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by 로즈마리

#로즈마리 #에세이 #세상을보는눈


세상을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려서부터 눈이 안 좋아 안경을 쓰지만, 안경은 좋은 점도 많다.

나는 고등학교 때 갑자기 키가 커서 앞줄에서 뒷줄로 자리 배치가 되면서 칠판이 안 보였다. 시력이 0.9에서 0.6으로 내려가면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안경이 너무 예뻐서 빨간색 동그란 안경을 맞춰 썼다.


뭔가 안경 쓴 얼굴이 맘에 들었다.

늘 항상 안경을 깨끗하게 닦았고 그런 안경으로 본 세상은 맑고 투명했다.

그런데 불편한 점도 많았다. 운동을 좋아했는데 축구공이 날아와 안경 정면에 맞아서 눈은 보호되었는데 안경알이 깨지는 바람에 비싼 돈을 들여 또 안경을 맞춰야 했다.

그래도 안경알의 파편이 눈에 들어가는 불상사는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수영도 배웠는데, 물안경에도 도수를 넣은 안경이 있었지만 그렇게 성능이 좋은 것은 아니어서 불투명한 수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에어로빅을 할 때나 스포츠댄스를 할 때도 안경테 주변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야 하고 날씨에 따라 뿌옇게 변하는 기온 차도 불편감을 느껴야 했다. 겨울에 스키장에서는 더욱 실감 난다. 안경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젊을 때는 안경 대신 렌즈를 많이 착용했는데, 젊을 때는 하루가 길어서 장시간 착용으로 인한 오염이나 부작용도 많았다. 잦은 렌즈 착용은 망막의 불균형을 갖게 되어 굴곡이 생기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작 라식수술을 하고 싶어서 병원을 찾았을 때는 망막의 두께가 얇아지고 굴곡이 생겨 수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은 너도나도 많이 수술하지만 그땐 세상 중요한 감각기관인 눈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함부로 수술하기도 겁나던 시기였다. 나는 수술 대신 다초점렌즈의 안경을 맞추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40대에 컴퓨터로 업무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갈수록 나의 눈은 나빠졌지만 일찍부터 다초점 안경에 적응해서 그런지 난시도 심하지 않고 노안도 좀 천천히 와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안경을 벗고 책을 보지는 않는다. 일찍부터 노안이 왔지만 그나마 다초점렌즈 덕분에 시력을 잘 유지한 셈이다.


지금은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종종 선글라스를 쓴다. 운전할 때나 여행할 때나 산책할 때도 색안경은 필수 장착품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평소 쓰는 안경이 스스로 색이 바뀌는 안경이 나온 것이다. 실내 온도를 빨리빨리 받아들이지 못해서 금방 바뀌지 않는 것 같아서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는 것처럼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면 차츰 투명하게 바뀌는 게 신기했다.


예전에는 평소에도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끔 시각장애인이어서 그런 경우가 있었다. 물론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흰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그냥 일반적인 검은 선글라스를 쓴 아저씨들이 시각장애인으로 오해받기도 했을 것 같다.


요즘은 안경 공학도 많이 발전하여 렌즈를 안구에 삽입하는 시술도 하고 다양한 라식수술도 많지만 뭔가 새로운 기구가 인체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은 없는 것인지 의심이 드는 나이라 뭔가를 시도하지 않게 된다. 특히 눈과 얼굴 부위는 더욱 소중한 것이라 그렇다. 요새 VR을 끼면 투시가 되는 안경도 있는데 시공간을 투시하는 투시경도 있다. 모두 다양한 목적에서 유용하게 쓰이지만 정작 사람의 마음을 투시하는 투시경은 없는 걸까?


세상에 가득 담긴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가려지는 것들 없이 순수하고 맑은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투시경이면 좋겠다. 내 몸에 걸쳐진 옷들과 가방과 신발의 브랜드를 빼고, 인위적인 허례허식과 교양을 겹겹이 쌓아 포장하는 가식적인 말들을 다 흘려듣고 오로지 말의 본질과 본심을 볼 수 있는 그런 순수한 투시경이 우리의 눈에 장착되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외적인 외모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고 내적인 평안함과 자기애가 더 아름답게 비칠 텐데 말이다.

“사람은 외모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적 가치를 봐야 할 것이다”


@로즈마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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