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ㅁ아, 이제 우리 결혼 준비 시작하자.”
2019년 1월 26일, 그와 나의 결혼 준비 시작은 아주 명확했다.
1년 3개월 전 나의 회사 선배이자 그의 동아리 후배였던 주선자를 통해 만난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를 꽤 맘에 들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초부터 줄 곧 이어진 소개팅으로 더 이상의 기대 따위 없던 나에게는 그가 의외로 괜찮은 남자였고, 또 그에게 나는 사진과 실물 싱크로율이 꽤 높았던 정직한(?) 소개팅녀였던 것이다.
그날의 차가운 온도와 새하얀 입김만큼이나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것은 나를 발견하고 번쩍 일어나 의자를 빼주던 그의 첫인상이었다. 눈 맞춤을 위해 내 고개가 살짝 들리는 키 차이, 나보다 한마디는 더 길어 보이던 손가락, 적당히 점잖고 차분한 말투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목소리, 헤픈 웃음까지.
여러 명이 함께 찍은 사진 속 흐릿하게 보이는 몽타주(?)만 대충 보고 나갔던 것 치고는 꽤 괜찮은 남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나의 기대 이상이었던 그에게 나는 생각보다 마음을 빨리 열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17년의 열두 번째 달, 30일간의 가벼운 만남 끝에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주말에 그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으며 한강을 걷고 드라이브를 하는 일들은 매일 늦은 퇴근에 시달리던 나를 해방시키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물론 우리의 지난 1년 사이에는 참 많은 감정 변화들이 있었지만 (언젠가 이 ’ 결혼‘편이 마무리되면, 내 일기 속에 숨겨진 ’ 연애‘편도 함께 꺼내보고자 한다.)
2018년 12월, 함께 있을수록 더 많은 일들을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압도했던 그 달은 '나 이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라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지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나는 오랜만에 서울에서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나의 지방 발령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던 중이던 우리는 홍대에서 나의 절친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이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해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날은 나에게 말로만 전해 듣던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실제로 처음 만나게 된다는 그 사실이 그냥 마냥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셋은 홍대의 카페에서 처음 만났고 대화를 이어 나가던 중 남자 친구는 수리를 맡겨놨던 차를 찾으러 가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오빠 어떤 것 같아?”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차분하고.”
대학 다닐 때부터 늘 붙어 다녔던 그녀에게 항상 나는 많은 결정들을 의존해왔다. 이 옷은 어떤지, 이 음식은 어떤지, 저 식당은 가봤고 저 책은 읽어 보았는지. 물론 최근에는 “이 영양제는 어떠니?” 하는 새로운 질문도 추가로 생겨났다.
그리고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실제로 보니 어때?”라는 낯간지러운 질문으로 또다시 나의 결정에 대한 그녀의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 회사 이야기, 그녀의 두 번째 캠퍼스 라이프, 어제 산 화장품 이야기 등등
그저 평범한 30대 여자 둘이 나누는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수리를 맡겨놓은 차를 픽업 갔던 나의 남자 친구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친구의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이 오빠 왜 안 오지?‘ 하는 걱정과 친구에 대한 민망함도 함께 늘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전화가 왔다.
"ㅁㅁ아, 오빠 수리가 아직 안 끝나서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미안해서 어쩌지. 친구랑 조금만 더 기다릴 수 있을까?”
얼마 전 인터넷을 생각 없이 뒤적거리다 그의 차종이 심각하게 잔고장이 많다는 차주들의 컴플레인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저 “알았어, 얼른 와 오빠”라는 짧은 대답으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어쩌지, 오빠가 좀 늦을 것 같다는데.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럼 우리 근처에 다른 곳으로 자리 옮겨볼까? 이 근처에 공연 같이 하는 카페 있다는데 나 거기 가보고 싶어.”
그녀가 가보고 싶다 말했던 곳은 남자 친구와 내가 그의 생일에 함께 갔던 조그마한 라이브 카페였다. 유명하진 않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애정으로 만들어진 사랑스러운 공간이었다.
“근데, 거기 유명한 사람들은 안 와. 그냥 정말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자기 노래하고 가는 곳인 거 같은데 괜찮겠어?”
혹여나 큰 기대를 가지고 나갔다가 멀리서 온 친구를 추운 홍대 한복판을 돌아다니게 할까 걱정에 나온 말이었다.
“괜찮아, 혹시 별로면 쇼핑하고 하자. 그럼 되지”
그렇게 우리는 남자 친구가 돌아올 때까지 다른 장소에서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그곳에서 ’그‘가 기다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쌀쌀한 서울의 겨울 한복판 속, 우리 둘은 팔짱을 꼭 낀 채 그 카페로 향했다.
카페 입구에 다다를 때쯤, 유리문으로 나와 함께 아카펠라를 하는 팀원 둘이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 ㅇㅇ오빠랑, ㅇㅇ오빠야”
아는 이들의 이름을 외치며 카페 문을 열어 한발 딛었을 때, 그 반대쪽엔 더 많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대학교 새내기 친구들, 언니, 오빠들,, 그리고 내 동생까지.
나와 함께 카페로 온 친구는 무대를 마주 보는 가장 정중앙 자리에 나를 앉혀놓고서 무표정으로 옆쪽 빈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대에서는 어느 아티스트 한 명이 ’ 별 보러 가자’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가 유명해지기 전, 지난 밸런타인데이 연희동 카페에서 찾아낸 ‘우리’의 노래였다.
그리고 그 곡이 끝나자 갑자기 영상 하나가 재생된다.
아, 바로 내 남자 친구의 목소리였다.
“ㅁㅁ아, 많이 놀랬지. 오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 자리를 준비했어,...(중략) 이 마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 많이 했는데, 노래를 부르기로 했어. 한번 들어봐 줄래?”
그리고 익숙한 모습의 그가, 한 손엔 기타를 들고 무대로 나타났다. 특유의 긴장한 표정 그리고 멋쩍은 웃음이 얼굴에 가득한 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첫 소절을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따뜻한 목소리로 ‘모든 날 모든 순간’을 부르는 4분 20초 동안, 그 공간엔 오직 그와 나뿐이었다.
“처음 내게 왔던 그날처럼,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해.”
노래를 마친 그는 카페 한가운데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세상 무엇보다 빛나는 반지를 선물했다.
“ㅁㅁ아, 나랑 결혼해줄래?”
나는 아무리 망설임 없이, 그렇게 그에게 안겼다.
그의 허리를 꼭 안으며, 앞으로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결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해준 이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고, 모두와 헤어졌다.
사실 그때 너무 긴장하고 놀란 탓에 눈물 조차 나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오고 나니 저녁 먹은 것이 단단히 체한 탓에 소화제와 가스활명수를 한껏 들이키고 잠에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헤어지기 전, 그는 어깨를 갓 넘긴 나의 왼쪽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ㅁㅁ아, 이제 우리 결혼 준비 시작하자.”
그렇게, 우리의 시작은 너무 선명하고 따뜻했다.
그렇게, 그때까지만 해도, 나와 그의 결혼 준비는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 낙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