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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Apr 14. 2024

[서평] 사랑은 이별을 낳고, 추억의 권력을 준다.

김진영 『이별의 푸가』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당신이 말해주지 않았던 필연적인 것이 또 있다. 당신이 떠내려오고 내가 당신의 대바구니를 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어떻게 막아볼 길 없도록 이미 시작되는 것이 있다. 벌써 시작되고 이미 출발해서 아무리 재빠른 이후의 노력들도 아무 소용이 없고, 아무리 간절한 멈춤에의 소망도 너무 늦어버리는 그런 필연적인 것, 다시는 되돌릴 수 없도록 치명적인 것이 또 있다.



우리는 살면서 아주 많은 이별을 경험하고, 심지어 나 자신과의 이별도 예정되어 있다. 삼국지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에는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말. 우리는 수많은 이별 중 유독 이성과의 이별, 즉 사랑의 소멸로써의 이별에 꽤 집중한다. 실제로 이별은 어느 특정 개념에 종속되지 않은 그냥 떨어짐 정도의 의미만이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남녀의 갈라짐에 의미를 더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 김진영 역시 『이별의 푸가』에서의 이별은 사랑의 이별이다. 그는 이별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아는 어른스러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피한 진리를 받아들이기 싫은 어린아이다움이 혼재되어 있다. 매우 인간적인 정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애써 부정하고 싶은 것. 아픈 것은 피하고 싶은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이별을 대하는 한 남자의 정서라는 큰 그림 아래에 본인이 생각하는 사랑학(?)이 꽤 인상 깊은 부분들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너'와 '내가 만든 너'라는 구절이 특히 그러한데, 실제 연인은 서로를 만남으로써 서로를 닮아가기도 하고, 변화한다. 근거리에 기존에는 없었던 이성이 생기고, 그 이성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연인은 그전과는 달라진다.


그러면서, 서로는 각각의 존재로 인해 변화해가는 상대방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닐까? 연인이 되기 전의 상대방이 아니라, 연인이 되고 나서, 그리고 그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변해가는 그 모습에 사랑에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내가 만든 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동시에 나는 '너가 만든 나'로 정의되고, 너는 '너가 만든 나'를 사랑하는 거겠지.


또,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꽤 인상 깊었다. 추억이라 함은 오롯이 한 개인이 상상으로 구축하는 과거의 세계이며, 그곳의 모든 것은 추억하고 있는 사람의 통제 아래 있다. 즉, 있던 걸 없게 만들 수도 있고, 없던 걸 있게 만들 수도 있고, 겨울을 여름으로, 봄을 가을로도 만들 수 있는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추억의 권위자가 되어 사랑했던 사람을 추억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별자에게 남겨진 서로의 경험에 대한 최후의 권력이다. 추억으로 우린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사랑의 시작과 동시에 그 사랑에 대한 추억의 세상 역시 열린다. 창조자는 연인 둘. 각각의 세상은 그 어떤 교류 없이 최고 권력자에 의해 모든 것이 재창조되고, 다듬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의 현실을 살지만 추억의 가상으로도 살 수 있게 된다. 좋은 추억만 남기는 것, 창조자의 의지만 있다면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정이 배제된 좋은 추억속에 묻어두는 것. 그것이 바로 추억의 창조자인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종착지일 것이다.


『아침의 피아노』와 같이 감성적인 한 철학자의 깊은 슬픔과 덤덤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롤랑 바르트 연구자 다운 에세이이고, 아마도 바르트를 연구함과 동시에 그와 비슷하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소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있지만, 이것이 보편의 이별이고, 현실에 가까운 이별이다. 다만 김진영 작가는 그것을 조금 더 감각적이고 감성적으로 잘 풀어냈을 뿐이다.


어느 누가 이별에 대해 노래하든 그건 그만의 '이별의 푸가'가 된다. 나 역시 이별의 푸가가 있고, 너 역시 이별의 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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