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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선생 Jun 01. 2020

온라인 시대의 국어교육

- 도구를 넘어



온라인, 미래교실 같은 말들이 먼 타국의 언어처럼 들리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수많은 역설 중 하나가 이른바 미래 교실을 성큼 현실화한 것이라 하겠다.


나도 이 흐름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할 수밖에 없었다.. 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다른 기타 선택지는 없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교무실은 모처럼 '수업 도구'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속으로야 어떻게 타들어가든 겉으로만 봐서는 내가 본 가장 활기찬 교무실이다. 하여간 외양으로는 그렇다. 동영상을 제작하고 편집하기 위해 스마트 기기에 관한 정보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의 장단점이 비교되고, 동영상 편집 툴과 자막, 저작권의 문제 등등 교무실은 벼락치기하는 학생들로 가득한 중간고사 아침의 교실 같다. 어찌 되었건 우리 교실에서 Gsuite와 네이버밴드, EBS 온라인 클래스와 위두랑 같은 플랫폼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는 풍경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묘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막상 기술적인 문제와 행정적인 문제를 접어두고 바라보면 우리 교실에서 꼭 필요한 '수업'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안 들리는 듯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형식에 대한 고민은 내용에 대한 고민과 같이 흘러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기존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들린다. -당연히 기술혁신에 매진하다 보면 사상은 뒤늦게 호출되기도 하는 것이겠다만-

우리가 가진 틀에 내용을 꿰어 맞춰야 할 텐데 그럴 고민을 할만한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일단 '온라인'이라는 폭풍 앞에서 그걸 막기에도 급급했으니 말이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난 정말 교직 사회가 자랑스러웠다. 봤어? 이 정도야..)


결국 좌충우돌 온라인 수업을 만들어가기는 해야겠고, 매체의 특성을 좀 살리는 수업도 해보고 싶은..... 별 능력도 없는 인간이 욕심은 많긴 하다.


사실 인터넷 콘텐츠라는 것이 공교육 교사인 내 입장에서 보면 참고할 만한 게 별로 없다. 교육 콘텐츠는 학원이나 EBS의 강의가 전부인 형편이고 얘네들은 그냥 학교 교실 강의에서 유머와 재미를 반쯤 제거한 강의 버전이다.


강의라는 형식이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업 도구는 분필과 칠판, 그리고 학생들 앞이라는 공간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강자와의 교감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대략 이걸 라포(rapport)라고 부르는데 이게 없으면 강의는 성공하기 어렵다. 물론 훌륭한 강연자는 강연 도중 단숨에 이걸 형성하는 기적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그건 꽤 예외적인 경우다. 사교육 유명 강사들 몇몇은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과 일반적인 교사들을 단순 비교하면서 공교육의 무능 운운을 말하는 것은 억울한 면이 있다. 이런 라포 형성 능력은 엄청난 재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라포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법이다. 만약 이게 없다면, 역시 유명세에 기대야 한다. 누군가의 선망의 대상, 그러니까 일종의 셀레브리티(celebrity)들은 라포 없이도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수강자의 강렬한 동기에 의한 강의 역시 성공하는 강의가 될 것이다. 사실 수강자의 강한 동기보다 더 성공적인 강의 수업은 없다. 그들의 열망과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데 상호작용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교사인 내가 저런 엄청난 능력으로 강의를 해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 깨우는 게 일인 일반고 교사에게 인터넷 강의는 난이도 최상의 미션이다. 자, 뛰어난 강사들의 수업은 눈길도 주지 말자. 가랑이 찢어진다. (매일 수업 시간마다 이렇게 애쓰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읍소하는 처지에 인터넷에서까지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인터넷 영상 콘텐츠의 특징이라면 아무래도 구독자의 선망과 크리에이터들의 자아 확장이 만나는 묘한 긴장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 쇼를 대체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들은 내가 20세기 말에 배웠던 포스트모던을 정확히 구현하고 있다. 수많은 취미와 열광. 누구나 생산자, 아니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 기존의 텔레비전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즐기는 유희. 그러니까 시쳇말로 덕후들의 자유로운 덕질의 세상. 인기 있는 크리에이터는 그들을 선망하는 구독자를 만나게 되고, 유명해지고, 구독자들은 그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자신의 세계를 다시 구축하고.. 이 끊임없는 재생산이야말로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의 특징 아닌가... 그런데 학교의 수업이 인터넷에 슬며시 끼어든다고? 아무리 봐도 안될 것 같다.


채널은 선택될 뿐 강요할 수 없다. 이것이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으로 들리더라도 별 수 없다. 이미 우리가 사는 시대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하기 힘든 시대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유로운 소비와 자유로운 선택이 모순되지 않는 시대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다음에 하자. 일단 나는 수업을 만들어야 하니까. 학생들에게 선택될만한 수업. 아니지, 학생들이 호기심과 그나마의 흥미를 느낄만한 수업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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