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내리는 비

시&노트

by 여상

[2월에 내리는 비]

- 산불

2월의 하늘에 비가 오시네.

얼마나 고마운가.

미처 끄지 못한 잔불과

숨어있는 불씨 조차

자작자작 슬픈 손길로 적셔 주시네.


새봄을 기다렸다네.

길고 혹독한 계절을 견디며

수백 수십 년 맑은 숨을 내주던

아름드리 아름다운 나무들,

이제 막 깨어나던 풀뿌리와 몽우리들

어쩌나.


겨우내 혹한을 견디어 온 어린 고라니,

맷돼지, 오소리, 산비둘기들,

잠을 자던 곰들과 뱀과 개구리,

꼬물꼬물 일어나던 작은 벌레들,

바람든 문턱까지 다가왔던 이 봄을

어찌한단 말인가.


마른 하늘에 벼락이 떨어졌나?

나무끼리 비벼대서 불이 붙었나?


어쩌나 이 못난 것을

얼마나 못났기에 불을 질렀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애를 태우며 얼굴 태우며

발을 동동 굴렀던가.


비가 오시네.


이 업보를 어찌할까.

못났구나, 꾸짓듯

이 노고를 어찌할까.

애썼노라, 위로하듯


2월 하순 하늘에

묵묵히 내리는 비.




note

산불 위에 극적으로 눈이 내리더니, 어제에 이어 오늘 새벽까지 비가 내려주고 있다. 덕분에 잔불마저 샅샅이 꺼져 줄테니 금번 산불진화는 마무리가 된 셈이다. 최선의 긴장과 호된 작전에 진이 빠진 산불감시 후배님과 동네 소방대원들의 어깨가 축 처져있다. "아이구, 어쩌나, 정말 고생들 많으셨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위로가 전부이니, 덩달아 나도 허탈감에 힘이 빠졌다.


마을 저편 강풍에 실려 시뻘겋게 타오르는 산야를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참담하고 허망한 일이었다. 현장 가까이까지 다가가 보지만 잔뜩 성이 난 자연 앞에서 인력이란 현저히 무력한 것이었다. 대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아이구, 아이구"를 연발하며 발을 동동 구를 뿐.


인근지역의 크고 작은 산불화재가 올 겨울만 4 번째. 화재 장소의 지형, 최초 발화시점 등에서 경향성이 느껴지며, 의도적인 발화의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마음 뒤숭숭해 오던 차에,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재해가 발생했으니, 몇 몇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의심이나 분노 같은 것이 차오르고 있었다. 평안했던 산골마을의 인심이 흔들리는 것은 산불만큼이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사흘간 온 산을 불태운 화마가 악전고투 끝에 20% 안쪽의 잔불로 남았을 때 헬기가 뜰 수 없는 밤이 와 버렸고, 밤새 바람이 불지 않기만을 기도하던 차에 눈이 내렸다. 그리고 이어서 비가 내려주기 시작했다. 누구나 할 거 없이 하늘을 쳐다 보았다. 어떤 이들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기도 했다.


축구장 327개.... 화재의 규모는 엄청났고 손실은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새봄의 길목에서 안타까운 자연의 식구들이 생명을 잃었다. 그 안에 인명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 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이 소화되었다.


어찌나 애를 썼는지, 사람 손으로 절반 이상을 가까스로 다스려 놓자, 하늘이 돕기 시작했다고 믿고 싶다.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던 이들을 식당이나 거리에서 만나면 그 노고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애쓴 이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죄없이 희생된 자연을 애도한다.




#산불

사진. 연합뉴스, kpi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