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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May 19. 2016

귀에 꽂은 음악과 인생의 상관관계

Lucia - Inner를 듣고

 4년째 드럼을 쳐온 친구는 요새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밴드가 예전만큼 재밌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친구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릴 수 있었다. 음악으로 밥 벌어먹을 생각은 전혀 없는 인생들, 취미 밴드 수준에서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밀어붙이며 여기까지 왔다. 내 음악을 낼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돈을 댓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취미밴드의 끝은 명확하다. 그렇게 잃을 것이 많은 취미밴드이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지만 밴드라는것은 집단의 가치관의 혼합이기에, 모두가 좋은 것을 하기는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친구는 자신만의 드럼 연습실을 갖고 싶어했다. 그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더이상 밴드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는 친구에게 건넸던 말들 중 한 문장이 떠오른다. "밴드는 철저히 자기 소모적인 취미야. 다수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의 감정 소모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나는 합주곡을 듣고 연습하는 그 순간이 사실 가장 크다고 생각해. 그 곡에 자신의 시간과 정신을 맡기는 거니까. 그런 소모적인 취미가 재미까지 없다면, 난 계속하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리고, 친구에게 건넨 그 한 문장은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말과 큰 관련이 있다.

"만약 이층 버스가 우리를 들이받는다면, 네 곁에서 죽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이겠지." - The Smiths -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꽤나 우울했던 몇 달간의 인생 동안, 내 일상을 수놓은 음악들은 The Smiths, Lana Del Rey, Birdy, Nothing but Thieves 등, 다소 우울한 것들이었다. 이어폰을 거의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타입인지라, 어디를 가든 혼자 간다면 이어폰을 꽂고 다녔고, 그런 음울한 음악들은 내 일상 속에 항상 울려퍼졌다. 그리고 이따금, 내 일상과 저런 음악들이 시너지를 이루는 날이 있다. 가령 햇살이 맑은 날 권총자살을 하는 상상을 하는 날, 비오는 날 호수를 보며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날, 텅 빈 방에서 내가 사라지면 누가 슬퍼해줄까 따위의 상상을 하는 날. 나의 상념들을 들어주는 친구는, 그런 생각을 떨쳐내지 않으면 결국 거기에 갇혀 버리고 말 거라는 조언을 했다. 내 대답은 확고했다. 내 감정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면 이런 감정에 빠져있을 이유가 있나. 그런 가시돋힌 대답을 던져낼 뿐이었다. 친구는 그저 그런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싶은 것 뿐이라며, 그건 조금씩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의 그런 말이 시덥잖고 무책임한, 공감이 결여된 말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루시아의 새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 모처럼 밝은 노래나 들어보자 하고, 곡들을 차근차근 듣기 시작했다. 루시아의 노래는 전집을 거의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듣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앨범의 오리지널 트랙으로 삽입된 Inner라는 곡을 무심코 듣게 되었다. 그런데 내 귀에 들려오는 그 곡의 가사는 굉장히 마음을 때리는 그런 것이었다. "난 괴롭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요.", "네게 정말로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그대의 안에 다 있어요." 이런 가사는 매우 밝은 멜로디와 함께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다.


애를 쓰는 것도 참는 것도 아무 의미 없다고
잠에서 깨면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

늦은 오후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앉아서
나의 허공을 노려보는 것도 지칠 때쯤

구원자를 보내줘요 난 누구라도 좋으니 단 한 번만
내 이름을 불러줘요 난 괴롭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요

믿었던 꿈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대를 등지고 깊은 생채기만 남겼대도

잊지는 말아줘
네게 정말로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그대의 안에 다 있어요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에 숨어있는 자신이
나조차 이제 익숙해져 가고 있을 때쯤

내 악마를 죽여줘요 난 스스로 다치게 할 것만 같아요
이 형벌을 끝내줘요 난 한 번도 뜨거워 본 적이 없어요

믿었던 꿈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대를 등지고 깊은 생채기만 남긴대도

잊지는 말아줘
네게 정말로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그대의 안에 다 있어요

길었던 밤들이 터질 것 같은 앙금이
눈물로 차올라 깊은 물 속으로 잠긴대도

잊지는 말아줘
네게 정말로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그대의 안에 다 있어요


 오늘 아침은 햇살이 따가웠다. 보통 그런 햇살에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울한 노래를 듣곤 했다. 그런데 Inner를 들으며 걸으니 세상이 한층 밝아 보였달까. 친구의 말이 내게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나를 끌어내리는 것은 내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오늘 하루의 플레이리스트는 한층 밝은 노래로 채워 넣었다. 그러한 행동이 내 앞으로를 밝은 나날들로 채워줄 것이라는 약간의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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