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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흐름을 닮은 묵묵한 위로

브런치 무비 패스 #6 "리틀 포레스트"

by 이이육

갖가지 상처와 실패들을 뒤로한 채 주인공 "혜원"은 도시를 떠나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인 시골 마을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친구이자, 고향 마을을 계속 지키며 자라온 "은숙", 그리고 "재하"와 재회하고, 농촌 생활을 시작한다. 영화가 전개되는 동력은 시골 마을에서의 계절의 흐름, 그리고 혜원이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보낸 엄마와의 추억의 조각들이다. 그리고 그 주된 흐름 위에, 혜원과 친구들이 잔잔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주인공의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이 아닌 계절의 흐름과 발을 맞추고 있기에,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간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삶에 과하게 파고들지 않고, 약간 먼발치에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그저 비출 뿐이다. 담백한 곳에 위치한 영화의 앵글은, "사나흘 있다 돌아갈 거예요."라고 투덜대던 혜원이 시골에서 1년을 생활하고, 위로받고, 자신만의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을 비춘다.


이 영화의 판타지적인 요소는 힘들 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게다가 풍요롭기까지 한 시골 마을의 존재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삶에서 현실적인 요소들 - 휴양, 여행, 휴가 등 - 로 대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 중 시골이라는 공간은 혜원이 가진 문제를 마법처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저 혜원은 차가운 현실을 벗어날 곳으로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시골 마을을 선택했을 뿐이고, 그곳에서 자연의 흐름에 맞춰 느리게 살아갈 뿐이다. 즉, 현실과 유리된 점에서는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 설정되어 있지만, 그 속의 전개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그래서 영화가 인위적이거나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고,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혜원이 가진 현실의 문제들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괜찮다고 격정적으로 말하거나, 등을 토닥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시골 마을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고, 스크린 앞의 관객은 그저 그녀가 묵묵히, 그리고 즐겁게 사계절을 살아가는 과정을 볼뿐이다.


"농사는 사회생활과 다르게 계산이나 사기가 통하지 않는다. 정직해야지만 잘할 수 있다. 그래서 난 농사가 맞다."라고 재하가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상처받고 실패한 혜원에게는 스스로를 괜찮아지게 할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괜찮아질 만큼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혜원은 1년의 시간을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에 돌아와 머무르고, 사계절이 순환하는 1년이라는 시간 끝에 마침내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해답을 찾게 된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흐름 역시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를 볼 때, 눈물샘을 자극하는 플롯,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 복받치게끔 설정된 장면, 그리고 차려진 분위기 속에서 결정적으로 눈물의 수도꼭지를 여는 대사 한 줄, 그런 요소들로 인해 펑펑 울 수 있고, 그런 눈물을 통해 어떤 영화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에는 누군가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도, 호소력 넘치는 푸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길게 늘어뜨린 두 시간의 농촌 생활, 지나치게 깊지 않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대화, 그리고 과하지 않게 행복해하는 혜원과 친구들의 시간들이 담겨 있다. 마치 절묘하게 계산이라도 한 듯, 영화 속에 담긴 감정, 깊이, 거리 같은 요소들은 과하지 않게,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줄 만큼 적당하다.

두 시간 동안 적당히 잔잔한 템포로 흘러간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감동, 그리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였다. 재하가 정직하게 하루하루 묵묵히 농사를 짓듯, 혜원이 달리 해답을 찾지 않고 농촌 마을에서 1년의 세월을 보냈듯, 누군가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기 위해, 이 영화는 자극적인 신파 영화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아닌, 꽤나 정직하고 우직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속도, 세기, 흐름. 흠잡을 것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는 것은 환상적인 영상미이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풍경은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새하얀 눈밭, 싱그러운 봄, 찔 듯한 더위, 그리고 수확의 계절까지. 그렇게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변하지만, 아름답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 시골 마을의 풍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눈밭에서 뜯어낸 봄배추로 끓인 소박한 된장국에서부터, 진달래를 토핑 한 파스타까지, 자연으로부터 얻은 재료를 한 상에 담아낸 요리도 즐길 거리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을 근심 걱정 없이 그저 즐길 뿐인,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매력 넘치는 세 등장인물인 혜원과 재하, 은숙의 모습 역시 보는 내내 훈훈한 미소가 나왔다. 마치 은은한 향을 퍼뜨리는 들꽃처럼 시각적, 청각적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장면들이 가진 영상미는, 위에 나열한 장점들 만큼이나 큰 비중의 매력을 차지한다. 스토리랄 것이 크게 없는 작품이지만 보는 내내 흥미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매력적인 영상미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잔잔한 위로를 받았다. 보편적인 속도에 맞추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 남들 하는대로 다 하며 살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해서 실패한 삶은 아니라는 것이 이 영화가 준 위로였다. "잠시 쉬어가도, 조금 달라도, 서툴러도 괜찮아." 영화 포스터에 새겨진 문장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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