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위안

by 박찬학



일이 너무 하기 싫은 때

하고 있는 일이 잘되지 않아

미래에 대한 극도의 우울한 전망이 나를 지배할 때

그래서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허우적 될 때

길거리의 폐지 할머니, 할아버지로 부터 위안을 받는다.


평균 노동시간 11시간

평균 소득 하루 만 원.

그 믿기지 않는 암울한 현실을

우리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직접 목격을 한다


그분들을 바라보며

"만 원을 위해 저렇게 열심히 사시는데"라는 자기반성을 하며

지금 나의 시간당 노동의 가치, 노동의 대가 그리고 노동 조건에 감사하며

나의 무기력과 우울함은 날려버리는 힘찬 다짐을 한다.


새벽 시장에 가며 시장의 상인들을 보며 삶의 의욕을 새롭게 찾는다는 내용의 글들은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에 대한 '존경'과 '존중'의 의미를 담아 건강한 글처럼 보이지만

모두 못난 위안이자 배려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위안을 얻을 것이 아니라

그토록 까지 삶의 악조건을 만들어 낸 사회구조에 저항을 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연민, 때로는 존경 그리고 예의 바른 존중 밑에는

누구도 나의 삶의 미래가 저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한 삶의 새로운 자극으로 활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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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1시간.

수 킬로일지 수십 킬로까지 일지도 모르는 하루의 여정은

누구보다 매일 넓은 도시를 배회하지만

하루 만 원의 폐박스에 갇혀 누구보다 좁디좁은 빡빡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분들로 부터 위안을 얻거나 힘을 내지 말자.

그분들이 그 좁디좁은 박스 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싸우자.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을 향해




그림 : 미드저니

글 : 박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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