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식물원 가든파티
몇 달 전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업무차 상경했다가 오피스텔 인근에 있는 서울식물원을 찾은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자유롭지 못한 일상에서 억압되고 지친 피로감을 달래며 자유로운 생명의 에너지를 느껴보고 싶은 몸과 마음의 은근한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서울식물원은 마곡나루 역 인근에 조성한 서울 최초의 도시형 식물원으로 영국 에덴 프로젝트, 싱가포르의 보타닉 파크를 벤치마킹한 국내 최대 도심 공원이라는 매력이 더욱 나를 이끌었다.
마곡나루 역에서 우측으로 돌아 공원 안에 뻗어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아직은 완연한 봄이 아니어서 그런지 잎 진 나무와 호수를 가로지른 다리는 왠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공원이 넓고 훤하게 뻥 뚫려서 몸과 마음이 한층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중앙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다 지쳐갈 때쯤 식물원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식물원은 공원과 식물원이 결합된 국내 최초 보타닉(botanic) 공원이자 서울 최초의 도시형 식물원으로, 열린 숲과 주제원, 호수원, 습지원 등 4개 의 특색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원은 온실로 지중해관과 열대 관의 두 곳으로 되어있으며, 호수원은 호수를 따라 수변 관찰 데크가 조성되어 있어 습지식물을 관찰하며 산책하기에 제격이다. 습지원은 서울식물원과 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한강을 조망하며 산책하기 적당한 곳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습지원 북쪽의 한강 보행 연결로는 서울식물원과 한강공원을 연결해 주는 하늘다리로 전망대에 오르면 행주대교와 행주산성, 방화대교, 마곡철교가 만드는 야경도 즐길 수 있다고 하니 다음에는 은은한 조명이 깔린 야간 산책을 해볼까 한다.
식물원 매표소를 지나 온실 안으로 들어서니 바깥은 아직 겨울이 남아있지만, 돔구장 같은 커다란 유리온실 안은 한여름이다. 초록이 가득한 열대 관 안으로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끈적끈적한 습기가 온몸에 느껴진다. 높은 습도로 낀 안갯속에 햇살이 스며들며 비친 풍경이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쉴 새 없이 시원한 물줄기를 품어내는 폭포는 마치 밀림 속을 연상케 하며 자연의 운치를 고스란히 실감할 수 있었다.
식물원 온실 속에 서 있으니, 마치 동남아 열대지방으로 여행을 온 느낌이 들었다. 천정에 주렁주렁 매달린 공중식물 '수염 틸란시아', 천정을 뚫을 기세로 높이 자란 뱅갈 고무나무와 '인도보리수 나무'가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다. 마치 물감을 들여놓은 듯 초록색 꽃 모양의 열대 베고니아와 보랏빛 꽃을 활짝 피운 헬리오 트로피움 등 빽빽하게 들어선 열대 우림 사이로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들의 모양과 색깔에 눈이 취하고 꽃 향기에 취했다. 물푸레나무로도 불리는 올리브나무와 열매에 하얀 솜털이 달리는 병 모양의 '케이비 초다 티' 나무는 유럽의 자연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식물원을 산책하다 보면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한 이후 유명해진 평균 수명이 이천 년 이상이라는 ‘바오바브나무’를 직접 볼 수 있다. ‘바오바브나무’는 윗부분이 몰려있는 줄기의 모양이 마치 뿌리처럼 보여서 신이 거꾸로 심은 나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우기 때 물을 줄기에 저장하고 건기 때 저장한 물을 사용해서 살아간다는 바오바브나무의 지혜가 돋보인다.
또한 건조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아리 모양의 몸통 속에 물을 저장하고 있는 ‘케이 바 물병 나무’와 조로 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 아스터가 퍼뜨렸다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십자가를 만든다고 한다. 생전 처음 보는 희귀한 나무들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특히‘큰 가시연꽃’으로도 불리는 ‘빅토리아 수련’은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아마존에서 최초로 발견한 식물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으로, 활짝 핀 꽃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사람들은 빅토리아 연꽃의 대관식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도심에서 이처럼 넓은 곳에서 다양한 수목과 식물을 한 곳에서 체계적으로 관람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지방에도 수목원이 있어 일 년에 한두 번 수목원을 찾기도 하지만 이곳처럼 다양한 식물은 구경할 수는 없다. 이곳 온실에는 스페인, 이태리, 그리스, 터키, 우즈베키스탄, 호주, 미국, 남아공화국 등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또한 열대와 지중해의 주제별 식물들로 채워져 다양한 볼거리는 물론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 현장을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식물들의 풍경이 혼자 또는 무리 지어 어우러져 있는 곳이기에 이곳에는 계절을 잊고 있다. 갑자기 사시사철 식물원에서 자라고 있는 세계 곳곳의 나무들과 식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잎이나 꽃, 뿌리, 향기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야기하며 어울려 생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식물원의 코스를 나름대로 한 바퀴 돌아보았다. 더위와 습도만 아니라면 똑같은 코스를 몇 번이나 뱅글뱅글 돌아도 몸과 마음이 편안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의 향연 속에 빠져, 식물원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후덥지근한 기운에 밀려 밖으로 나왔다. 야외 공원에서도 호수 주변 산책길과 데크 길을 걸으면서 살아 있는 수변식물과 유유히 헤엄치는 텃새를 관찰하면서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호수원 물가 쉼터의 버드나무는 연둣빛 새싹을 틔우며 봄을 껴안고, 투명할 만큼 맑고 깨끗한 잔잔한 호수는 봄볕에 반짝이는 물빛을 쏟아내고 있다.
날씨만 춥지 않다면 공원에서는 한없이 누군가를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다. 공원 사이로 호수가 흐르고, 걸어가는 곳곳에는 사람들이 한둘이 모여 얼음을 깨는 장난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던 별로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식물원을 돌아보며 처음 만난 특이한 식물들의 이름과 특성을 관찰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식물들이 제각각 자연환경에 따라 진화하며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해온 경이로운 모습을 직접 목격한 일은 내게 소중한 경험이자 또 다른 행복이었다. 서울식물원은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의 삶에 건강과 행복을 더해주는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공간임을 확인하며 가슴속 가득 봄기운을 한껏 맞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