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07(화) 점점 길어지는 키예프 생활
'발릭 나 세탁기 좀 써도 될까??'
염치없는 카우치서퍼는 세탁기를 쓰기 위해 출근한 발릭에게 와츠앱을 보낸다. 사진을 찍어 보내 어떤 버튼으로 세탁해야 하는지 어떤 세제를 써야 하는지 물어본다. 너무나 친절한 발릭은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카우치서핑이 사실 한 3일이 넘어가면, 서로 간의 환상도 좀 깨어지고 슬슬 지내기가 불편해지곤 한다. 그러니까 눈치 보면서 3일 정도는 연기할 수 있지만 긴장이 좀 풀어지면 나도 모르게 집 구성원처럼 맘대로 하게 되기도 하고 집주인도 나를 더 이상 손님처럼 대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사정 아니면 3박까지만 하려고 하는데, 발릭은 너무나도 고맙게 나에게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라며 허락을 해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이런 사소한 것들 빨래나 청소나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데 나는 웬만하면 호스트가 출근했거나 외출했을 때 다 처리해놓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럼에도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바닥을 쓸고 닦고 주방과 화장실 정도는 청소를 해놓는 편이다. 뭐.. 먹고 살기 위해 카우치서핑에서의 생존방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말도 안 되는 요리를 먹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친구와 함께 드네프로 강 건너편에서 노을을 보기로 했다.
구글맵에 보행자 다리 Pedesterian bridge 뭐 이런 식으로 표시가 되어있는데 건너가면 신기하게도 백사장이 있다. 진짜 바닷가처럼 고운 모래가 펼쳐져있고 역시나 태닝 좋아하는 백인들인지라 낮에는 수영복을 입고 누워있는 사람이 많다. 항상 지나가며 반대편에서 보면서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함께 가주는 친구가 있어 그곳으로 갔다.
타임랩스를 설치하고 노을을 보고 돌아왔다. 이제는 제법 키예프에서의 생활이 익숙하다. 밤거리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인종이 많이 섞이지 않아서가 아닌가 하고 짐작해본다. 우크라이나의 치안을 사실 많이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다. 길을 쭉 걸어 독립광장 근처까지 갔다. 친구가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혼자 길에 앉아 국수를 먹었다. 이 친구들은 빈말로 거절하거나 허락하는 경우가 없는 것 같아서 나도 더 보채거나 조르지는 안흔다. 독립광장 근처에 있는 버스 티켓 파는 것 같은 부스에서 파는 국수였는데, 역시나 맛은 없다. 국수 요리가 보기 힘들어 유럽에서 발견하면 뭐에 이끌린 듯이 가서 시켜먹곤 했는데 항상 실패다. 본인들이 즐겨먹는 요리가 아니다 보니 제대로 만들어질 리가 없다.
친구와 헤어지고 발릭을 만나러 Grails Bar로 갔다. 키예프에서 아마 제일 핫하고 평일에도 늦게까지 북적한 곳이 아닐까 싶다. 발릭은 IT인재였는데, 출근시간이 탄력적이어서인지 평일에도 노는 걸 즐긴다. 22살이니 젊기도 하고 워낙 건강하다 보니 이날도 새벽 4시까지 마신다. 이날은 특이하게 콘트라트코바 광장 옆에 있는 공원에서 4시까지 마셨는데, 노래하는 사람도 많고 굉장히 유쾌하게 놀았다. 그 앞에 실포라는 마크가 있고 12시까지인가 2시까지 술을 판매하는데, 그 늦은 시간에 술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서 한 번 술을 사려면 15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