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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May 25. 2024

[서평] 철학 그 자체를 설명하는 단어, 반(反)방법

파울 파이어아벤트 『방법에 반대한다』



아무리 옛것이고 불합리하다 하더라도, 관념치고 우리들의 지식을 개선시킬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93p



대학생 시절, 교양 과목으로 '과학철학'이라는 수업을 수강했던 기억이 있다. 교수님은 비건이셨고, 패션도 되게 독특한 아무튼 그때의 내 눈에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수업은 당연히 즐겁고 재밌었다. 암기를 해야 해서 머리를 싸매는 것이 아닌, 나만의 의견과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 때문에 골몰해야 하는 그것이 참 좋았다. 그렇게 나는 과학철학이라는 것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과학철학 서적은 과연 어떨까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고른 것이지만, 이 책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연한 부분이겠지만 철학보다는 과학에 조금 더 치중되어 있는 듯하다. 덕분에 과학에 무지한 나로서는 읽기 꽤 버거웠다. 난 특정 이론이 이렇고 저렇고는 큰 관심이 없다. 다만, 과학 이론들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반(反) 방법'이 유효했고, 철학 역시 그 아래에 있다는 점은 꽤 흥미를 끌었다.



우리가 철학을 가까이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각각의 철학자들이 그들만의 이론과 논리가 정답이고, 그 이전의 이론은 틀렸다고 강론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뜩이나 삶과 죽음에 대해 노래를 부르는 철학이 낯설 텐데, 그 방법조차 강압적이니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철학은 그래야만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변호하고 싶다.



예수님이나 신 아래에서밖에 사고할 수 없었던 중세 시대의 철학이 더 이상 우리 삶의 권리를 신에게 위탁하지 않고 과감히 가져와 우리의 생을 노래하는 근대 철학부터, 현대에 이르는 철학까지 무수한 철학들은 그 이전의 철학에 대한 방법에 무던히 반대해 온 결과물이다. 신을 기반한 맹목적 철학 없이 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니체가 나올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철학사를 보면 서로 대립을 한 위대한 철학자들이 수없이 많다. 철학은 그런 대립을 통해 마침내 시대에 선택돼 그 시대의 보편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방법에 반대한다'라는 말은 철학 그 자체를 설명하는 명쾌한 문장이다. 철학의 역사 자체가 반(反)방법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주의할 것은, 이전과 과거의 것을 맹목적으로 배격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다. 책에도 수없이 언급되지만, 과거의 이론이나 옛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조차도 반방법의 산물일 것이고, 나름의 설득력을 갖춘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옛것을 완벽히 반박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논리가 구축되지 않은 이상 우선권은 옛것에 있다.



기존의 것이 불합리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참 많다. 하지만, 기존의 불합리를 넘어 새로운 합리를 찾아나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어서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몇 보편의 인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새로운 합리를 찾아 나선다. 그게 바로 철학을 삶에 녹이는 사람이자 진정한 생의 철학자가 아닐까. 기존의 것에 대한 예우는 충분히 취하면서도, 더 나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 혁신가의 덕목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불합리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합리의 존재 이유는 어딘가에 있었다. 개선의 대상이지만, 왜 그것이 그 당시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 왜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는지는 명확히 알아야 한다. 무지에 의한 개선은 옛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혁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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