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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남편 생일 밥상

by 오진미

전을 부쳤다. 종종 집에 있는 것들로 전을 만들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때는 단지 반찬이지만 지금은 남편 생일상에 오를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매일 밥을 준비하지만 이날처럼 다른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날은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신경이 쓰인다.


남편은 부침개와 같은 밀가루와 기름이 섞인 음식을 좋아한다. 건강한 음식과는 거리가 있다. 생일이니 그의 입맛에 맞추기로 했다. 명태전과 애호박전, 배추전, 동그랑땡까지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다.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최근 들어 자주 먹었기에 생략하기로 했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가능한 것, 넘치지도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는 정도로 절충했다. 그때 생각난 게 전들의 집합이었다.


한두 번 먹을 정도로만 했다. 배추에서 시작해 애호박 다음에 동태전 순으로 했다. 마지막은 동그랑땡이다. 팬도 이번에는 하나로만 하기로 했다. 여러 팬을 쓰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엌이 더 어질러졌고 이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또한 내 몫으로 요리 후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채소로 시작해 고기로 이어지면 팬을 매번 씻지 않아도 요리가 가능하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애호박은 둥글게 썰고 소금을 조금 뿌려두었다. 배추는 쌈 배추로 잎을 떼어내어 마늘 찧는 방망이로 흰 잎사귀 아랫부분을 톡톡 두들겨주었다. 그래야 단단한 부분이 연해지면서 달걀 물이 잘 스민다. 동태 포도 씻어서 물을 빼두었다.

준비한 재료에 부침가루를 적절히 묻히고 나서 달걀 물을 적시고 식용유 두른 팬에 지져내었다. 예전 같으면 전을 뒤집는 일에 집중했지만 적당한 불 세기로 놔두고 한두 번만 양쪽을 익힌다. 그래야 음식도 맛있다.


어느새 집안에 잔칫집처럼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긴다. 전이 접시에 쌓여갈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동그랑땡이다.


다른 때보다 더 간단하게 했다. 두부와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다진 청양고추와 대파만 넣었다. 여기에 양조간장과 굴 소스 매실청, 소금에 참기름을 넣고 적당히 치대고, 둥근 모양을 만들어 두고는 마지막으로 달걀 물을 입히고 팬에 올렸다.


동그랑땡은 다른 전보다 신경이 쓰인다. 고기가 들어간 탓에 속까지 잘 익혀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 제법 손을 빨린 움직인다고 했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식용유가 바닥을 드러내었다. 마트에 달려가 사 오면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딱 저녁에 먹을 만큼만 동그랑땡 열 개를 만들었다.


며칠 일찍 보내는 남편 생일밥상은 해물 된장찌개와 오이 초무침에 전이 올라간 저녁이었다. 많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박하지도 않았다. 어느 때에는 가능한 여러 개를 만들 정도로 음식의 수에 집중하던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처음 가졌던 마음은 음식을 만들수록 피로와 불편함으로 나타나 힘들었다. 그동안과는 다른 밥상은 이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시간 속에서 터득한 일이었다.


진심을 전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문제들이 삐죽삐죽 솟아났다. 이제는 그것보다는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도 괜찮다 여긴다. 음식의 가짓수보다는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함께 나누는 본래 의미를 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생일상을 받는 이를 중심에 두면서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어느 편에 머무는 셈이다.


어찌 보면 조금 부족해 보일 때 여유가 생긴다. 안에서 편해지려는 마음과 내 역할 사이에서 적당한 합일점을 찾았다. 그래서였는지 저녁을 먹고 설거지가 끝난 뒤에도 다른 가족들에게 잔소리 없이 보냈다. 때로는 이런 마음가짐이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기꺼이 할 수 없다면 적당히라는 카드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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