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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슈쌤 Jun 29. 2019

[85] 철학자? 수학자?! <데카르트의 이야기>

알.쓸.신.수

안녕하세요. 슈슈입니다. 

오늘은 수학자 <데카르트>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합니다.

여러분들은 <데카르트>가 철학자인줄은 아시지요?

<데카르트>가 수학을 진일보시킨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음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일단, 철학부터 시작해 볼까요?

다음 이야기를 읽어 보시지요.

  

  

<데카르트 아저씨>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아저씨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살았던 프랑스의 철학자입니다.

무엇이든 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던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벗어나 새로운 철학의 출발점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원리를 찾았습니다.

 

안녕?
침대에서 인사해서 미안.
나는 데카르트란다.
잠꾸러기로 보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어.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무엇일까?
.......
그래!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의심하고, 의심스러운 것들을 자꾸자꾸 없애 나가면 돼.
그럼 의심스럽지 않은 것, 확실한 것만 남을 테니까.
먼저 인간의 감각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오해나 착각을 잘하지.
물이 든 컵에 넣은 빨대는 꺾어져 보이지만 사실은 꺾어진 것이 아니야.
먼 곳에 있는 것은 작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지 않아.
인간의 감각이란 참으로 신기하네!
우리 주변의 세상은 어떨까?
이 세상이 만약 꿈이라고 친다면 역시 신기하지.
왜냐하면 꿈이란 것은 깨어난 다음에야 비로소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까.
나는 지금 침대 위에서 이것저것 헤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쟁터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몰라.
그럼 수학은 어떨까?
나는 수학이야말로 학문의 기본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정말 확실한 답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
1 더하기 1은 2.
정확히 맞잖아.
그런데 어쩌면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속여서 1 더하기 1이 사실은 3인데 2라고 생각하게끔 한 것은 아닐까?
아니, 물론 신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지만...
그래도 의시해 볼 수는 있겠지.
아,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하군.
완벽하게 확실한 것은 없을까?
그런데...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한 이유는 내가 의심하기 때문이지.
여기서 내가 의심한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어.
그렇다면 의심하는 나는 분명히 존재하는 거야.
나는 의심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아이고, 피곤해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잠이 온다.
잘 자.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책 中-

 

우리는 기하학, 즉 도형을 다루는 학문과 수를 다루는 학문(대수)을 따로따로 배웁니다. 그렇다면 ‘기하와 대수를 하나로 통일시킬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겠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발견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하학에서 다루어지는 직선, 원, 포물선도 숫자나 기호 또는 문자로 쉽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학문, 즉 기하와 대수를 하나로 묶는 학문을 이라 하는데, 이 해석 기하학을 발견한 사람이 프랑스의 수학자 데카르트입니다.‘해석 기하학’ 

데카르트는 ‘근대 수학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지요. 그가 발견한 해석 기하학은 탈레스나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가 활약했던 그리스 시대 이후 더디게 진행되었던 수학을 진일보시킨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라틴 어와 그리스 어, 철학, 윤리학뿐만 아니라 수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가 철학에서 특히 깊이 생각한 것은 학문을 연구하는 방법의 기초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수학의 전개 방법은 빈틈이 없고 누구나 수긍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데카르트는 수학에서 얻은 지식을 다른 것에 적용하기 위해 우선 수학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데카르트는 누구인가?

 

데카르트는 1596년 3월 31일 프랑스 투랜 지방 투르 근교 라에이의 명문 가정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브레타뉴의렌 시의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지 열네 달이 못 되어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그는 외할머니 밑에서 성장했으며, 어린 시절 무척 허약했다고 합니다. 1606년 여덟 살 때 그는 앙리 4세가 세운 에수회 학교 콜레즈 라 플레시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이 학교에 다니면서 논리학, 윤리학, 물리학과 형이상학, 유클리드 기하학과 새로운 대수학에 이르기까지 아주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파리로 유학 가다

 

그는 라 플레시의 예수회 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와, 조용하고 평화롭게 1년쯤 지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이 학문에 소질을 보이자 유학 시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데카르트는 큰 꿈을 안고 파리로 입성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옛 친구 메르센(1588-1648, 데카르트보다 8년 연상인 종교가이며 수학자)과 재회하여 우정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대수학자인 두 사람은 메르센이 승려직을 떠남으로써 곧 헤어지고 말았으나, 이 교우 관계로 데카르트는 수학 연구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젊은 수학자 시드르주와도 알게 되어 기하학을 배웠습니다. 훗날 수도사 메르센은 수학의 정보 교환 센터의 역할을 한 인물이 되는데, 데카르트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기만 하면 메르센에 의해 삽시간에 수학계 전체에 알려지고 했지요.

  

  

군대에 입대하다.

 

1616년 데카르트는 법률학 학사시험에 합격하지만 풍부한 삶을 경험하기 위해 법학 공부를 계속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귀족 자녀들은 대부분 군대나 교회에 들어가는 풍습이 있어서 그도 아버지의 추천에 따라 군대에 입대하여 기하학의 공부는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수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하여 네덜란드에 출정중인 모리츠 장군 휘하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2년간 군대 생활을 하였으나 휴전 상태였으므로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대부분 수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카엔 대학의 의학자인 베커만과 만나게 되는데, 베커만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당시에 수학과 수리 물리학의 문제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커만의 물리 수학적 연구에 자극을 받아 데카르트는 보편수학의 구상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듬해엔 국왕에 대항하여 가톨릭 계통의 바바리아 맥시밀리안 공이 창설한 군대로 들어갔으며, 그 후 그는 가톨릭 황제 페르디난트 2세의 군대로 옮겨가 프라하 전투에 참전하였습니다. 그는 과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탄도학, 음향학, 투시법, 군사기술, 항해술 등에 많은 연구를 시도하였습니다.

데카르트는 또한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1619년부터 1628년까지 그는 많은 여행을 하였는데 1623년부터 1625년까지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성지순례에 참가하였고, 1626년부터 2년 동안은 파리에 머물면서 수학과 광학을 연구하였습니다. 1628년 겨울에 프랑스를 떠나 자유로운 학문 분위기를 가진 네덜란드로 이주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여러 차례 주거지를 옮기면서 개인 교사로 또는 은둔 학자로 생활을 했습니다.

 

 

꿈에서 발견한 해석기하학

 

데카르트가 해석기하학을 만들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몇몇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꿈에서 나타났다는 것이에요.

1619년 11원 10일, 군대의 겨울막사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 동안, 데카르트는 세 번에 걸쳐 생생한 꿈을 꾸었는데, 이 꿈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꿈이 데카르트에게 대수학과 기하학의 연결인 해석기하학(좌표기하학이라고도 함. 대수 기호 및 방법 등을 이용해 기하 문제를 풀고 해결하는 수학의 한 분야)의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다고 여깁니다.

데카르트가 자신이 꾼 꿈을 토대로 저술한 책은 네덜란드에서 20년간 머무는 동안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때 <<방법서설>>(원제는 <올바르게 이성을 이끌고 과학에서 진리를 찾는 방법에 관한 서설>)이라는 책을 완성하였는데, 이 책은 부록과 함께 1637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방법서설>>의 유명한 세 번째 부록인 <기하학>은 약 1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입니다. 그 당시에는 거의 모든 철학 책이 라틴어로 쓰였는데, <<방법서설>>은 근대 유럽에서 모국어로 철학을 펼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높이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침대에서 발견한 해석기하학

 

다른 이야기는, 침대에서 쉬다가 파리를 보고 해석기하학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파리가 머리 위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다 천장에 앉아 있었는데 데카르트는 갑자기 파리의 위치를 어떻게 나타낼까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인접한 두 벽으로부터 파리까지의 거리를 연결시키는 관계만 안다면 천장에 있는 파리의 위치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리의 위치를 좌표로 나타냄으로써 파리가 움직이는 기을 대수학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소한 파리 한 마리가 데카르트에게 거대한 발견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수의 성질을 연구하는 대수학과 도형의 성질을 연구하는 기하학을 하나로 묶어 연구한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의 발견에 대한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는 파리의 움직임을 보고 평면 좌표를 생각해 냈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잊지 마세요.

  

  

스웨덴 여왕의 가정교사가 되다

 

데카르트의 재능은 그 당시 매우 부유한 나라인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의 귀에 전해졌습니다. 당시 19세였던 젊고 건강한 여왕은 데카르트의 철학에 관심을 갖고 가정교사로 채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내 데카르트는 떠들썩한 환영을 받으며 추운 스웨덴 스톨혹롬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여왕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티나 여왕은 새벽 5시에 공부하기를 원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정각 5시에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바람이 센 광장을 가로질러 궁전으로 들어가 얼음처럼 차디찬 서재에서 여왕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추위에 덜던 데카르트는 스웨덴에 간 지 1년도 못 되어 1650년 54세의 일기로 폐렴에 걸려 이 세상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스웨덴에 묻혔으며, 프랑스인들은 그의 유골을 프랑스로 옮기려고 노력하였으나 실패했습니다. 데카르트가 죽고 난 17년 후에 오른손 뼈를 제외한 유골은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에 있는 지금의 팡테옹(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기념물. 프랑스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인 인물들이 묻힌 성스런 사원이다.)에 안장되었습니다. 오른손 뼈는 당시 유골의 수송을 맡았던 프랑스 재무장관이 기념품으로 보관하고 있다네요.

 

 

카르테지안 평면

 

중학교 1학년 함수 단원을 공부할 때, 모눈종이 위에 (3, 5), (-2, 3)와 같이 모눈종이에 좌표를 이용하여 점을 찍어 본 학생은 너무도 당연한 좌표 사용이 뭐 그리 대단한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일화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천장에 붙어 있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닌 움직이는 물체, 즉 파리라는 것입니다.

파리가 움직이면 x값이 변하면서 y값이 따라서 변화합니다. 만약 파리가 x축, y축이 만든 직각의 이등분선을 그리며 움직이면 이 직선을 식으로 간단히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직선뿐만 아니라 원, 타원, 쌍곡선과 같은 기하학적 도형도 모두 식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과서에 보던 직각좌표의 평면을 데카르트의 라틴어 이름 ‘카르테시우스(Cartesius)'를 따서 ’카르테지안 평면‘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숫자와 평면 위의 점을 연결시키는 것은 그리스 인들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음수를 수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x, y가 양수일 때만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음수까지도 양수와 마찬가지로 수직선 위에 나란히 표기함으로써 음수도 양수와 같이 사용하였습니다.

또 그리스 인들은 a는 선분의 길이를 나타내고, a²은 변의 길이가 a인 정사각형의 넓이를 나타내며 ab라고 쓰면 변의 길이가 각각 a, b인 직사각형의 넓이를 나타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직선×직선=넓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사고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간단하게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길이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또는 그림을 그려서 a²+b²=c²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 사람이 피타고라스는 똑같은 내용을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는 나머지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는 나머지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과 같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곱이란 넓이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a²을 꼭 넓이로만 인식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a라는 길이를 두 번 곱한 길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바로 데카르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직선×직선=직선’이라는 새로운 사고를 하였습니다.


그리스 인들의 사고를 확장시킨 데카르트의 두 가지 생각, 즉 음수도 직선 위에 표시하여 양수와 같이 눈에 보이는 수로 다루게 하고, 제곱은 넓이라는 고정관념으로부터 수를 자유롭게 하여 어떠한 사칙연산도 단순한 길이가 될 수 있게 한 것은 현대 수학뿐 아니라 현대 과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데카르트의 가장 불후의 업적인 해석기하학 덕분에 변화의 개념은 없고 도형의 성질만을 연구하던 유클리드 기하학의 한계가 극복되었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직선이나 곡선이 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 이것이 데카르트의 업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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