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맹 Nov 06. 2020

80년생 김지영의 친구 이야기

미완의 어른으로 세상에 나와 고생이 많아.

친구 혹은 자매, 또는 거울


나에게는 23년 지기가 둘 있다.

원래 그 둘은 서로 친하지 않았는데, 함께 나이를 먹다 보니 그냥 삼총사가 되었다.

나를 가족보다 더, 아니 어떤 때에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내 다행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불행에 가슴 아파하는,

"친구"라는 이름에 다 담기지 않는 마음과 세월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시시콜콜한 연애사부터 정치, 육아, 돈, 부모에 대한 케케묵은 원망까지

우리 대화의 주제에는 선이 없다.

다른 사람과 쉽게 공유하지 못하고 묻어두는 내 못난 열등감과 못된 이기심도

둘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다.

깊은 공감과 함께,

나도 알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

 

셋의 성장과정을 짧게 요약하면

'자기 욕망을 스스로 거세하여 본래 없었던 것으로 체화해가는 과정'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셋의 부모들은 모두

스스로의 생계와 먹이고 입히는 문제에 매몰되어

자식을 서포트하는 다른 일들에 능력과 재주를 가지지 못한 분들이었다.

우리는 모두 큰 딸이었고,

영리하고 조숙했다.


내 욕망을 드러내도 실현시킬 수 없을 게 뻔했으므로

어린 나는 "처음부터 나 그거 별로 갖고 싶지 않았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컸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원하지 않게 될 만큼 자기 검열이 자동화되었다.

진학과 진로 문제를 결정할 때에도 내 분수껏,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그저 상황에 맞게,

졸업 후 셋의 사는 모양은 저마다 많이 다르지만

결국 같은 꼴이다.


자신의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삶의 목표를 정하고

현실에 맞게 스스로의 욕망을 통제해가며 살아가는 게

비로소 어른이라면,

자기 욕망이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고

절제하고 말 것도 없이 이미 거세된 채로 살고 있으니

우리는 미완의 어른인 채로 어른인 체하며 살아왔다.



참 애쓴다.


는 모습 제각각이 되어버린 지금의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셋 다 참 애쓰면서 산다는 것.

답답스러울 만큼 배운 대로 살고,

그게 틀리지 않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그러면서 아닌 척 헐렁한 척 포기한 척

나이 먹은 척하며들 산다.


그중 옥이는 그 정도가 아주 심각하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그녀의 사투는 눈물겹도록 처절하다.

시부모님과 남편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아이들도 잘 자라고 있는데,

그만하면 자기 실속도 차리고 남편에게 호된 잔소리 폭탄도 던지고 아이들한테 소리도 좀 지르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데

그녀는 아주 가끔 툴툴 하고 말뿐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자기가 움직이고 만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 눈에 친구는 완벽한 아내, 엄마, 며느리로 산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례 행사처럼 응급실에 간다.

나는 그걸 두고 "옥이 화병 도졌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친구에게 가정은 공든 탑이다.

그녀의 삶을 통틀어 아름답게 완성시켜야 하는 궁극의 과제다.

너무나 소중해서 손가락 끝으로 한 번 두드려보지도 못하는 인생작이다.


그 공든 탑이 개미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져버릴까 봐

그녀는 스스로 탑을 떠받치고 서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내가 보기엔 너무나 위태로운데,

자기는 좋단다. 행복하단다.



옥이


친구에게는 지금 있는 여동생 말고도 남동생 둘이 더 있었다.

막내는 어릴 적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고,

바로 아래 남동생은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는 동생에게 발달장애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생계를 꾸리기도 힘들었던 부모님이 장애 있는 아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어느 시설에 맡겼고,

그렇게 동생과 가족의 연이 끊긴 걸로 안다.


이십여 년 전 그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나는

친구에게 상처가 됐겠구나,라고 마음 아파는 했지만

그 사실이 구체적으로 어린 옥이에게 어떤 상처로 남았을지에 대하여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장애 아이를 기르다 보니

사는 게 죽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자식의 생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마저 녹록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이를 포기했을까.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더러 했지만,

결코 생각해본 적 없었던 선택지다.

그런데

내 부모님이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참담하다.


옥이는 직접 보았다.

부모가 아이를 포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장애가 있어 버려지는 참담한 상황을.

얼마나 외로웠을까.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가정의 지속성과 가족의 연대를 무한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다.

- 부모의 부존재로 인한 결핍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처럼 가정 또한 내가 잘해야만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함이 밑바닥 어딘가에 깔린다.

나 또한 그 불안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한다.


결혼으로 자기 가정을 꾸린 지 십 년도 더 된 옥이는

어느 만큼 안정이 되었을까.

좀 더, 더 많이, 편안해졌으면.

우리는 결국 미완의 어른인 채로 늙겠지만,

무결점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쯤 가볍게 웃어넘긴

더 자란 어른이 되기를.


친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사실 별로 없다.

내 코도 석자인데 뭐. ^^





작가의 이전글 장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