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 왔어요?”
아이 단짝 엄마 전화다. 매일 등하굣길에 같이 다니는데 오늘은 우리 아이를 기다리다 만나지 못해 혼자 집에 왔단다. 가슴이 쿵 한다. 시계를 보니 집에 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둔 학교로 달려갔다. 계단을 오르며 눈에 들어오는 신발장을 보니 텅 비었다. 이미 아이들은 다 돌아갔다는 얘기다. 교실 문을 열었다. 담임 선생님과 몇 분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좀 일찍 끝났어요. 시간이 좀 지났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다시 학교 도서실에 가보니 그곳에도 없다. 심장은 쿵쾅쿵쾅 가속도가 붙었다. 신발을 신고 학교 주변을 돌아보려는데 전화가 왔다. 정신없는 와중이라 거부했다가 두 번째도 같은 번호이기에 받아보았다.
“엄마 나야. 친구 기다리는데 안 오네.”
“그래 엄마 지금 학교 교문 앞이야. 어디에 있니?”
저 멀리서 가방을 짊어지고 풀 죽은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아이가 눈물을 글썽인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이나 울었다. 때마침 아이의 친구와 엄마도 걱정이 되었는지 교문 앞까지 나왔다.
“야 아, 내가 너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어디 있었어?”
우리 집 아이가 친구에게 한마디 한다.
“나도 너 엄청나게 기다렸어. 그런데 네가 계속 안 오길래 집에 왔지.”
아이를 달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가는 잠깐 동안 아이는 계속 훌쩍이고 분위기가 서먹하다. 아이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입을 굳게 닫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이가 참았던 속내를 터트린다. 한여름 천둥 벼락을 동반해서 몰아쳐 오는 폭우다.
“엄마 내가 얼마나 허탈했는지 알아? 난 계속 기다렸단 말이야.”
친구가 언제 올까 곳곳을 돌며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반 친구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시간까지 헤맨 아이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다 학수고대하던 그가 집에 있었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아이는 울었다 씩씩대기를 반복하더니 진정되어 갔다.
둘은 매일 집과 학교를 함께 오갔다. 학교 가는 길에는 시간을 정했지만 집으로 올 때는 서로의 교실 앞에서 만났던 모양이다. 그러다 우리 아이의 수업이 빨리 끝나서 평소와는 달리 1층으로 내려왔고 그 지점에서 서로 엇갈렸다. 정확하지 않은 약속이 불러온 참사다. 어찌 보면 어디서 기다리자고 분명히 말을 하지 않았으니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날 잠재적 위험성은 도사리고 있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서로 어긋났을 뿐이었다. 기다리던 20여 분의 시간은 몇 시간만큼이나 지루했을 터다. 비슷한 옷만 보여도 친구인가 들뜨다 실망하기를 몇 번이나 했다고 했다. 어떤 일을 반복하다 보면 마치 약속처럼 굳어져 버릴 때가 있다. 시간이 갈수록 우연이 필연처럼 여겨진다. 결국은 타이밍이 맞았던 것인데 약속인 양 여기게 된다. 아이가 경험한 오늘도 그러했다. 친구와 어디서 만나자고 서로가 못 박아놓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탈감’이라는 말에 가슴이 찡했다. 뒤를 이어 돌아오는 분노, 미움도 그려졌다.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어릴 적 병설 유치원에 다녔던 난 오후 한 시를 전후해서 유치원으로 갔다. 그전까지 동생을 돌보고 있었는데 점심 무렵 돌아와야 할 엄마는 항상 늦었다. 밭에서 조금만 더해야지 하는 농부의 부지런함이 작동했던 까닭이다. 원복을 입고 동생을 업고 긴 골목을 몇 번이나 내다봐도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 인기척이 들리면 나가보지만 지나가는 이웃이다. 그러다 마음이 절정을 달려갈 무렵 엄마가 온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그동안 요동쳤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어린 시절 기다림은 정말 지루하고 어렵고 힘들다. 어른조차도 그것을 편안히 마주하기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하물며 아이에게는 어떠했을까. 오해를 낳지 않기 위해 분명해야 할 일이다. 약속은 그런 면에서 확실하게 감정의 소모를 막는 방지책이다.
“이제부터는 꼭 서로의 교실 앞에서 기다리는 게 어때? 그래야 오늘 같은 일이 안 생길 거야.”
간식을 주고 티비를 보며 언니와 얘기하며 아이는 안정을 찾았다.
“엄마 내일 학교 갈 때 만나면 어색할 것 같아. 어쩌지?”
아이는 내일 친구 만날 걱정이 앞선다. 원망스러웠고 미웠던 감정은 날아가고 다시 보고 싶어 지는 모양이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몇 번이고 얘기했다.
다음날 친구도 어제 일이 신경 쓰였는지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친구의 옷을 살짝 봤나 보다. 좀 있다 나가고 싶다고 머뭇거리는 것을 얼른 손을 잡아끌었다. “안녕”하는 말이 어디선가 맴돈다. 잠시 낯설었지만 이내 종알대며 학교로 간다.
아이의 감정 선을 따라가 보았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할 것이라는 이상적인 믿음만으로는 어려울 때가 많다.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정했으면 지켜야 한다고 삶의 시간 동안 배운다. 이런 것들이 원활하지 않았을 때는 부자연스럽거나 실망이 쌓이다 결국에는 이별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약속은 만남과 헤어짐을 모두 포함하는 큰 울타리다. 분명한 게 삭막해 보일 때도 있지만 기다림보다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