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간의 고민과 결정

긴 글 주의!!

by 박찬학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었다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었다.

어렸을 때 보더콜리 믹스견과 도사 믹스견과 함께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열악하게 키웠다.

다행히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고 쓰지 않는 주방 같은 공간에서 키웠지만

실외견으로 키웠고, 잔반을 주었고, 목줄도 하지 않았고, 낑낑대면 아침에 그냥 대문을 열어주고

다시 낑낑대는 소리가 들리면 문을 열어주고 들였다.


그때는 대부분 그랬다.

강아지 사료라는 것은 아예 개념이 없었을 때였고, 다행히 도시의 골목길이었지만 강아지가 답답해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외출(?)을 허락해주었다.


물론 이 모든 건 대부분 어머니가 했다.

그때의 기억이 안 좋으셨는지 아직도 어머니는 강아지 키우는 것을 싫어한다.


아파트로 이사하며 두 강아지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다.

당시에는 실내견이라는 인식이 흔치 않았다.


그 뒤로 아주 오랫동안 강아지 없는 삶을 살다 한 5년 전부터 강아지와 너무 함께 살고 싶어 졌다

TV 동물농장, 세나개, 그리고 강형욱과 설채현이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과 유명 애견 유튜브 심지어는 고양이 관련 유튜브도 꾸준하게 챙겨보았다.


그럴수록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은 더욱 커졌는데, 많은 프로그램을 챙겨보다 보니 책임감에 대해 더욱 조심해졌다.

아무리 늦어도 8시에는 출근을 해서, 아무리 빨라도 저녁 6시에 집에 들어오는 일상이 주 5일.

아무리 주말과 출근 전, 출근 후에 최선을 다한다 해도 주 5일 하루 10시간을 강아지 혼자 있게 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한 5년을 TV 속 강아지, 유튜브 강아지, 그리고 오가며 만나는 강아지를 위안 삼아 나의 욕망을 억누르며 살았다. 그리고 2차례 정도 유기견 센터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유기견 센터 자원봉사는 자리를 얻기는 정말 너무 힘들다^^;)


프리랜서를 시작한 첫해, 7,8,9월은 끼니도 챙겨 먹기 힘들 정도로 바빴다.

그러다 1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한가해졌다.

그리고 추워서, 일이 없어서, 귀찮아서 집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곰곰이 다시 생각했다.

내가 강아지와 함께 산다면...


다행히 내가 하는 일은 시간당 페이가 높다.

꾸준하게 하루에 3~4시간 정도만 일해도 교사 급여 수준보다 높은 소득을 챙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올해는 새로운 사업을 만들었고, 벌써 700만 원 수준의 첫 의뢰를 받았다.


7월~9월, 11월~12월 초를 제외하고는 충분히 재택근무 및 하루 4시간 이하 업무를 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리랜서라는 고독하고 외로운 삶의 패턴이 힘들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하고 한 달 전부터 강아지와 함께 살 계획을 세웠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를 지키지 못했다.


시츄와 함께 살고 싶었다.

강아지의 품종과 외모를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시츄가 너무 좋았다.

한때 우리나라 최고 인기 견종이었던 시츄는 현재 말티즈, 웰시코기, 비숑, 포메, 푸들 그리고 새로운 하이브리드 종인 말티푸에 밀려 많이 볼 수 없다.


시츄가 좋았던 이유는 가장 우선 외모였다.

그리고 시츄의 고유한 특성인 '데면데면함'이었다.

애교도 없고 무심하지만 독립적이고 그래서 분리불안이 상대적으로 적은 시츄의 그 시크함이 좋았다.


너무 오랫동안 강아지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많이 봐와서 애견샵에서 분양받는 것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한 달을 넘게 유기견 관련한 어플을 통해 입양을 모색해 왔다.

그런데 시츄가 없다.


3월이면 일이 조금씩 바빠질 테고 지금은 하루 종일 강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조건이 날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애견샵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애견샵에서도 시츄를 보기 어려웠다.

2개월이 넘어 3개월이 되어가면 분양가가 떨어지거나 분양을 할 수 없는 애견샵의 사정상 최근 인기가 떨어진 시츄를 데려오지 않았다.

난 개월 수도 성별도 상관없었기에 그저 있기만 하면 되는데 처음 가본 애견샵을 정말 콩알만 한 인기종의 강아지들만 있었다.

원래 목표로 했던 애견샵에는 시츄가 없었고, 비숑을 시중가에 비해 저렴하게 분양해주길래 잠시 흔들렸다.

그냥 어떤 강아지던 끝까지 책임지고 함께 행복하게 지내면 된다는 생각에 종류 불문하고 지금 분양받지 못하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가장 큰 강아지를 분양받을까 하다가 그 애견샵에서 가장 가까운 애견샵을 검색하고 가봤는데 시츄가 두 마리나 있었다.

일주일 차이라는데 한 마리는 정말 콩알만 했고, 한 마리는 다른 강아지의 거의 두배였다.

그런데 난 그 큰 강아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크기 때문인지 그 큰 강아지는 콩알만 한 강아지 분양가의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인기도 없는 시츄, 그리고 다른 강아지에 비해 두 배 가까이 큰 시츄는 한 두주만 지나면 결국 어디로 갈지 모를 것 같은 상황이었다.


다소 겁이 많아 보였고, 위생장갑을 끼고 문을 열고 손을 내미기 유리장 뒤편으로 갔다가 차츰차츰 다가왔다.

집에 와서도 그 아이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리고 쿠팡 로켓 와우를 통해 강아지가 살 충분한 조건의 물품을 구매하고, 아침에 배송된 상품을 뜯고 매트, 쿠션, 집, 패드, 밥그릇, 칸막이 등을 다 설치하고 애견샵을 갔다.

그리고 바로 병원에 들려 내장 칩으로 등록을 하고 강아지와 동거가 시작되었다.

이름은 '뭉치'로 하였다.

덩치도 크고 털도 풍성하고 남자 아이라 뭉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뭉치


강아지가 아니라 천사를 데리고 왔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가장 큰 고민은 분리불안과 배변 문제였다.

그런데 배변을 완벽하게 한다.

패드에만 한다.

그리고 애교 없는 시츄라는 편견을 깨어버린 듯 하루에 세 번 약 20분 정도 비숑이 된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 핥고, 안기고, 내 살을 맞대고 낮잠을 수시로 잔다.



감당할 수 없는 멍뭉미


남자는 민트와 핑크
하루에 세 번 20분씩 정도 갑자기 비숑이 된다. 너무 갑작스럽게 비숑이 되어서 때로는 토끼처럼 깡충깡충 그리고 때로는 빛보다 빠르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



첫날은 데려와 함께 계속 같이 있어고, 어제는 사무실 이전 및 그동안 밀린 업무 때문에 4시간 정도 집을 비웠다. 그동안 강형욱과 설채현에게 배운 대로 나가기 전에 절대 급하지 않게 현관문 앞에 앉아서 나갔다고 온다고 차분하게 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외출을 하고 왔다.

얌전하게 쿠션 위에 앉아있다가 문이 열리자 나를 향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뒤뚱뒤뚱 달려오는데 심장이 뿌셔지는 줄 알았다.


매일 여러 번 5분, 10분씩 정도 나갔다 다시 들어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은 여러 가지 일 때문에 2시간 정도 외출을 하고 왔다


외출을 하고 오면 패드에 오줌과 똥이 가지런히(?) 잘 놓여 있다.

폭풍 칭찬을 하며 급하게 옷을 갈아입지 않고 뭉치가 앉아 기다렸던 그곳에 앉아 10분도 바라봐주고 쓰담어 주고 놀아주고 그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채소도 잘 먹는다.

어제 마트에서 알배추가 맛있어 보여 한 통 사 와서 혹시 몰라 잘게 쪼개 주었더니 잘 먹는다.

시츄답게 식탐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식탐이 많아 채소도 아구아구 잘 먹는다.

오늘은 당근까지 사 와서 배추와 당근을 듬뿍 넣고 사료는 1/2로 줄이고 한 그릇 주었더니 다 먹는다.


배추와 당근을 먹는 아기 강아지라니
개껌보다 당근



내가 뭉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뭉치가 나를 키울 것이다


배변을 잘 가린다.

외출 시 짖음이나 낑낑댐 없이 조용히 기다린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 문을 닫으면 낑낑거리는데 외출 시에는 그러지 않는다

가벼운 외출 시 외투만 걸치고 10분 이내에 잠깐 갔다 오면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샤워를 하고 드라이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좀 길게 인사를 하고 다녀오면 쿠션에 앉아 있다

그리고 채소도 아구아구 잘 먹고

사료 몇 알 가지고 수건과 쿠션 등 숨겨 놓으면 노즈 워크도 잘한다

그리고 배변을 할때마다 똥꼬를 닦아줄 때도 얌전하게 가만히 잘 있는다.


물론 식탐이 너무 강하고

손을 깨무는 등의 입질이 있고

가끔 콩알만 한 똥을 집 안 어디엔가 싸놓고

눈물이 많은 시츄의 특성상 하루에도 여러 번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고

오줌을 밟아 집안에 오줌 발자국이 생기면 휴지와 탈취제를 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닦아야 하지만


늘 내 곁에 머무르고

웃음을 주고 감동을 주고 심장이 뿌셔질 만큼 이쁨을 주고

집에 들어오기 싫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하릴없이 일을 하던 내게

집에 얼른 들어오고 싶어 할 만큼의 기대감을 준다.


물론 더 잘해야 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걸 잘 안다

짖음이나 난동은 없지만 외출 시 한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도 분리 불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직 산책을 할 수 없는 개월 수이지만 접종이 다 끝나면

하루에 여러 번 산책도 시켜야 한다.

늘 건강을 챙겨야 하고

시츄의 특성상 나이를 먹을 수록 다른 강아지에 비해 질병이 많은 그것도 책임져야 한다.


그래도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일상의 행복을 전해준다.


내가 뭉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뭉치가 나를 키울 것이다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상에서 사람에 대한 태도의 부족함을

뭉치에게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뭉치는 날 더욱 좋은 사람으로 가르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