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학 Mar 26. 2016

욕망발견

3월 24일

욕망으로부터 출발하는 진로탐색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라캉은 글을 썼고 김어준은 우리나라에서 졸라 많이 말하고 다녔다. ('졸라'라는 말은 김어준이 자주 사용하는 말로 저와 같은 참교사는 이런 몰상식한 표현을 절대 쓰지 않지만 김어준을 설명하려다 보니 김어준식 표현을 썼을 뿐입니다)


https://youtu.be/1zmnoElezRg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 - 라캉


아이들이 '너무 착하다' 그래서 담임으로서 행복하고 편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착하다'

입학도 하기 전부터(면접 과정에서) 보았던 모습과 이제 담임으로서 만났던 아이들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착하다. 그래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배려에 정말 감동을 받은 적도 있고 벌써 '사랑스럽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하다. 그게 너무도 감사하고 고맙지만 이 착한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담임으로서는 솔직히 마냥 좋지만은 않다.

면접 과정과 담임으로서 첫 대면 때,  '자기반성'과 '자기검열'이 17세라고는 놀라울 정도였다는 게 가장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아마도 이 착한 아이들은 늘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익숙한 언어로부터 그 언어의 의미와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며 사는 정말 훌륭한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그게 내가 느낀 이 아이들의 지나친 '자기반성'과 '자기 검열'의 인상이었지 않나 싶다. 아마도 나와 같은 '기성세대'의 일반적인 혹은 너무나도 익숙한 다소 기계적인 조언이나 충고에 스스로가 더 큰 의미와 부담을 갖고 살아온 것 같다.

진로는 인내와 노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서 그 시작을 찾아야 한다.

라캉이 쓰고 김어준이 '졸라' 말하고 다녔던 말이 그동안 이 아이들의 삶을 지배했던 담론인 듯 싶다.

'타자의 욕망'에 구속되지 않는 나의 욕망에 당당할 수 있는 그래서 그 '욕망의 열정'을 마음껏 뿜어낼 수 있는 아이들이었으면 한다.(물론 담임으로서 그러면서도 여전히 착했으면 좋겠고~^^. 나의 욕망을 욕망하지는 말아라 ㅎㅎ)


아이들은 욕망을 찾아내는데 서툴다


'욕망 발견'에 오랫동안 힘을 쏟아왔던 이우학교 진로교사인 김주현 선생님께 두 번의 전달 연수를 받고 반 아이들과 함께 '욕망 발견' 수업을 함께했다. 역시 아이들은 욕망 발견에 서툴렀다. 대놓고 욕망 발견을 해보라는 시간에 역시 이 아이들은 다소 당황한 듯했다. 아직은 '욕망'이라는 의미가 낯선 시기라는 점에서 어쨌든 서툴고 욕망이 아닌 다른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시작한다는 것에 의미들 두고 싶다. 그리고 역시 이 착한 아이들은 어렵고 당황스럽지만 담임이 하자니까 다들 열심히 해내고 있었다.


학습의 동기 찾기


많은 사람들이 '학습 동기 유발'에 집착한다. 학습 동기만 부여되면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 그 '학습 동기 부여'라는 방식에 '꿈'을 찾아주고 '희망'을 주면 된다는데 그 '꿈'과 '희망'은 대부분 구체적 직업이자 사회적 성공이고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기본적 설정을 '노력'과 '인내'에 두고 있다. 결국 '학습 동기 유발'이라는 것은 지금의 사회가 이야기하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 견뎌야 하는 '인내'와 '노력'의 고단한 과정을 견뎌내는 힘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말하는  '꿈'이라는 것에 부여된 의미의  대부분은 기존 사회에서의 '타자화 된 성공'이며 최소한 타자에게 '부끄럽지'않은 길이다.

 '꿈'은 내 욕망의 실현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인내'와 '고통'이 아니라 '마냥 즐거움'이라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물론 욕망이 '마냥 즐거움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기존의 '동기 찾기'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그냥 지금 17세 아이들의 수준에서 시작되는 '욕망'으로부터 출발해보자는 말을 하고 싶다. '인내'와 '노력' 전에 어설프더라도 '발견'과 '분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착하다


난 '인간의 욕망은 이기적이다'라는 말에는 반대하지만 '자본주의 인간의 욕망은 이기적이다'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지금의 '자본주의'에는 반대하지만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착하다. 그래서 욕망이 '이기적 개인의 욕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학부모와 학교의 힘이 이 아이들의 욕망을 '공공하게' 할 것이고 공동체성을 발휘하는 이타적 자아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타자의 자유와 권리는 보장해주는 바람직한 개인주의적 실현은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리고 학부모님들이 그 정도까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우선은 '욕망의 발견'이고 '욕망의 분출이다'.  최소한 그때가 비로소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나와 학부모님들의 '욕망'을 함께 투여할 수 있는 시점일 것이다.



* 아이들과 이 수업을 함께하면서 이 시기의 나의 욕망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보았다. 그때 나의 욕망은 뭐 뻔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워낙 교사에 대한 불신이 높아서 '내가 너희들보다는 잘가르칠 수 있겠다. 최소한 나와 내 친구들이 지금 이렇게(?) 사는 것 보다는 훨씬 잘 살수 있게 할 수 있는 교사가 되겠다"라는 일종의 반항심이 작동된 마음에서 생긴 복수심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돈을 벌지만 방학이 있는 삶'이 추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대학진학) 시점에서는 위에 말한 것의 기본 바탕에 '좋아하는 여자'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였다. 어차피 역사교육과를 갈 것이고 그렇다면 '좋아하는 여자에게 좀 있어 보일 만한 대학에 가자' 가 내 고3 생활에 가장 큰 학.습.동.기였다. ^^.





https://youtu.be/8X3H0TefSuA



https://youtu.be/JDURIXsIDPc

작가의 이전글 카드 회의록 1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