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 다운 시간의 경험

브런치와 이룬 작가의 꿈

by 로즈마리

가장 나 다운 시간의 경험은 바닥을 치고 올라올 때의 도전과 용기의 황홀경이다.

그날도 그냥 일상적인 하루였을 뿐이다. 체육수업을 하던 내내 펄펄 뛰어다니는 아이를 따라다니며 약한 체력을 다 쏟았다. 힘든 수업을 마치고 하교 지도를 나가는데, 자원봉사자의 손을 잡고 있던 그 학생이 갑자기 뛰쳐나가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학교 앞은 바로 찻길이라 눈앞이 캄캄했다. 급하게 학교관리자에게 보고하고 모든 선생님이 동원되어 비상 탐색조를 운영해서 삼삼오오 찾아 나섰다. 2시간이 넘게 찾아다녔는데 못 찾았다. 가슴이 미어지고 애가 탔다. 급기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걱정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관리자들은 한심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관리 소홀 때문에 위급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있을 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전철역에서 배회하는 장애학생 을 발견했다며 CCTV의 사진을 보내주며 이 학교 학생이 맞냐고 물었다. 역무원의 도움으로 학생의 동선을 확인했다. 그런데 전철이 오고 가는 선로를 무단횡단하고 있는 학생이 맞은 편에 있는 갑판 대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가지고 튀는 것 아닌가!!! 오래된 역이어서 전철이 오고 가는 선로가 무릎 높이까지밖에 되지 않아서 쉽게 뛰어오르거나 내릴 수 있었다. 전철이 오는 시간이었으면 큰일이 날뻔한 것이다. 나는 너무 떨리고 흥분돼서 심장이 벌렁벌렁하였다. 간신히 혼비백산으로 가슴을 쓸어넘기며 학생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렇게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며 격려와 위로를 보내주셨지만 역시 관리자의 매서운 훈계는 피해갈 수가 없었다. 사실 교직에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이 내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뇌병변장애 학생의 신변처리를 하고 번쩍 들어서 휠체어에 앉히려다가 팔이 순간 휘었는데, 갑작스런 통증과 함께 팔에 감각이 없이 늘어지는 것이다. 매달려있던 팔이 툭 떨어져나간 느낌이었다. 인대가 끊어진 것이다. 부랴부랴 응급실에 가서 깁스를 하게 되었다. 3주동안은 오른쪽 팔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그 팔을 하고서도 병가를 쓸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이어지는 사건과 사고가 나를 부적응교사로 낙인찍게 만들었고 나는 교직을 떠나고 싶었다.


그때 당시 나는 10년차 경력교사였지만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늘 자신만만하던 내가 의기소침해지고 아무하고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고 나만의 굴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냥 그 상황에서 도피하는 선택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연구원으로 전직도 하고 싶고 유학도 가고 싶었다. 독하게 마음먹으니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이후의 모든 시간을 덤덤히 이겨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책상 앞에 “지금보다 늦을 때란 없다” “성취는 도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런저런 말을 써서 붙여놓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늘 공부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경력교사로서 외길 인생 30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삶을 이어간다. 도전을 위해서는 마음속에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커다란 그릇에 물이 채워질 시기를 기다렸다가 마지막 한 방울을 더 보태는 것이 용기다. 자기가 품은 그릇의 크기대로 조금의 감정만 보태면 된다. 자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진정한 용기의 시작이다. 그렇게 만난 것이 브런치 작가의 꿈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마치 소녀적 작가의 꿈을 꾸는 것 같다. 이 세상의 걱정과 근심을 가둔 채 나의 꿈만 생각할 수 있는 시점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며, 조금 늦은 듯하지만 앞으로 평생 글을 쓰고 싶다. 가끔 먼 길로 돌아간다 해도 그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경험은 또 다른 의미를 줄 것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순간의 경험은 작가로서의 또 다른 도전과 용기이다. 글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그동안 경험했던 나의 모든 감정을 끌어안고 위로하고 싶다.

평창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매거진의 이전글나다움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