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와 공생해야 한다면

함께 읽으면 좋을 책, 고미숙의 '위생의 시대'

by 정명진

아홉 살 호승이와 목욕탕에 갔을 때의 일이다. 목욕을 마치고 호승이와 나는 각자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수건 한 장을 다 쓰고도 몸에 물기 몇 방울이 있어서 새 수건으로 닦아 낸 다음, 그 수건으로 호승이의 머리를 말려주려고 했다. 또 다른 새 수건을 사용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의 새 수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호승이는 기겁을 하며 도망을 갔다.


"아빠 겨드랑이 닦은 수건이잖아!"


이 녀석의 위생관념은 대단하다. 집에서도 가족 중 누구가 마신 컵으로는 절대 물을 마시지 않고, 식탐이 최고인 녀석이 누가 먹던 음식에는 입도 대지 않는다. 시골집 마당에서 흙 만지고 놀기를 좋아하는 녀석이 위생관념이 철저해진 것은 지난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다. 학교에서 얼마나 위생교육을 철저하게 시켰는지 손 씻기는 정말 잘한다.


이런 녀석의 습관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에는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다. 하긴 나도 코로나로 시끄럽기 시작하던 1월 말~2월 초까지 태국에 다녀왔는데 귀국 후 혹시나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며칠을 집에서 셀프 격리했다. 무증상에도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호승이처럼 개인 컵과 수저 관리를 철저히 했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에 아이들이 젓가락을 대려고 하면 기겁을 했다.(호승이처럼)


위생이라는 단어가 주목받는 시기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위생에 대해 24시간 내내 신경을 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상 최강의 전파력을 가진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 곳곳에 퍼지고 있다. 가장 강력한 것은 공포다. 그 공포감은 우리의 일상 속 틈새 어느 곳이든 이미 비집고 들어왔다. 사람들 만나기가 꺼려지고, 내가 좋아하는 아침 수영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마스크를 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다녀왔을 때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을까 봐, 내가 옮겼을까 봐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우리는 언제까지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어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갖지도 못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할까? 최근에 고미숙 작가의 '위생의 시대'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런 위생 관념은 근대 시대에 정립된 '위생학'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세균과 바이러스를 박멸하기 위해 이렇게 깔끔을 떨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 상 비교적 최근 일이다.


"일명 병인체론이라 불리는 공통 관념은 19세기 후반 파스퇴르와 결핵균의 발견자 코흐에 의해 정립되었다. 1882년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하고, 1921년 백신이 완성되어 결핵의 예방이 가능해지자, 이를 통해 결핵이 미생물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이 확고해진 것이다." [북드라망, 고미숙 '위생의 시대' 29쪽]


"병이 들면 누구나 특정한 병원체, 즉 세균이 그 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균을 몸에서 제거하거나 도려내면 병이 낫는다고 여긴다. 그런데 정녕 그러한가? 병을 일으키는 것이 정말 병균일까? 잘 알고 있듯이, 서양의 히포크라테스 의학이나 전통 한의학의 경우, '건강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진 상태이며, 질병은 조화가 깨진 상태'로 파악한다. 질병은 환자의 신체와 분리되지 않으며, 환자의 신체는 자연과의 유기적 연관 하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균을 병의 원인이라고 보면, 인간의 신체는 더 이상 자연과의 연관 하에서 파악되지 않고, '계산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기계론적 대상으로 전이된다. 여기서 치료란 당연히 세균이라는 외적 존재의 칩입을 제거하는 국소적 처치에 집중하게 된다." [같은 책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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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들어 정립된 '위생학'은 병의 원인을 병균과 바이러스로 본다. 결국 "병원체에 대한 관심은 청결과 위생에 대한 강박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위생학은 인류가 긴 시간 동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정립해온 전통 의학 지식의 맥을 끊어버렸다. 동양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에서는 몸과 병균의 관계를 다르게 본다.


"몸은 타자들의 공동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몸은 내경과 외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 기, 신, 혈, 몽, 성음, 언어, 진액, 담음, 오장육부, 포, 충, 소변, 대변 등이 그것이다. 참으로 다이내믹하다... 충은 세균을 비롯하여 각종 벌레들을 의미한다. 일종의 침입자 혹은 이주민인 셈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 몸의 많은 부분은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우리의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처럼 우리 몸은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이 득시글거리는 타자들의 공동체다." [같은 책 7쪽]


어차피 바이러스와 세균과 기생충은 우리 몸을 수시로 드나든다. 그래서 '위생학' 이전 시대에는(저자는 이 시대의 의학을 '양생학'이라고 부른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 몸의 전반적인 조화가 깨지면 병적 증상이 드러난다고 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증상 없이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가 몸의 조화가 깨지지 않은 상태가 아닐까. 쉬운 말로 '면역력'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모습과 중첩되는 내용이 있다. 이 책 2장 제목이 '병리학적 테제 1 : 거리를 유지하라'이다.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박멸하겠다는 생각은 '위생학'의 근본적인 교리다.


“병리학이 도래하면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는 견고한 장벽이 세워졌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둘러친 방어벽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그 안에 가두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장벽 안에 갇혀서 사람들은 자연과의 거리, 타인과의 거리, 연인과의 거리가 세련된 도시인의 삶이라고 자명하게 받아들인다...... 임상의학은 말한다. 질병의 원인은 세균이다. 세균은 외부에서 침입한 ‘적’이다. 따라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세균을 박멸할 무기를 개발하면 된다. 그러므로 세균과의 전쟁이 선포되는 순간, 모든 시민들은 이런 식의 논법을 아무런 의심 없이, 전폭적으로 받아들인다...... 의료체계의 보호를 받는다는 안도감에 자신의 몸을 맡겨 버리는 것이다. 졸지에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마스크를 쓰게 하고, 일상적 활동을 전면 보류하게 만드는 이 그로테스크한 상황은 바로 이런 권력의 배치하에서만 가능하다." [같은 책 95쪽]


우리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다. 하지만 인간은 타인과 거리를 둘 때, 홀로 있을 때 생리 기능을 제대로 조율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 책에는 "20세기 초에 무균 육아실의 사망률이 75%를 상회했고, 한 가지 이상의 질병에 걸릴 확률이 100퍼센트 육박했다"는 사례를 전하며, 무균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이 혼자서 생리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뇌과학자에 따르면, 인간의 생리는 (적어도 그 일부는) 열린 고리 구조이기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모든 기능들을 지배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달되는 조절 정보가 체내의 호르몬 수치, 심장 기능, 수면 리듬, 면역기능 등을 조절한다. 이 상호 과정은 동시적으로 진행된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리 기능을 조절하고,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도 조절받는다. 어느 누구도 전적으로 자신의 생리를 조절하지 못한다. 각자의 생리는 다른 사람이 있어야 완성될 수 있는 ‘열린 고리 구조다’" [같은 책 96쪽]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들의 면역력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세균과 바이러스가 병의 원인이라는 우리의 기존 관념을 바꾸기는 너무 힘든 일이다.(이 책을 읽다 보면 기존의 그러한 인식 때문에 납득하기 힘든 내용도 많다.) 너무나 오랫동안 믿어왔던 인간의 확신이다. 호승이처럼 학교와 사회에서 철저하게 교육받으며 세대를 거듭해 자리 잡은 인식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러한 우리의 20세기 근대적 인식을 흔들어 놓는다. 21세기 들어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 19까지, 각종 변종 바이러스가 수시로 우리 삶을 침범한다. 앞으로 이런 변종, 더 강력한 슈퍼파워 바이러스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는 이러한 신종 바이러스들과 인간이 공생하는 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인간의 몸이라는 범위 내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 몸도 조화를 이뤄야 하지만, 환경, 경제, 우리 지구 별의 조화가 필요하다. 그 조화를 코로나가 인간에게 강제하고 있다.


이 글이 지금 국가적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 두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일단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되는 것이 우선이다. 그만큼 인간사회의 조화가 깨진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미래를 살아갈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공생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적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몸을 '바이러스와 세균'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위생학이 만든 환상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공생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다행히 우리 조상들은 그 방법을 터득했다. 내 몸의 조화, 인간 사회와 지구별의 조화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답이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병을 고치기 위해(건강을 얻기 위해)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결국 내 몸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가 면역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생활방식을 재구성되어야 한다.


*메인 이미지 출처 : Photo by �� Claudio Schwarz | @purzlbau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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