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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 독자 Jun 01. 2024

아무 날도 아니지만, 축제입니다.

5월 17일 화요일, 과나후아토에서 만난 그냥 퍼레이드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나라에서 정한 공휴일이나 기념일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날이 아니었다. 그런데 불현듯 거리 가득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길 양 옆으로 나란히 모여 선다. 곧이어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이내 내 눈앞엔 알 수 없는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무슨 축제지?'


  대체 무엇을 위한 행사일까 싶어 함께 구경하던 현지인에게 물어봤는데 <그냥 퍼레이드>라고만 말해 준다. 그들도 모른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냥 즐길 뿐! 그렇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그냥 신나니까.


  퍼레이드의 행렬은 길고 길었다. 안무를 맞춰 군무를 하며 행진하는 무리도 있었고 교복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의 무리도 있었다. 멕시코 어느 토착민으로 추정되는 고유의 옷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머리 위 깃털 장식이 포인트였는데 깃털은 부채꼴 모양을 한 채 하늘 높이 솟아있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을 오직 멕시코에서만 볼 수 있는 어느 부족의 이국적인 전통 복색이었다.


  한 무리는 모두가 독특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과거 멕시코에서 유행했을 법한 현지인 특유의 의상을 입고 행진했다. 그들의 의상 중에는 멕시코 밴드 '마라아치'의 모습을 한 이도 있었다. 챙이 넓고 위가 뾰족한 마라아치 특유의 복장인 '솜브레' 모자는 우리에게도 제법 익숙한 멕시코 전통 모자다. 그 무리의 가면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이 모두 각양각색이었는데 양쪽 이마로 뿔이 두 개 달린 악마의 탈을 쓴 이도 있고, 멕시코 전래동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할아버지 가면을 쓴 이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가 한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능수 능란하게 채찍을 휘두르며 관람객을 놀라게 헸다. 그 손놀림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채찍을 휘두르며 관객을 쥐락펴락 농락하는 쇼맨쉽과 리듬을 타는 몸짓이 어찌나 능숙하고 전문적이던지. 놀랍게도 그들은 내 허리춤 정도되는 키의 작은 어린이들이었다. 나중에 가면을 벗었을 때 나타난 꼬마 아이의 반짝이는 얼굴은 채찍을 휘두르던 전문가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전되는 모양새로 나를 한번 더 놀라게 했다.

 

  다양한 무리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퍼레이드의 사이사이에는 대여섯 팀의 관악대들이 끼여 거리를 활기로 가득 채웠다. 흥겹게 두드리는 북소리 덕분에 뜨거운 도시는 생생한 기운이 넘친다. 트럼펫의 경쾌한 울림은 구경하는 이의 즐거움 또한 한 껏 높여주었다.


  퍼레이드에는 과나후아토의 택시들도 함께 행진을 했다. 택시들마저 하나같이 예쁜 옷을 갖춰 입은 모양새다. 주렁주렁 색색의 풍선을 단 택시도 있고 커다란 인형들을 올려 꾸며둔 택시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꽃으로 치장한 택시도 있고 원뿔형의 고깔모자를 쓴 모양새의 택시도 있었다. 어떤 택시는 성모마리아 동상을 중앙에 세워 찬란하게 장식해 두기도 했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흥겨움이 연이어 줄을 짓는다. 중간중간 특별한 복장이 아닌 일반적인 옷차림을 하고서 퍼레이드의 행렬을 따라가는 무리도 있었다. 그들은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이들(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주고 있었다. 정체는 사탕과 초콜릿 같은 작은 간식이었다. 내게도 후하게 나눠주길래 하나, 둘 받다 보니 어느덧 나도 한 주먹 가득 차게 모았다. 멈출 줄 모르는 즐거운 퍼레이드에 아이들의 두 손은 점점 무거워진다. 간식꾸러미를 가득 채운 봉지를 들고서. 넘치는 간식들을 보물처럼 꼭 쥐고 있는 아이들의 조그마한 손에서 기쁨이 넘쳐흐른다. 그걸 보고 있는 내 마음속에도 기쁨이 물들어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퍼레이드는 보통의 날을 <축제의 날>로 만들어 주었다. 즐거운 이 행렬은 그 자체로 이미 <피에스타>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뿌듯한 자부심과 보람이 가득해 보인다. 고로 그들은 행복하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그 흥겨움에 취한다. 그래서 또 행복하다. 모두가 행복한 축제. 그러나 이유는 딱히 없는, 알 수 없는 피에스타. 아무렴 어떤가. 참여하는 이들도, 보는 이들도 행복하면 그만. 덕분에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지만,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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