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이육 Oct 12. 2023

8년 만의 야외 공연 후기

 5시 공연의 리허설은 4시 반. 한창인 축제로 향하는 골목길에서 하는 무대였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서 가면 늦을 것 같아 3시쯤 집을 나섰다. 쉽지 않은 주차를 마치고 시끌벅적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플리마켓, 사물놀이, 그런 것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을 따라 걸어 공연하기로 한 위치에 도착했다. 아직 무대를 설치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근처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잔 시켰다. 가을의 초입은 언제나 과속을 하는 법이다. 2주 전만 해도 반팔을 입어도 더웠었는데, 이제는 겉옷을 챙겨 입어도 약간의 쌀쌀함이 느껴졌다. 케이스에 든 기타를 앉은자리 옆에 세워두고, 공연할 기성곡을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자작곡의 가사를 확인했다. 가사를 틀리면 어쩔 수 없지. 그게 라이브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리허설 15분 전쯤 되니 가슴이 빠르게 뛰어왔다. 언제나처럼 차분하던 가슴이 공연 직전 난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무대를 많이 해야 긴장을 하지 않게 될지 잘 모르겠다. 여럿이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밴드의 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혼자 무대를 채우는 것이 더 버거울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10분 전쯤 자리에서 일어나 리허설을 하러 갔다.

 리허설은 간단하게 끝났다. 기타 연결이 잘 되는지, 엠알 볼륨이 조금 작으니 좀 크게 틀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 마이크 스탠드를 사용한다는 이야기, 그 정도만 하고 끝을 냈다. 내 앞으로 한 팀, 뒤로 두 팀, 총 네 팀의 리허설이 끝이 났다. 그리고 곧바로 공연이 시작됐다.

 두 번째 무대였기 때문에 첫 팀의 무대를 보며 성대와 긴장을 동시에 풀 생각으로 기다렸다. 리액션이 좋은 관객들이 열 명쯤 있었다. 떼창을 하기도 하고, 환호를 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기차놀이를 하기도 했다. 제발 내 뒷 팀의 지인이기를 바랐는데, 아쉽게도 첫 팀의 지인들이었다. 내 첫 곡을 시작하려고 하자, 첫 팀과 기념촬영을 한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뭐라 단적으로 말하기는 힘든 묘한 기분이 됐다. 관객이 없다고 무대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엔지니어님에게 신호를 했고 첫 곡의 반주가 나왔다. 무대 위에서의 오랜 버릇이라 그런지, 스탠드에 끼워진 마이크 앞에 서서 뒷짐을 지고 눈을 감은 채 짙은의 백야를 불렀다. 첫 곡을 끝나고 눈을 떠 보니 내 뒤에 공연을 할 팀의 멤버들, 그리고 바삐 지나가는 행인들만이 있었다. 순간 정말 좋아하는 영화 원스가 떠올랐다. 버스킹을 하는 주인공을 그저 지나쳐가는 행인들. 이따금 고개를 돌리거나, 기타 가방에 돈을 던져 넣는 식으로 노래를 듣고 있다는 표시를 하는 이들의 모습. 그 장면과 내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니 비록 앞에 서서 보는 관객은 없어도 지금 처지가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준비해 온 반주에 맞춰 두 곡을 불렀고, 나머지 세 곡은 기타를 잡고 불렀다. 원래는 자작곡을 세 곡 할 예정이었는데,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치는 모습을 보니 익숙한 노래라도 하면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보지 않을까 싶어 예정된 자작곡 하나를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로 바꿔 불렀다. 정말 오랜 시간 불러온 노래라 그런지 따로 연습을 하지 않았지만 안정적으로 불렀다.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흔한 교훈을 다시금 되새겼다. 자작곡을 할 때 의외로 사람들이 돌아보는 모습이 보여 나쁘지 않았다. 밴드동아리 시절 이후 처음으로 불특정 다수 앞에서 한 공연을 그럭저럭 잘 마무리했다.

 공연이 끝나고 녹화된 영상을 보았다. 분명 완벽하게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한없이 부족한 실력이 여과 없이 담겨있어 민망했다. 정말 잘 부른다고 생각했던 다른 팀들은 흔들림 없이 잘 부르는 모습이 영상 속에 담겨있었기 때문에, 내가 부족하게 부른 것이 틀림없었다. 또 기타를 들고 부를 때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이 보였다. 혼자서 오롯이 무대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기에 항상 기타와 노래를 함께 준비했다. 그런데 악기와 노래를 함께 하면 퀄리티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당연한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노래만 부르는 경우보다 훨씬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 사소한 생각들도 몇 가지 했다. 무대에는 최대한 미니멀한 패션으로 입고 올라가는 게 보기 좋다는 것. 더 작은 기타를 사고 싶었는데, 지금 기타를 메고 있어도 내 체형 대비 그렇게 작아 보이지는 않아서, 더 큰 기타를 사면 몰라도 더 작은 기타를 메면 어색할 수 있겠다는 생각. 겨우 한 번의 공연을 했을 뿐이지만, 한 번의 공연을 하기 전에는 결코 할 수 없었을 생각들을 많이 했다.

 밴드동아리를 하던 시절에는 큰 생각 없이 무대에 섰던 것 같다. 팀이 구성되어 있었고, 매 분기 공연이 있었다. 그것에 맞춰 공연곡을 합주하고 무대에 섰을 뿐이었다. 물론 즐거웠고, 멋진 추억들로 남아있지만, 그 위를 달리던 나는 쳇바퀴를 굴리듯 별 판단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은 판단을 한다. 어떻게든 혼자서 풍성하게 무대를 채워야 하니까, 지금 연습하는 곡이 고정적인 세트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좋은 자작곡을 더 많이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자작곡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차별점이니까. 하지만 자작곡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은 자작곡을 써서 차별화를 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거듭한다. 불안한 음정과 박자는 결국 연습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어쨌든 모든 깨달음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으로 수렴했다. 아직은 나는 음악을 열심히 하고 싶은 것 같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 부족한 공연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youtu.be/OUvltdHJlMk?si=zBKHnSxF5CV4IGGi


https://youtu.be/JwLXW8VYUYQ?si=_LFkjUr1u9Vr5wFB

매거진의 이전글 의미가 돼 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