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사직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있었다. 와이(Y)
나보다 먼저 공직을 그만두고 잘 살고 있던 친구.
사직과 관련해서 그 아이와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었고
사직 후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면서 온갖 정보들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오늘 그 아이한테서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된다. 현재 사직이 아닌 질병휴직 상태라는 것
이게 뭐지? 난 이 아이가 사직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아직도 공무원이었다니...
도대체 어떤 근거로 사직했다고 굳게 믿었던 걸까?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 아이도 처음엔 사직하려고 했다.
나처럼 육아휴직 후 복직을 했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힘들어했고, 병원을 다녀야 할 정도로 정서불안과 공황장애에 시달려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사표를 쓰려고 했으나, 부서장의 끈질긴 설득 끝에 질병휴직을 했다.
분명 들은 얘기인데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 마음은 이미 사표 쓴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사직에 대해 갈등하지 않았고 사직 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을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그 아이는 전공을 살려 영어 번역을 하기 위해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 아이와 오랫동안 얘기하다 보니 휴직 중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자기는 돈이고 뭐고 회사 근처에는 숨이 막혀 갈 수 조차 없어 사표를 쓰려고 했으나 부서장이 본인을 불쌍히(?) 여겨 굳이 질병휴직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좋아지면 다시 돌아오라고...
평생 다리 한번 부러져 본 적 없는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공무원은 질병휴직 기간 동안은 월급의 70%가 나오고 연금도 회사에서 내준단다
그래서 한 푼이 아쉬워 질병휴직을 했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사표 쓸 거라고...
배신한 사람은 없는데 나는 왜 배신감이 드는걸까?
아픈 애가 돈이 없어 질병휴직 중이라는 그런 생각을 한다.
"야, 그럼 넌 진정한 동지는 아닌 거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
그랬더니, 진정한 동지 맞다. 지금 돈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만 정말 한걸음도 회사 근처엔 갈 수조차 없었다.
언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다.-친구처럼 지내지만 나보다 한 살 아래다-
언니야말로 진정한 동지 아닌 거 같다.
나한테 그렇게 항변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데 무슨 잘못한 사람처럼 반응하는 와이
난 너를 보면서 은근히 안심하고 있었던 거구나.
누가 사직을 했든, 휴직을 했든 흔들림 없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아직 그 단계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조금 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