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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교경제학자 Jun 29. 2017

<퍼지 세탁기>와 <인공지능 효과>

<딥 러닝 자율주행차>도 <퍼지 세탁기>의 신세가 될까?

우연히 1991년 과학동아 1호에 어떤 대학원생이 기고한 "신경망군과 퍼지양의 결혼"이라는 쌍팔년대 제목을 가진 글을 봤다. 마침 옛날 뉴로퍼지 선풍기, 퍼지 세탁기 등을 회상하며 "인공지능 효과(AI Effect)"라는 개념을 공부하던 차에 우연히 접한 보물 같은 글이다.



인공지능 효과란 "어떤 인공지능(알고리즘)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더 이상 인공지능이 아니다"(As soon as AI successfully solves a problem, the problem is no longer a part of AI.)라고 하는 세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인공지능의 역사에서 관찰되는 특이한 점을 지적한 것인데, 인공지능의 연구로 시작되어 성취된 성과가 현실화되거나 상용화되면 더 이상 인공지능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슈퍼인텔리전스>의 저자 닉 보스트롬도 AI의 연구 성과물이 현실에 응용되면서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면 더 이상 인공지능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철따라 바뀌는 패션이나 가요도 아닌 연구의 성과가 이렇게 유행을 타는 현실이 참 재미있기도 하다. 현재 인공지능을 다시 회춘시킨 <딥 러닝>이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율주행차 같은 응용분야에 흔하게 쓰게 된다면 과거의 <퍼지 세탁기>처럼 <딥 러닝>도 '인공지능'의 범주에 넣기는 한물간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까?


위의 대학원생의 과학동아 글에도 나오는 <퍼지 세탁기>할 때 그 퍼지 이론(fuzzy theory)도 인공지능 연구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지금 퍼지 세탁기를 두고 인공지능 세탁기라고 하면 비웃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예상되는 것과 유사한 것일 테다. 로봇청소기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쓰면 '버럭' 할 사람들이 많다. '알파고' 정도는 되어야 인공지능이 되는 현실에 대해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글이라 장문이지만 읽어보고 나름의 감상을 써보았다.


'알파고' 이후 너도나도 인공지능, 특히, 딥 러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현재라면, 1991년 과학동아에 기고한 한 대학원생의 글은 90년대 초반의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에는 퍼지 이론이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던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80년대 후반 버블 붕괴 이전에 세계 전자산업을 호령하던 일본이 퍼지이론을 가전제품에 선도적으로 적용했고, 열심히 패스트 팔로워 하던 우리나라 가전회사가 90년대 초반부터 깊은 연구 없이 <퍼지 세탁기>를 만들었다고 광고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을 잘 느끼게 해준다.


<사진> 뉴로퍼지 기능이 있는 금성 선풍기

퍼지 이론이 일본에서 많이 연구되었고 아마도 그 퍼지라는 모호함에서 연유하는 동양적인 느낌에서 모티브를 얻어 '동양적인 퍼지'라고 하고, 80년대 당시 지금의 '딥 러닝'의 원래 브랜드 네임이었던 '신경망'이 미국 중심으로 연구되어왔다고 '서양적인 신경(회로) 망'이라고 명명한 것도 재치 있다. 둘의 장단점을 '결혼'시킨다면 한수 위의 퓨전시대를 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재미있는 비유다. 90년 당시에 나왔던 선풍기나 에어컨에 이미 <뉴로퍼지>라는 기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저자의 퓨전이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뉴로퍼지가 <자연풍> 이상의 큰 감흥은 없었던 기억이다.


저자는 당시에 인공지능을 적용한 대표 상품이었던 <퍼지 세탁기>를 이용해서 당시 인공지능 연구를 주도하던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것의 장점과 신경망과 비교한 단점을 이야기한다. 97년 체스 챔피언을 꺾은 <딥 블루>가 "전문가 시스템" 유형의 인공지능이고, 지난해와 올해 바둑 챔피언을 정복한 <알파고>가 신경망, 즉, "딥 러닝" 유형의 인공지능인 것을 상기해 본다면 반갑기도 하다.

<그림> 구글 Ngram으로 검색한 인공지능, 머신러닝, 퍼지 로직, 전문가 시스템, 딥러닝 추이. 80~90년대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는 전문가 시스템이 주도한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세탁기의 센서를 통해서 세탁물의 성질을 알아낸 뒤 그 정보를 전문가의 지식이 기억돼 있는 마이컴(!!!)에 보내 그곳에서 최종 결정을 하게 한다"면 기존 세탁기에 비해서 좋은 성능을 낼 수는 있다고 장점을 설명한다. 그러나 미리 입력한 전문가의 지식 밖의 상황에는 세탁기가 '식은땀(!!!)'을 흘리게 된다며 전문가 시스템 기반의 퍼지이론이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미국물'을 많이 먹은 신경망(Neural Network)의 장점을 설명한다. 80년대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한 신경망은 '고전 인공지능'과는 다른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온 것인데, 고전 인공지능의 대표 선수인 전문가 시스템이 사전 지식을 이른바 '한땀한땀' 입력(코딩)해 놓아야 하는데 반해, 신경망을 이용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시스템 자체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알고리즘 학습(learning)하여 일일이 입력했던 파라미터나 조건식 등을 알아서 설정하니까 참 유연한 성징을 갖는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환경적응성을 확보하려다 보니 NN은 불가피하게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학습을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게다가 아직 연구의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NN이론을 일반적인 범위까지 적용하기 어렵다."면서도 "아직까지는 다소 미흡하지만 최고의 성능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있다. NN이론이 계속 발전된다면 특정분야에서는 최고의 성능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2010년대 이후 인공지능을 다시 부활시킨 '딥 러닝'의 탄생을 예상하고 있다. (캬~~)


또 하나 예언을 하는 것이 "퍼지와 NN이 만나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더욱 보강시킨 이론이 바로 퓨전(fusion) 이론이다. 둘 사이의 융합을 뜻하는 퓨전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차세대의 첨단기술로 최근에 등록한 퓨전 이론을 응용한 제품은 아직 없다. 하지만 멀지 않아 퓨전이라는 수식어도 우리 귀에 익숙하게 될 것이다. 요즘의 퍼지처럼."라는 대목인데, 선풍기의 <뉴로퍼지> 같은 용어는 봤지만, <퓨전>을 단 제품은 "아시안 퓨전 음식점" 따위나 "퓨전 음악", "(여러 가전 기능을 결합한) 퓨전 냉장고" 정도였던 기억이다. 퍼지와 신경망을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너무 일상적이 되어버려서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이어가는데, 인간의 논리를 쉽게 표현할 수 있는 퍼지의 장점과 미리 입력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외부의 상황을 습득하여 구현되는 신경망의 장점을 결합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제언한다.


먼저, 신경망의 장점을 이용해서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패턴 처리/인식 분야인데, 이를 사람이 사과를 눈을 통해서 인식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신경망이 인간의 학습을 모방해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라 좋은 성능이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CNN(convolutional 신경망)이라는 것이 해당분야에 많이 쓰인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다음 논리적 표현을 위해서 퍼지를 이용하고, 논리적 추론을 위해서 신경망을 이용한다면 효율이 높은 지식처리가 가능해진다고 하면서, 퍼지이론의 핵심인 애매함의 정도를 표현해 주는 멤버십 함수(모델)를 만들 때, 신경망을 이용하면 멤버십 함수가 자동설계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자동설계라는 것도 의미 있는 표현이다.


현재 '딥 러닝'이 기존의 머신러닝과 다른 장점으로 언급하는 것이 과거 '전문가 시스템'처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상 분야(domain)의 지식을 바탕으로 "Feature Extraction(특징 추출)" 작업을 한땀한땀(hand-craft)하는 시간 낭비(time-consuming)를 '딥 러닝'은 그런 과정을 알고리즘으로 자동화했다고 하는 것인데, 위의 멤버십 함수 자동설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이렇게 신경망과 퍼지를 결합 시키면 지식 획득(acquisition), 지식 표현, (퍼지) 인지(cognitive), (지도제작) 분류(clustering), 패턴인식(recognition) 등에서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요즘 딥 러닝이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가 비전, 음성인식, 자연어 처리 같은 분야라고 하던데, 그것도 일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끝으로 글의 마무리 지점에서 "인간사회에서 성공적인 상호교류를 하려면 따뜻함과 친절함, 우정 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미래에는 인간과 컴퓨터,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도 이러한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따라서 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동작되는 컴퓨터나 로봇 등이 요구된다."라고 하는데, '스카이넷'을 이야기하는 현재 일각의 시각보다 시대를 앞서 나간 전향적인 느낌의 주장도 보인다. 인공지능의 자동화가 인간을 대체할 수도 있지만, "Human-Machine Teaming(인간과 기계의 협동)"을 통해서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도 이야기하고 있는데(ex. 오바마 백악관 AI 보고서) 그것과 참으로 유사한 주장이다.


From Model-based AI to Data-driven AI


지금처럼 인터넷(or data)도 없고, 지금과 같은 'GPGPU'(or 저렴하고 강력한 연산력)도 없던 시절 이론적으로 연구되던 신경망이 당시의 주류였던 전문가 시스템과 같은 모델 기반의 인공지능(model-based AI)에 밀리다가, 2010년을 전후로 데이터와 컴퓨터와 알고리즘 아이디어가 겹치면서 '딥 러닝'이라는 팬시한 이름으로 데이터 중심의 인공지능(data-driven AI) 시대를 이끌고 있는 현실에 대한 많은 글들이 스쳐 지나간다.


과연 오늘날 <딥 러닝>은 과거의 <퍼지 로직>이나 <전문가 시스템> 등의 또 다른 인공지능 분야의 성과와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딥 러닝>이라는 알고리즘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이것이 현실화될 수 있게 해준 제반 환경, 방대한 데이터와 끊임없이 개선되는 컴퓨팅 자원들이 인터넷을 타고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 아이디어들과 만나서 만드는 '혁신'의 힘이 "이번은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를 한발짝 더 현실로 당겨올 것인가? 이 모든 것을 한번 더 되새기게 해주는 귀하고 재미난 고전 같은 글이다.


글을 읽고 저자인 대학원생 <가민호>를 검색해 보니, 아마도 연세대에 근무하고 계신 교수님 같은데, 이 글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다시 보신다면 참 감회가 새로울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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