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보다 어려운 말하지 않기

아이시험과 엄마의 자리

by 오진미

말이 점점 어렵다.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사라지는 건 눈 깜짝할 사이지만 가슴에는 오래 남는 까닭이다. 그저 가볍게 내뱉으면 간단한 일이지만 뒤따라오는 여러 일들을 겪다 보면 멈칫하게 된다.


고등학생 아이의 첫 중간고사가 3일간 이어졌다. 중학교 습관대로라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뭐라고 했을 터인데 아무 말이 없다. 처음에는 시험이 어떠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는 그동안의 경험 때문이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오갈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시험을 그럭저럭 잘 봤다면 서로가 웃으면 지날 수 있다. 그 반대는 아이는 언제나처럼 남은 과목을 잘 보겠다거나, 자신의 점수 때문에 엄마가 화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난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별로인 기분을 얼굴빛으로 아이에게 전할 것이다. 그러면서 “남은 시험을 준비해서 마무리를 잘해보자”라거나 “시험이 원래 그래서 어렵지. 다음에는 잘 볼 수 있을 거야”라며 상황을 정리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때 아이는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보느냐는 등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려 할 것이다. 몇 분간 발생할 수 있는 일이 그려졌다. 최대한 진정하려던 나 역시 감춰두었던 감정이 얼굴을 내밀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 잔치가 열린다. 서로의 얼굴은 굳어있고, 얼마 동안 그러고 나면 힘이 쭉 빠진다.

그런 실랑이가 싫었다. 그럼에도 시험 결과가 걱정되니 잠시 예상지도를 그려본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짐작건대 그리 잘 보지 못했으리라는 것. 시험은 끝이 났으니 불편한 상황을 학교에 이어 집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성의 안테나가 작동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보냈다. 마음 한구석엔 정말 현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극도의 궁금증이 생겼지만 넘겨버렸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말을 하지 않으니 편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 평소에는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말 없는 적당한 고요와 긴장만으로도 그 이상의 충분한 의미를 전하고 있음을 느꼈다.


매일 아침에 만나 함께 운동하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엄마는 내 얘기에 놀란다.

“어떻게 궁금해서 참아요.”

스스로 상황에 대해서 정리하다가도 누군가 다른 생각을 말하면 흔들린다. 이때도 그랬다. 묻지 않은 게 신기할 수도 있구나라는 일차적인 느낌에 이어 아이와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는 부모의 얼굴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성장 과정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따라서 여러 가지 장단점이 굳어지고 나타난다. 나 역시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많이 발견한다. 아이에게 그러지 말아야 하면서도 그건 나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미성숙한 엄마이기에 당연하거나 괜찮다고 할 수는 없다. 아직 내게 해결되지 않은 여러 감정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일에 두려움을 갖고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삶을 받아들이는 넓은 가슴을 가질 수 있도록 다스려 나가야 할 일이다. 영원한 미해결 과제가 될지라도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시험이 어떠했느냐고 묻는 일과 그렇지 않은 것보다 그 너머의 것을 바라보는 게 중요한 듯하다. 바로 알고 싶을 때 기다릴 수 있는 담담한 엄마의 모습과 아이와의 관계다. 편해져야겠다는 단순함에서 출발해 며칠 동안 시험 결과를 묻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이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그때에 얘기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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