을 봤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평소처럼 출근했다.
아내는 불안했는지 지인과 절에 가서 백팔배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응원하기로 했다.
퇴근 시간인 4시 20분에 집에 가려 했다.
그런데 수험생 자녀를 둔 옆자리 부장님이 일찍 퇴근해 시험장에 간다기에
아내에게 전화해 나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4시 전에 집에 도착하면 시험장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부모님이 닫힌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 종료 시간이 지나 5시가 넘자, 수험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학생은 큰 박수를 받으며 교문을 지났다.
그 모습이 조금 웃기면서도 모든 부모의 마음이 같을 거로 생각했다.
한참 뒤 베이지 패딩을 입은 아들이 보였다.
아내가 먼저 안아주었고, 나는 서먹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울컥했다.
감정을 들킬까 봐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봤다.
멀리 주차해 둔 차로 걸어가며 시험이 어땠는지 물었다.
영어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번 수능에서 필요한 조건은 ‘수학·영어 합 5등급 이하’였다.
그래야 수시로 넣은 수리 논술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차에 타자마자 아들은 영어 답지를 보며 채점하기 시작했다.
수학은 2교시 끝났을 때 이미 2등급을 확신하고 있었다.
문제는 영어였다.
절대평가라 3등급 하한선인 70점 이상이 나와야 했다.
두 번이나 채점하고 배점도 확인했다.
맞힌 점수를 더하는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해 운전이 쉽지 않았다.
침묵을 깨고 아들의 깊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69점
괜찮다는 말도, 고생했다는 말도 해주지 못했다.
한숨을 쉴 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두가 말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저녁을 먹자던 계획도 취소하고 그대로 집에 들어갔다.
아들의 공부 태도는 늘 마음에 차지 않았다.
턱없이 부족했다.
주중에도 게임을 했고, 주말엔 늦잠이 일상이었다.
수험생다운 절박함이나 간절함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1점의 소중함을 느끼고, 더 치열해졌으면….
아들을 위로하기보다는 마음속으로 훈계하고 있었다.
아들이 느낄 허탈함에 공감하기보다, 그간의 태도를 탓하기 바빴다.
한심하고 못난 아빠였다.
수능 이틀 뒤, 아내와 아들은 서울로 향했다.
수시로 넣은 논술 네 곳 중 마지막 한 곳만 최저가 없었다.
일요일 논술은 이미 최저를 못 맞춰 떨어졌지만, 연습 삼아 보기로 했다.
결전의 월요일 논술 때문에 2박 일정이 필요했다.
일요일 시험이 끝나자 아내와 통화를 했다.
결과는 이미 정해졌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아내는 "아쉽게도 너무 잘 봤대. 합격했을 것 같다고.”
수리 논술에 강했던 아들은 모든 문제를 자신 있게 푼 모양이었다.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이 학교는 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수능 전에 시간 내서 캠퍼스도 보고 주변도 둘러볼걸.
그랬다면 본인도 오고 싶어서 열심히 했을 텐데.
수험생 아빠인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해준 것이 거의 없었다.
아침에 학교까지 태워준 걸로 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내 공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이 요청할 때만 수동적으로 도왔다.
게임을 하거나 늦잠을 자면 그저 화내고 짜증 내기 바빴다.
아들에게는 수험생다움을 강조하면서 정작 나는 수험생 아빠다움을 외면했다.
절박함을 요구하면서도 조력자로서의 역할에는 무심했다.
아들의 태도를 탓하면서 내 태도는 돌아보지 않았다.
1점의 부족함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오늘 재수가 걸린 논술 시험이 끝나고 통화를 했다.
아들의 목소리가 밝았다.
잘 본 것 같다고 말하는데 울컥했다.
“고생했다”는 말만 짧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다.
남의 자녀에게는 좋은 선생님이면서 왜 내 아들에게는 유난히 냉정한지 모르겠다.
아들이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내 기대치는 왜 자꾸만 높아졌는지 모르겠다.
이만큼도 충분하고, 지금까지도 잘해왔다.
내 스무 살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친구, 동아리, 여행… 꺼내 볼 추억이 가득하다.
우리 아들도 그런 낭만적인 1학년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내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