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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ie Nov 20. 2022

북유럽 개인주의에서 찾은 ’내가 원하는 삶‘

스웨덴 노부부가 알려준 북유럽의 개인주의, 얀테의 법칙

 

아니타&로시의 집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아니타의 집에 도착했다. 큼지막한 창문들과 그 앞에 놓인 다양한 반려 식물, 알록달록한 커튼, 벽을 잔뜩 채운 액자들, 개성 있는 조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길 닿는 모든 곳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고, 저마다의 색을 지닌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룬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지긋한 연세의 노부부의 집이 이렇게 매력적이라니.


 테라스 밖에는 드넓은 밭이 펼쳐져 있어 저 멀리서 오는 누군가를 마중할 때에는 망원경을 쓴단다. 정원에는 토마토, 고추 등을 기르는 작은 온실도 있는데, 그곳에서 직접 기른 채소로 요리를 한다.


잠들기 전 소소한 티타임 시간. (과자와 치즈&잼, 그리고 따뜻한 차를 내어주셨다.)
스웨덴 노부부와의 대화

 이틀 밤을 묵었던 아니타의 집.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하고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반대였다.


 함께 모여 아침 식사를 나누었고, 스웨덴만의 특별한 문화인 피카 시간에도 가벼운 디저트와 대화를 나누었다. '스웨덴 게이트'를 익히 들었던 내게, 피카 타임에 빵을 내어준 아니타의 행동이 조금은 놀라웠다. (스웨덴 게이트에 대한 아니타와의 대화 내용은 다음 글에서.) 그리고 잠에 들기 전에도 식탁에 함께 모여 소소한 수다를 떨었다. 한국보다 더 따뜻한 가족 같은 정이 이곳 스웨덴에 있었다. 이 사람들이 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신선한 재료로 가득 채워진 스웨덴식 아침식사


북유럽의 개인주의

 우리는 흔히 '외국 사람들은 너무 개인주의적이야'라는 생각을 한다. 가족 간의 정도 약하고 자기 자신이 최우선인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러하다. 특히나 '느슨한 연대'를 지향하는 북유럽의 문화는 개인주의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이들이 사고하는 방식의 근간이라고나 할까. 다만,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개인주의는 너무나도 단편적인 면만을 바라본 반쪽짜리 개인주의일 확률이 높다.


 개인주의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주변 사람들 간의 정이 얼마나 끈끈한지 그 점성의 정도에 따라 개인주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따르는 가치에 따라서가 아닌,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삶이 가족과 자주 함께하고 끈끈한 정을 나누는 것이라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고, 그게 하나의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치를 따라간다면, 상대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안다고 자부하는 가치이기에 쉽게 조언을 하고 상대방에 대한 내 판단을 전한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니 경쟁은 더 심화되고 만족하는 삶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우리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하는 삶의 모습이다.


 일례로, 스웨덴에서는 '너 예쁘다'라고 말하는 것도 실례라고 한다. 이 또한 남을 판단함으로써 나오는 표현이고 상대방을 내 시선으로 판단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회에서는 타인에 대한 나의 시선을 드러내거나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세심한 배려가 암묵적으로 잘 정착되어 있기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더 쉬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바탕으로 내가 정의한 개인주의는 '확고한 주체성'에 가깝다. '나 다운 삶', '나만의 취향'과 같은 결이지 않은가. 최근 젊은 세대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방향성과 일치한다. 그리고 모든 사고방식이 개인의 주체성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타인을 존중하고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정착된다. 내가 중요하듯, 타인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유럽의 문화의 근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얀테의 법칙'을 먼저 알아야 한다.


얀테의 법칙



*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에 존재하는 생활 규범. 한국의 "연장자에게 높임말을 사용해야 한다. "와 비슷한 수준으로 생활 기저에 깔리는 강력한 규칙이다. 요약하자면 '겸손의 법칙'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출처 : 나무 위키)






 '하지 마라'라는 말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자세히 읽어보면 저 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전달해주고 싶은 누군가가 떠오른다. 보통 회사 상사이거나 '난 척'을 자주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주변 사람일 것이다.


 스스로를 남들보다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언제나 '난 특별한 존재야'를 외치는 서점의 베스트셀러. 아이들에게 특별한 존재임을 알려주라 조언하는 심리전문가가 있는 우리 사회와는 정반대다.

 나는 이 현상이 전체주의가 결부된 우리 사회의 결핍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 스스로의 특별함을 깨우치기 어려운, 즉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기 어려운 우리에게는 '너는 특별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특별해지기 위해 모두가 애를 쓴다. 하지만 개개인은 특별한 존재인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각자가 확고한 주체성을 지닌 문화에서는 '너는 특별하지 않아'가 생활의 규범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유럽을 여행하다 마주치는 슈퍼카에는 언제나 지긋한 연세의 할아버지가 타고 계셨다. 젊은 사람이 이른바 '있어 보이는' 행태를 하는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기반의 사회에서는 "그게 왜?"라고 충분히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이 더 성숙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이들에게도 ‘반 얀테의 법칙’이 생기는 등 기존의 문화를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 움직임들이 나오고 있다. 얀테의 법칙이 개인의 개성을 저해시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최상위 행복국가의 자리를 유지하는 북유럽의 힘은 얀테의 법칙을 근간으로 한 평등과 신뢰의 사회, 그 속에 속한 개인의 주관적 행복감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특별해지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특별한 만큼 네가 특별한 것이 당연한 그런 삶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니타와 로시에게서 진정성 있는 겸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삶과 생각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 우리에게 배움을 찾는 모습들을 보면서.


스웨덴 노부부와의 이야기 다음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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