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밀 Mar 11. 2017

몽환적인 새벽을 위한 노래들

고여 있는 감수성을 흐르게끔

 일어나 보니 새벽 세시쯤. 술을 지나치게 먹고 침대에 녹아내린 날은 유독 이렇게 뜬금없이 깨는 날이 있다. 잠은 달아나 버렸고, 내일은 휴일이라서 억지로 잠에 들 필요는 없고, 술기운은 적당히 없어져서 뭐라도 할 수 있는 날. 스탠드 불을 댕기고 노트북을 열어서 글이나 쓸까 하고 앉는다. 단 음식, 그리고 입을 씻어낼 차까지 내왔다. 글을 쓰기 전에 머리를 깨우고 싶다. 이제 적절한 음악만 더해지면 이 새벽은 완전히 내 페이스다. 그럴 때 어떤 음악을 들을까, 생각해보았다.



1. Honne - Warm on a Cold Night


 "지금은 3시 17분."이라는 라디오 내레이션이 몽환적인 신스 반주의 인트로 아래 깔려 나오며 시작하는 이 노래는, 곡의 제목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기라도 한 듯 듣는 내내 따뜻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추운 밤 이 곡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것만 같은 사운드와 연출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You can keep me warm on a cold night."이라는 가사와 함께, 사랑하는 연인을 예찬하는 가사 역시 따뜻하다.


2. 검정치마 - Hollywood


 영화처럼 아름다운 너와 그런 너를 사랑하는 내가 사랑을 나누는 곳, 그것이 노래 제목에 나온 할리우드가 아닐까. 도입부의 전자악기들의 노트 하나하나가 듣는 이의 기분을 몽롱하게 만드는 이 곡은, 코러스쯤 가서는 완전히 꿈속을 유영하는 기분이 되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몽환적인 멜로디, 그리고 가사와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뮤직비디오가 있다. 이 곡이 마음에 든다면, 뮤직비디오를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영화 속에나 존재할 것 같은 조각 같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꿈속 시점 같은 연출 속에 담겨있다.

오, 지금 밟고 있는
땅이 꺼질 것만 같아
내 손을 놓는 순간
녹아 없어질걸요
넌 영화 속에 살고
그런 너를 지켜보네
조명을 내려줘요

잔털 하나 없는 너의 
가느다란 목에 숨 쉴 때
나 몸이 떨려와
그만큼이나 좋아
하얀 마음 때 묻으면
안되니까 사랑해줘요
처음만 있고요
끝은 아득하네요


3. Maximilian Hecker - Dying


 이 노래의 가사는 "Dying."이 전부이다. 죽어가는 것이 가사의 전부라니, 그것만 생각하면 참으로 기분 나쁜 노래가 아닐 수 없지만, 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감동적인 피아노 선율, 그리고 그 피아노 선율이 잦아들다가 정적에 다다른 순간, 듣는 이를 전율하게 하는 막시밀리안 헤커의 가성. 잔잔한 새벽 밤에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기 딱 좋은 곡이다.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dying+maximilian+hecker

(적절한 영상이 없어 검색창을 링크합니다)


4. Howie Day - Ghost


 제목처럼 유령에 대한 노래. 주온이나 컨저링에 나오는 것 같은 귀신은 아니고, 밤마다 나를 찾아오는 "너"의 유령, 망령에 대한 이야기다. 늦은 밤 옛 애인을 떠올리는 곡. 몽환적인 사운드가 특징인 곡인데, 라이브 영상을 보면 한 대의 기타와 루프 페달만 가지고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하위 데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루프 페달 하면 요새 핫한 게 에드 시런인데, 10년도 전의 하위 데이도 에드 시런에 꿇리지 않는 수준의 루프 페달 컨트롤을 보여준다. 한 대의 기타와 보컬만으로 만들어낸 사운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깊은, 새벽에 어울리는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5. Lana Del Rey - Summertime Sadness


 몽환, 퇴폐 그런 것들이 한데 모여서 사람이 된다면 라나 델 레이처럼 되지 않을까. 외모에 꼭 어울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는 어떤 노래를 부르든 완전히 그녀의 분위기로 - 초반에 라이브 논란이 있긴 했지만 많이 진보했으므로 -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무기. 그런 목소리를 가진 라나 델 레이의 음악은 듣고 있다 보면 괜히 우울해지는 그런 힘이 있다. 감수성 풍부한 새벽과의 시너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6. Sia - Chandelier (Piano ver.)


 목소리 하나만으로 예찬받을 수 있는 여성 보컬이 여기 한 명 더 있다. 인생의 굴곡만큼이나 깊은 호소력을 가진 목소리를 가진 시아. Chandelier는 여러모로 파격적이다. 사운드가 그러하고, 뮤직비디오 역시 그러하다. 원곡의 사운드를 충분히 사랑하지만, 잔잔한 새벽에 듣기에는 약간은 과한 감이 있다. 괜찮다. 피아노 버전이 있으니까. 딱 선선한 새벽 감정을 건드릴만큼의 자극만을 지닌 편곡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쪽짜리 사랑의 노래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