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의 해외 취업과 직장 생활

by 테레사

중고 신입으로 스타트업에 입사한 지 이제 막 1년이 지났다. 1년 전, 고용계약서에 사인한 날 쾌거를 이뤘다며 남편과 술잔을 부딪히던 기억이 난다. 긴 경력단절을 넘어 해외에서 취업에 성공했으니, 좋아할 만도 했다.


취업 비결이랄 건 별로 없었다. 세상 거의 모든 일이 그렇듯, 운이 좋아서 가능했다. 운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1) 당시 나는 돈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라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생각만 하던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2) 회사에서는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뽑고 있었다.

3) 거기에다가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자격증이 회사 홈페이지에 걸어두기 좋은 타이틀이었다. 서로 얻어걸린 격.

운명처럼 만난 나와 회사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그러다가 위기를 맞았다. 너무나 전형적인 전개인가.


문제는 우리 팀 팀장이 떠난 이후 깊어졌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다 보니, 회사 대표가 내 직속 상사가 되었다. 전문성은 떨어지는 반면, 본인의 뇌피셜을 강하게 믿는 대표 아래에서 나는 업무를 이어가는데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팀장을 새로 고용하겠다는 계획은 말로만 전해질뿐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아있다.


나는 현재 두 사람 몫의 실무를 떠맡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나와 같은 처지의 놓인 다른 팀 팀원의 업무까지 필요시(그 팀원이 공석일 때) 지원해야 한다. 대표는 힘들면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지만, 실무 업무 로드는 그의 '도움'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책임을 맡아 '처리'해 주는 이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나는 경험부족, 자격부족 이슈로 업무를 장악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현재 나에게는 내 업무에 제대로 된 기준과 피드백을 줄 전문성이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그 리더가 부재한 상태로 과분한 책임을 맡고 있어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 고민을 대표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다. 이야기하면 분명 이렇게 반응하며 긁힐 것이다.

"나 못 믿어?"

응, 못 믿겠다 당신의 뇌피셜.


얼마 전에는 투자자와의 1:1 면담이 있었다. 회사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방법을 함께 탐색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일개 직원인 나에게까지 연락을 취해 온 것을 보면 뭔가 냄새가 난다. 투자자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정도로 퍼포먼스가 좋지 않은 것일까. 만나서는 팀 업무 진행방식, 실무자가 겪는 애로사항과 개선안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이 많다는 불평불만은 접어 둔 채로, 새 팀장이 필요하다는 점만큼은 솔직히 전달했다. 과연 변화가 있을까? 모르겠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한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일단 내가 맡은 일을 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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