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모든 학생이 학습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수업의 최종 목적은 ‘사고력’을 기르는 일이다.
사고력은 학생 각자가 사고했을 때 길러진다.
스스로 사고하려면 학생 내부에서 물음이 치솟아 올라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학생을 ‘묻는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
적절한 발문으로 모든 학생을 참여시켜야 한다.
발문에 참여한 학생은 ‘자기 나름의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그 생각을 노트에 쓰고 짝과 나누며 다듬어야 한다.
짝과의 교류를 거친 생각은 전체 앞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이웃과 더불어 사고하는 과정에서 생각은 ‘향상적으로 변용’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학생의 사고력은 성장한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하려면 교사는 ‘수업 기술’을 갖춰야 한다.
내가 한형식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2019년 수석교사가 된 뒤 수업 실천 기술에 관심이 커졌다. 이론적 지식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정작 수업 실천이 문제였다. 수업을 많이 봐도 좀처럼 늘지 않았다. 꾸준한 실천 외에는 답이 없었지만, 한 차시 수업은 물론이고 단원 전체를 어떤 원리와 기술로 이끌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때 우연히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에는 법칙이 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여느 책과는 달랐다. 시중에서 보기 드문 ‘수업 실천’ 중심의 책이었고, 구체적인 수업 사례를 기반으로 쓰여 있었다. 무엇보다 술술 읽혔다. 쉽게 읽힌다는 것은 저자의 경험이 깊다는 뜻이었다. 책을 읽으며 범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고, 단숨에 완독했다.
책을 읽고 나니 저자가 궁금해졌다. 1930년생, 초등교사 출신, 교장으로 퇴임, 수업기술연구회 회장, 다수의 저서. 이중에서도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은 ‘1930년생’과 ‘수업기술’이었다. 나이가 아흔인 분이 현장의 언어인 수업기술을 연구한다고? 이상하리만큼 낯설면서도, 책의 내용만 보면 장인의 기운이 느껴졌다.
적극성이 발동하여, 출판사인 ‘즐거운학교’에 전화를 걸어 저자 연락처를 알 수 있는지 물었다. 개인정보라 어렵다며 내 정보를 대신 전달해 주겠다고 했다. 며칠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예상보다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말씀드리며 혹시 특강이 가능하신지 여쭈었다. 선생님은 기뻐하시며 어디든 가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특강 날짜가 잡혔다. 2019년 11월 21일(목) 18시부터 21시까지, 세 시간 특강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운전을 하지 않으셔서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서부정류장에 도착하셨다. 무거워 보이는 낡은 캐리어를 들고 버스에서 내리시는 모습은 자상한 백발의 할아버지 그 자체였다. 내리는 순간 바로 선생님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허리를 굽혀 인사드리니 반갑게 손을 잡아주셨는데, 손아귀 힘이 예상보다 강해 순간 놀랐다. 캐리어를 차에 싣고 연수 장소인 대구협력학습지원센터로 향했다.
특강에는 40명 넘는 선생님들이 신청하셨다. 모두 기대가 컸다.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까?’ 선생님은 곧바로 강의 준비에 들어가셨다. 직접 손글씨로 만든 강의 자료를 순서대로 배치하고, 미리 요청하셨던 강의 도구를 꼼꼼히 점검하셨다. 강의가 시작되자 선생님은 참석한 교사들을 대상으로 모의 수업을 진행하셨다. 우리가 학생이 되어 한 차시 수업을 그대로 경험하는 방식이었다.
모의 수업은 처음 겪는 강의 형태였다. 보통 강의는 강사가 아는 내용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만, 이 방식은 매우 낯설고 신선했다. 소재는 사회과 ‘낙농’이었다.
“낙농은 우유를 생산하는 농업입니다. 질 좋은 우유를 많이 생산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자연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생산지·유통지)이 있는데, 이 중 자연적 조건 두 가지를 써보세요. 그리고 짝과 교류하세요.”
참석한 선생님들은 노트에 자기 생각을 쓰고 옆 선생님과 의견을 나눴다. 이어 선생님께서 일본 지도를 화면에 띄웠다. 일본 지도는 위도 기준으로 A~F 여섯 구역이 선으로 그어져 있었고, 이 중 ‘낙농 1번지’가 어디인지 써보라고 했다. 선생님들 각자의 생각이 마련되자 화이트보드의 ‘반드시’와 ‘아마도’ 구역에 동전 자석을 붙이게 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면 ‘반드시’, 확신은 없지만 그럴 것 같으면 ‘아마도’에 붙이라고 했다. 대부분 C~E와 같은 위도가 낮고 따뜻한 지역에 자석을 붙였다.
모든 참여자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자 선생님께서 전체 선생님을 쳐다보며 잠시 뜸을 들이셨다. “낙농 1번지는 어디일까요?” 모두가 숨을 고르며 선생님의 입만 바라봤다. ‘내 생각이 맞을까?’ 하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정답은 A였다. 위도가 가장 높은, 가장 추운 지역이 낙농 1번지였다. 여기저기서 웅성임이 터져 나왔다. “A가 정답이라고? 저 추운 곳이? 이상하네.”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저런 혹독한 지역이 왜 낙농 1번지일까?’ 모두가 의아해했다.
선생님은 바로 답을 설명하지 않고, 먼저 수업 운영에 대한 원리를 짚어주셨다.
“수업의 도입에서 교사가 해야 할 일은 학생 내부에서 물음이 치솟아 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물음이 올라올 때 스스로 사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함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교사가 도입에서 할 일입니다.”
순간 강의실이 숙연해졌다. 참석한 선생님들은 저마다 강의 자료에 무언가 느낀 바를 쓰고 있었다. 단단하고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이후 선생님은 슬라이드 한 장을 띄우셨다.
‘왜 그곳이 낙농 1번지일까? 저토록 열악한 곳이 낙농 1번지인 까닭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낙농 1번지가 A지역이라는 답을 들은 이후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의문이었다. ‘학생들에게 이런 형식으로 학습문제를 제시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던 순간, 선생님은 다시 예상 밖의 설명을 이어가셨다.
지금과 같은 ‘왜, 까닭은?’ 형태의 질문은 문제해결에 필요한 정보나 힌트가 없어 우수한 학생만 참여할 수 있고, 대부분 학생은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 같은 질문이 현상을 보고 떠오른 ‘문제의식’이라면, 이를 학습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는 학생이 점진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구조화된 ‘학습문제’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학습문제를 제시하셨다.
이렇게 열악한 자연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낙농 1번지인 것은 그곳이 낙농에 알맞은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그 조건이란 무엇일까?
- 두 가지 이상 찾아서 기록하시오.
- 찾은 조건 가운데에서 두 가지를 선정하여 각각 카드에 정리하시오.
- 위의 일을 5분 내에 마치시오.
‘저렇게 학습문제를 제시하는구나.’ 학생이 해야 할 행동이 그려졌다. 군더더기 없이 명료한 학습 안내였다. 내가 수업시간에 하는 것과 비교되었다. 나는 지나치게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이었다. 선생님의 안내는 구체적이고 초점이 있었다. 무언가 조금씩 감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모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마음속에서 여러 번 ‘와우’라는 감탄이 나왔다.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에는 법칙이 있다」가 왜 그토록 잘 읽혔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의 깊은 문제의식, 오랜 고민과 실천, 그리고 정교화된 수업 구조. 수업이라는 한 분야에서 70년 가까이 몸담으며, 단 하나의 질문을 끝없이 파고든 결과였다.
어떻게 해야 모든 학생이 학습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너무 큰 질문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평생을 이 질문 하나에 매달리셨고, 그 해법을 ‘수업기술’에서 찾으신 것이었다. 이 글 앞부분에 내가 논리적으로 정리해 둔 문장들은, 어쩌면 단순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장들에 뼈와 살을 붙이기 위해 선생님은 70년을 쏟아온 것이었다. 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가.
이후 진행은 모의 수업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약 80분의 모의 수업 후 10분 휴식을 갖고, 다시 90분 이상 강의가 계속되었다. 듣는 교사들의 체력은 조금씩 지쳐갔지만, 선생님은 전혀 지치지 않으셨다. 밤 9시가 넘어 꼭 가야 하는 분들은 먼저 가도 좋다 하시며 설명을 이어가셨다. ‘정말 아흔 가까운 연세가 맞나?’ 감탄스러운 체력과 열정이었다.
특강을 마치고 감사 인사를 드리자, 오히려 초청해 줘서 고맙다고 하시며 “수업기술은 한 번의 연수로는 자기 것이 되기 어렵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반가워 “선생님만 허락해 주신다면 언제든 강의 일정을 잡겠다”라고 답했다. 늦은 시간 다시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고 선생님과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집으로 ‘연수 계획서’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총 10회 연수였다. 이후 교육청과 협의해 한 번에 4시간씩, 총 여덟 차례의 연수를 진행했다.
지금은 선생님께 자주 연락드리지 못하지만, 얼마 전 96세에 또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선생님은 거인이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일해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시는 분이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꼭 다시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