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개념-뿌리들』
철학이란 무엇인가? 결국 개념들을 명료화하고 종합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그 종합은 단순한 합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머금어야 하겠죠. 철학이란 한마디로 근본 개념들의 명료화 및 창조적 종합의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개념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명료화하고, 또 극히 이질적인 개념들을 종합적으로, 더구나 단순한 산술적 종합이 아니라 창조적 종합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것은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죠.
언제부턴가 나는 개념에 일종의 집착을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에 깊이 빠져들었고, 수십 권의 관련 책을 탐독하며 자연스럽게 서양 철학으로까지 관심이 확장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세상을 ‘개념의 틀’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가진 '개념의 틀'을 통과해 해석되는 식이었다.
개념은 주로 보고, 듣고, 말하는 의사소통 속에서 경험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개념이 작동하는 순간은 대화다. 혼잣말이든 타인과의 대화든, 나는 그 안에서 무심코 쓰이는 개념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가 나에게 충분히 해명된 것인지, 상대방이 말한 단어는 정말로 의도한 의미로 쓰인 것인지 신경 쓰게 되었다. 그렇게 개념을 감지하는 감각을 훈련했고, 지금은 나름 예민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이 『개념-뿌리들』은 내 삶의 태도를 더 단단히 해주는 지침서처럼 다가왔다. 서문에서 ‘개념의 뿌리를 밝혀야 한다’는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깊은 공명을 느꼈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만난 느낌이었다.
이 책은 개념의 뿌리를 파헤치는 작업인 만큼,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동양 철학까지 방대한 범위를 아우른다. 게다가 강의를 엮은 책이기 때문에 일정한 틀과 시간 제약 속에서 구성되었고, 중요한 설명이 종종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집필 목적과 시도 자체는 나처럼 ‘명확히 하려 애쓰는 자’에게는 단비 같은 글이었다.
개념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그 의미, 인식 수준, 영향력까지 달라져 왔고, 앞으로 우리가 사용할 개념들 또한 분명히 변화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알고 있어야 지금 쓰는 말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할 수 있다. 개념을 파고드는 자세가 곧 철학의 태도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깊이 사유하고, 그 함축을 음미하는 것이 철학적 사유다. 이러한 사유가 가능해질 때,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결국 철학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경험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태도는 삶의 행복을 결정짓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나는 믿는다. 세상의 바람에 그저 휘둘릴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인식 틀을 세워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철학적 사유와 그 인식의 틀은 분명히 후자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이 일종의 초월자일 수 있는 이유는, 유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시간 너머까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으면 존재는 사라지지만, 그 ‘죽음 너머’를 사유할 수 있고, 무한한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 개념조차 상상하고 사유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시공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사고력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 초월적 사고 능력조차도, 개인이 가진 인식의 틀에 따라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유를 멈추지 말아야 하며, 그 사유를 올바르고 행복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주체성을 갖추어야 한다. 『개념-뿌리들』의 저자 역시 그런 마음을 품고 집필했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개념들을 파고들어, 그 의미를 음미하고 사유를 확장하며, 우리 모두가 초월적 인식의 틀을 갖추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