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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Sep 01. 2018

혼자서도 의연하게 걸어갈 수 있을 때

수시로 사직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있었다. 와이(Y) 

나보다 먼저 공직을 그만두고 잘 살고 있던 친구. 

사직과 관련해서 그 아이와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었고

사직 후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면서 온갖 정보들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오늘 그 아이한테서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된다. 현재 사직이 아닌 질병휴직 상태라는 것

이게 뭐지? 난 이 아이가 사직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아직도 공무원이었다니...


도대체 어떤 근거로 사직했다고 굳게 믿었던 걸까?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 아이도 처음엔 사직하려고 했다.

나처럼 육아휴직 후 복직을 했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힘들어했고, 병원을 다녀야 할 정도로 정서불안과 공황장애에 시달려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사표를 쓰려고 했으나, 부서장의 끈질긴 설득 끝에 질병휴직을 했다.

분명 들은 얘기인데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 마음은 이미 사표 쓴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사직에 대해 갈등하지 않았고 사직 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을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그 아이는 전공을 살려 영어 번역을 하기 위해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 아이와 오랫동안 얘기하다 보니 휴직 중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자기는 돈이고 뭐고 회사 근처에는 숨이 막혀 갈 수 조차 없어 사표를 쓰려고 했으나 부서장이 본인을 불쌍히(?) 여겨 굳이 질병휴직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좋아지면 다시 돌아오라고...


평생 다리 한번 부러져 본 적 없는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공무원은 질병휴직 기간 동안은 월급의 70%가 나오고 연금도 회사에서 내준단다

그래서 한 푼이 아쉬워 질병휴직을 했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사표 쓸 거라고...

배신한 사람은 없는데 나는 왜 배신감이 드는걸까?




뭐냐, 이거??

그런 넌 질병휴직 끝나고 상태도 많이 호전되면 다시 복직할 수도 있겠네??

난 너를 보면서 내가 가려는 길의 하나의 증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가 어째? 




아픈 애가 돈이 없어 질병휴직 중이라는 그런 생각을 한다.

"야, 그럼 넌 진정한 동지는 아닌 거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


그랬더니, 진정한 동지 맞다. 지금 돈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만 정말 한걸음도 회사 근처엔 갈 수조차 없었다.

언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다.-친구처럼 지내지만 나보다 한 살 아래다-

언니야말로 진정한 동지 아닌 거 같다.


나한테 그렇게 항변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데 무슨 잘못한 사람처럼 반응하는 와이


난 너를 보면서 은근히 안심하고 있었던 거구나.

누가 사직을 했든, 휴직을 했든 흔들림 없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아직 그 단계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조금 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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