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의 대중교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코로나19와 새로운 상상의 필요성
코로나19로 우리가 직면한 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과감한 상상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생활양식이 변하고, 사람-사물-정보 이동이 동일 선상에서 다루어지면서 교통은 물론 모빌리티 서비스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도시의 든든한 발이었던 대중교통은 삼중고에 처해졌으며, 코로나19를 피해서 발생하는 이동 수요는 자동차로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이동을 단순히 과거처럼 대중교통이 정상화되고, 해외여행이 재개되는 수준에 맞추면 또 다른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 속에서 무기력하게 이동의 급격한 중단을 경험할 수도 있다. 지금의 위기를 이동의 오래된 틀을 과감하게 깨고, 새로운 이동 패러다임을 도입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본 방향은 개인에게는 이동의 자유를 확대해 주면서도, 도시 전체로서는 지속 가능한 이동이 가능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다.
새로운 상상의 시작은 새로운 대중교통에 대한 고민
가장 기본적인 고민은 대중교통에 대한 정책 변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존의 대중교통은 도시의 지속 가능한 이동을 대표하는 정책 수단이었지만, 코로나19로 삼중고에 빠진 현재에는 정책의 유효성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대도시의 고밀도 대중교통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또 다른 감염병의 우려도 높은 지금과 같은 순간에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힘들다.
대중교통의 현재는 과거로 설명된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과거와의 단절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21세기의 대중교통은 1800년대 말이 끌던 철도 위의 수레를 증기기관이 끌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국이 도입 중인 철도 레일의 표준적 간격이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이 이용한 1830년대 레일 간격이라는 것은 이동 수단의 강한 경로의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하철은 말 그대로 전철이 지하로 이동한 것이고, 가장 선진적인 대중교통시스템으로 평가받는 BRT(간선버스 급행 체계)는 버스 운행에 철도시스템을 접목한 것이다. 19세기 기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신문과 잡지로 시선을 가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스마트폰이 지하철과 버스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침목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동차 시대의 도래 이후 대중교통은 도시의 자동차 억제 수단으로 채택되어 왔다. 대중교통의 최대 장점은 무엇보다 단위 시간당 수송인원이 높다는 점이다. 출퇴근 시간, 러시아워, 피크타임 등 사람들의 일상 패턴에 따라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동 수요의 사이클에 맞추어 대량의 인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자동차의 대중화가 시작된 이후 도시의 교통 정책은 넘치는 자동차를 도로 위에서 최대한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대중교통을 활용해 왔다.
자차 이용을 줄이기 위한 대중교통 정책은 한계에 직면
그러나 현재의 대중교통은 몇 가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첫째, 공급자 중심이다. 개인들은 끊임없이 이동의 자유를 추구해 왔는데, 교통 시스템은 정부 혹은 지자체 주도로 짜여 왔고, 대중교통은 언제나 공급자가 정한 시간, 장소, 방식에 사람들을 맞추도록 강요한다. 둘째, 현재의 고밀도 대중교통은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밀도에서만 작동한다. 우리나라 수도권의 도시철도 노선 수는 비수도권 광역시 전체에서 운행되는 도시철도 노선의 2배 가까이 많다. 지방에서는 버스 환승시스템이 없는 도시는 물론 하루에 운행 빈도가 오전, 오후 각 1대에 불과하거나 가까운 정류장이 걸어서 30분 이상 걸리는 지역도 존재한다. 셋째, 대규모 수송과 환승은 감염병 앞에서 무기력하다. 결국 현재의 대중교통은 지속 가능한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이 되기 힘들다.
기본 방향은 수요 응답형 교통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중교통은 수요 응답형 교통(demand responsive transport) 시스템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수요 응답형 교통은 쉽게 본다면 택시와 버스의 중간 수준의 교통 체계로 현실화되어 왔다. 대중교통의 경제성이 낮은 농촌지역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이 발달한 도시에서도 수요 응답형 교통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기존 노선버스로 교통 불편 해소가 어려운 지역은 지자체 예산으로 운임을 보전하는 ‘100원 택시'(공공형 콜택시)나 소형 콜버스를 대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정된 시간표와 노선에 따라 이동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에서 이용자가 필요한 순간에 호출하면 노선이 실시간으로 조정되는 온디맨드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도시에서도 길에서 잡던 택시에서 앱으로 실시간으로 호출하는 택시 이용 문화가 확산되면서 수요 응답형 교통 문화의 저변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수요 응답형 교통은 버스와 택시의 융합에 그친 한계가 뚜렷했다. 요금은 세금을 통해서 저렴하게 마련하고, 밴이나 승용차를 호출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정기적인 노선을 운영하는 기존의 버스보다는 경제성과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기존 대중교통수단의 물리적 결합으로는 시민들의 이동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요 응답형 교통의 현실적인 모델은 MaaS(Mobility as a Service)
수요 응답형 교통의 가장 친숙한 모델은 기존의 콜택시다. 택시는 수요 응답형 교통 또는 온디맨드 모빌리티(주문형 이동 서비스)의 원조격이다. 전화의 보급은 배회영업만 가능하던 택시에 ‘콜택시'라는 새로운 영업 옵션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택시에 통신이 접목됨으로써 온디맨드 모빌리티로서 택시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온디맨드 모빌리티는 이용자의 요구에 대응하여 이용자가 원하는 시간 및 장소로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하는데, 수요 응답형 교통은 이러한 온디맨드 모빌리티와 기존의 대중교통이 절충된 형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온디맨드 모빌리티는 현재 모빌리티 플랫폼의 대중화를 통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카카오모빌리티, 북미의 우버, 리프트, 중국의 디디추싱, 동남아의 그랩, 인도의 올라 등 세계 각국에서는 모빌리티 플랫폼이 등장하여 온디맨드 모빌리티 서비스를 빠르게 확산시켜왔다. 모바일앱을 이용해서 호출부터 결제까지 마치는 새로운 온디맨드 모빌리티가 전 세계 시민들에게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존처럼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거나 전화로 예약하는 방식을 압도한 것이다. 온라인을 통해서 검색 및 구매한 서비스를 오프라인에서 경험하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가 이동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빌리티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MaaS(Mobility As A Service)를 제공하는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로 수렴해 왔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용자의 최적 이동에 맞는 이동수단을 하나의 앱으로 통합 제공하는 서비스가 바로 MaaS다. 모빌리티 플랫폼은 하나의 앱으로 이용자의 이동 수요를 충족하는 것을 목표로 빠르게 진화해 왔다.
택시와 대중교통의 절충에 그치는 기존의 수요 응답형 교통을 보다 이용자 친화적인 서비스로 포괄하는 서비스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바로 MaaS다. 이용자들이 다양한 이동 수요와 맥락을 데이터에 기반하여 예측하고 최적의 이동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MaaS이기 때문이다. 전화와 택시 혹은 버스를 결합한 콜택시나 콜버스 정도의 수요 응답형 교통이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모델이 MaaS라고 할 수 있다.
MaaS의 분기점은 자율주행기술과 결합한 Autonomous MaaS
MaaS가 새로운 시대의 '대중교통'이 되는 분기점은 곧 다가올 자율주행기술의 상용화에 따라 자율주행차 기반의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 즉, Autonomous MaaS로 진화하면서부터가 될 것이다. 이미 해외에 이어 국내에서도 자율주행차의 임시운행이 허가되고 있고, 자율주행자동차법이 시행되면서 자율주행에 기반한 여객운송서비스, 즉, 로보택시(robo-taxi)의 상용화도 가시화되고 있다. 로보택시 도입은 기존 승차 공유가 가지고 있는 불특정 운전자로 인한 위험을 해소하면서 수요 응답형 대중교통 시대를 넘어 MaaS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 기술에 기반한 운송 서비스는 국내에서도 조금씩 상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초기에는 매우 제한적인 지역, 사람, 노선, 자율주행방식(세이프티 인원 탑승 의무 등)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겠지만, 데이터의 축적과 기술의 발전 속에 제약들이 하나 둘 사라지게 되면서 시나브로 현실에서도 자율주행에 기반한 이른바 로보택시를 쉽게 볼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 기반 MaaS는 일종의 "Software defined Transportation(소프트웨어 정의 교통)"
이렇게 로보택시가 모빌리티 플랫폼과 결합하여 이동 수요를 보다 쉽게 충족시킬 수 있게 되면, 대중교통의 메리트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특히, 기존의 고밀도 이동수단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이러한 Autonomous MaaS가 강력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에 기반한 이동체들이 군집주행 기술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택시에서 버스, 기차까지 전환되고, C-ITS의 발전으로 교통체계가 이를 뒷받침하여 가상의 기차들이 도로를 교통체증 없이 이동할 수 있게 된다면 더 강력해질 것이다. 모빌리티 플랫폼은 이러한 새로운 기술들과 쉽사리 결합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열린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교통시스템은 마치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를 통한 네트워크의 트래픽 전달 동작을 제어/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킹(Software defined networking, SDN)의 교통버전이 될 것이다. 이른바 소프트웨어 정의 교통(Software-defined Transportation, SDT)이다. 물리적 공간에서 이동하는 이동체가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호출되고, 출발지와 목적지, 경로가 정의되고, 이동 과정에서 이동체의 센서뿐만 아니라 교통 인프라의 센서를 통해서 교통 체계가 자동으로 관리되면서 교통 트래픽을 제어하고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SDN과 SDT는 닮아 있다. DRT-MaaS-SDT는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수요응답형 교통이 보다 발전해나가는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다수의 기업들과 연구자들은 충분히 현실적이고 안전한 자율주행 기술의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것의 현실화를 위한 규제와 시민들의 수용성이 뒷받침된다면, 코로나19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대중교통의 대안으로 Autonomous MaaS를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