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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관웅의 tellmewine Apr 04. 2019

13. 무똥 vs 라피트, 로췰드 가문의 백년전쟁

@ 와인, 알고 마실까요? -- 1부 전쟁과 와인

샤또 라피트 로췰드 가문의 제임스 남작(왼쪽)과 샤또 무똥 로췰드 가문의 너다니엘 남작


프랑스 보르도의 1등급 와인 ‘샤또 라피트 로췰드’와 ‘샤또 무똥 로췰드’ 150년이 넘는 자존심 대결     


“사교모임까지 만들어 1등급을 받아보겠다고? 속 보이는 짓, 더는 못 봐주겠군.”     


1953년 ‘샤또 라피트 로췰드’의 오너인 엘리(Elie) 로췰드 남작은 보르도 유명 와이너리 오너들의 사교모임인 ‘오인회’에서 샤또 무똥 로췰드의 오너인 필립(Philippe) 로췰드 남작을 빼 버립니다. 둘은 사촌지간이었지만 ‘라피트’ 오너는 사촌인 ‘무똥’의 오너가 1등급 와인에 오르기 위해 오인회에서 로비를 벌이는 게 싫었던 겁니다.     


오인회는 보르도 1등급 와이너리인 샤또 라뚜르, 샤또 마고, 샤또 오브리옹, 샤또 라피트 로췰드와 유일하게 2등급인 샤또 무똥 로췰드가 낀 오너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무똥의 오너 필립 남작은 번번이 자신의 1등급 상향에 반대하고 이번에는 자신이 주도해 만든 모임에서 자신을 쫓아내자 라피트의 엘리 남작에 대해 다시 한번 이를 갑니다.     


프랑스 보르도의 그랑크뤼 1등급 와인인 샤또 라피트 로췰드와 샤또 무똥 로췰드는 1868년 이래로 150년이 넘게 한치도 양보 없는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습니다. 앙숙도 이런 앙숙이 없을 듯 하지만 두 와이너리의 소유주는 세계 금융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Rothschild, 독일 명 '로췰드')의 한 가문 사람들입니다.      


화합을 가장 중시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이처럼 사촌지간에 시기와 질투, 반목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미스터리 같기도 합니다.    

 


라피트 포도농장(왼쪽)과 무똥의 포도농장


오솔길 하나 건너 있는 샤또 라피트는 1등급인데… 로췰드 가문 사촌 간 반목 시작     

1853년 너다니엘 드 로췰드 남작이 보르도의 ‘샤또 브랑 무똥’이라는 포도밭을 사들여 ‘샤또 무똥 로췰드’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너다니엘은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가장 총명한 그리고 오늘날의 로스차일드 가문을 만든 네이선 메이어의 넷째 아들입니다. 당시 유럽에서 유명한 금융재벌 가문으로써 성공한 은행가인 너다니엘은 이 와이너리를 애지중지했습니다.     


그런데 2년 후인 1855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파리국제박람회를 앞두고 프랑스 와인을 세계 일류상품으로 내세우기 위해 보르도 지역(정확하게는 메독지역)의 와인 등급을 매겼는데 샤또 무똥 로췰드가 1등급이 아니라 2등급으로 매겨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다니엘은 “조그만 오솔길 하나 건너 있는 샤또 라피트는 1등급인데….”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868년 너다니엘의 삼촌인 제임스 메이어가 ‘샤또 라피트’를 매입해 ‘샤또 라피트 로췰드’로 이름을 바꿉니다. 135ha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포도밭으로 1855년 1등급으로 지정된 와이너리였습니다. 매입금액도 무려 4400만 프랑에 달했습니다. 샤또 무똥 로췰드(26ha , 112만 프랑)에 비하면 그 규모나 지불한 가격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순식간에 1등급 와이너리를 손에 넣은 삼촌 집안을 보면서 한 지붕 두 자손들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기 시작합니다.        


  

샤또 라피트 로췰드 1963년 산(왼쪽)과 샤또 무똥 로췰드 2014년


1973년 100년이 넘게 2등급이던 무똥, 라피트 찬성으로 마침내 1등급 올라    

세월이 흘러 1922년 무똥의 와이너리는 너대니얼의 손자인 필립(Philippe) 남작이 이어받게 됩니다. 필립은 와인업계에 혁명을 일으킨 정말 중요한 사람입니다. 1926년부터 샤또에서 와인을 만들어 숙성시킨 후 병입해 판매하는 지금의 시스템을 도입한 사람이며, 1945년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해 와인 라벨에 유명화가의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와인 아티스트 라벨의 원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무똥을 반드시 1등급 와인으로 올려놓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습니다. 이 같은 의지의 표현이 바로 오인회였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와이너리 오너가 파리에 거주하면서 가끔 와이너리가 있는 샤또를 찾은 것과 달리 보르도로 아예 이사를 왔습니다. 이후 1등급 와이너리 4곳의 오너와 함께 대표자들의 모임인 오인회를 만들어 주말마다 파티를 즐기며 우의를 쌓아갔습니다. 그러던 중 사촌으로부터 ‘강퇴’ 당한 무똥은 등급 상향에 대한 열망을 더욱 불태우지만 번번이 무위에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1973년 무똥의 1등급 진입을 반대해오던 라피트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면서 무똥은 꿈에 그리던 1등급에 오릅니다. 그는 얼마나 기뻤던지 이를 표현하는 시를 씁니다. “나는 1등급이다. 과거엔 2등급이었다. (그러나) 무똥은 변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들은 이미 1855년부터 1등급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죠.     



라피트의 엘리 남작(왼쪽)과 무똥의 필립 남작


무똥·라피트 오너 자신들의 와인 서로 대접, 자존심 대결 아직도 진행 중


이후 두 와이너리는 다시 가격 책정을 통한 자존심 경쟁에 나섭니다. 무똥은 늘 라피트와 비슷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높게 책정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라피트 역시 무똥을 따돌릴 계획을 세워 가격을 계속 높였습니다.       


전 세계가 새천년 행사에 들떠있던 1999년 12월 31일 밤 무똥의 여성 오너인 필리핀(Philippine) 남작이 라피트의 오너 에릭(Eric) 남작을 자택으로 불렀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1899년 샤또 무똥 로췰드를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 날 에릭이 필리핀을 초청해 와인을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인은 1799년 산 샤또 라피트 로췰드였다고 합니다. 한 가문 두 와이너리의 자존심 대결은 아직도 진행 중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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