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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재구성한 영웅 설화

브런치 무비패스 #5 "12 솔져스"

by 이이육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한 작품의 리뷰입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플롯을 가진 작품들은 특별한 힘을 갖는다. 한껏 작품을 감상하고 난 뒤 엔딩 크레디트 전에 나오는 "이 작품은 실제 일어난 일을 기반으로 합니다."부분에서,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게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각색일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일어난 일이라니.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12 솔져스"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첫 반격, 그리고 그 선봉대에 선 12명의 그린베레에 대한 이야기. 많은 미군들의 영웅담을 그린 영화가 그러하듯, 이 작품의 미군들 역시 엄청난 극한 상황에 내몰린다. 5만 명의 적군 앞에 오직 12명의 분대원뿐이고, 아군 민병대의 장군 역시 매우 비협조적으로, 텃세를 부리거나,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거나 하는 답답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형이 험준하고 장비가 열악해서 말을 타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 적과의 대치 중 예상치 못한 기갑 전력이 끼어들어 아군 민병대를 몰살시키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주인공의 분대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 임무를 완수한다.

전반적으로는 과하지 않은, 그러니까 흔한 전쟁 액션 영화라기에는 꽤 침착하고 담담한 톤을 유지하는 영화이다. 911 테러 직후 전개되는 첫 작전의 과감성,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묘사가 있고, 그 직후 현지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그리고 그들이 미군을 어떻게 대했을지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연출들이 있다. 또한 미군들의 주된 역할이 포격 지원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는데, 그런 연출들 덕에 이 영화의 현실적인 톤이 짙어진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액션 씬의 비중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리얼리티의 농도가 많이 옅어졌다. 후반부의 미치 넬슨 대위는 어벤저스의 토르를 방불케 하는 활약을 펼쳤다. 빗발치는 총알을 모조리 비껴내며 수십 명의 적을 학살하거나, 흔들리는 말 위에서 한 손으로 소총을 발사해서 적들을 무찌르거나, 아무리 엄청난 스펙의 그린베레라도, 저게 정말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실화 기반 영화라는 이유로 리얼한 톤을 계속 유지하는 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장면에 의아했다. 분명 극의 초반부에 말을 잘 타지 못한다는 언급이 나왔기 때문에 더욱 허구처럼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등장인물들이 마상에서 견착도 하지 않은 총으로 적을 학살하는 장면은, 그들의 영웅적인 면모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연출이 아니었나 싶다.

초반부의 밋밋한 연출, 그리고 후반부의 강렬한 액션. 개인적으로는 초반부의 톤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후반부의 액션씬에 어울리게끔, 액션 영화에 걸맞은 강렬한 캐릭터들을 각인시키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낫지 않았나 싶다. 초반부 분위기를 통해 이 영화는 미군이 등장하는 흔한 선전 영화와는 다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후반부에 가니 여지없는 선전 영화의 톤을 하고 있어 실망스러웠다.

적어도 선전 영화의 색을 옅게 하려고 한 여러 가지 노력들이 느껴지기는 했다. 전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가족들과 이별하는 장면을 최대한 덤덤하게 그려낸 전반부도 그러하고, 민병대의 장군 역시 그런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할 정도로 꽤나 비중이 있었다. 하지만 전자는 앞에서 말했듯 후반부의 액션씬에 의해 꽤 많이 상쇄되었고, 민병대 장군은 시종일관 답답한 행보에, 헛웃음이 나오는 이상한 철학이나 내뱉는 캐릭터로 보여서 안 하느니만 못한 노력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나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실화가 있었구나, 알 수 있는 여지를 주고, 또한 단순히 액션 씬만 보았을 때는 - 람보적인 연출에 반감이 없다면 - 매력적인 영화이다. 크리스 헴즈워즈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토르보다는 미치 넬슨 대위로 보였다. 전쟁의 참상, 그리고 그 속에서의 현실적인 군인들의 모습을 담지는 못했지만, 유쾌하고 멋진, 그리고 애국심 넘치는 군인들의 모습은 제대로 그려냈다. 민병대 및 현지인들의 비중을 늘리려는 노력 역시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많고 흔한 선전영화에 비하면, 이 영화의 성조기는 물이 빠져있는 편이라서 영화를 보는 동안에 크게 거북하지는 않았다. 심오한 수준을 기대하지 않고 간다면, 괜찮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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