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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Sep 03. 2018

사표를 말하는 시점, 방식 그리고 이유

사표를 말하는 시점


사표를 말하는 방식


사표의 이유



내 직장생활에서 사직이 큰 이슈를 차지하다 보니

사직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도 많아지고 나름의 철학도 정립되었다.


사표를 말하는 시점, 방식 그리고 이유




사표를 말하는 시점


소위 '사표 그 후'류의 글 중에 '어느 날 갑자기 이건 아니다 싶어 다음날 당장 사표를 쓰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는 내용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와 멋지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인사부서나, 자기 부서장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할까? 후임자가 오기 전까지 일단은 그 사람이 진행하던 일을 동료들이 나눠서 해야 하니 그 또한 민폐가 된다.

공무원 조직에서도 정년이 아닌데 원에 의하여 사직을 하는 경우를 아주 가끔은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누가 인사과에 가더니 사표를 던졌다. 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고 최소한 한두 달 전에는 의사표시를 하고 정해진 절차를 밝아 사직처리를 한다.

사직하고 싶다고 맘대로 사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사직서를 제출하면 인사부서는 경찰청, 검찰청, 감사원에  이 사람의 사직처리 제한사유가 있는지를 조회하는 문서를 보낸다. 경찰이 조사 중인 사건이 있거나,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 있거나 감사원에서 감사 중인 사건이 있으면 그 결과에 따라 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최종 사직처리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사기업체에서 일해본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한 그 해, 그룹 비서실에서 일했었는데 짧은 인턴과정 후에 너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겨우 인턴 경험이 다였던 나는 사회초년생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들고 나기 쉬웠던 사기업체의 특성상 그런 갑작스러운 사직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해서 이제 중년의 나이, 공무원 생활 15년에 달하는 나는 이것저것 주변 사람들과, 부내 입장도 고려하고 절차도 지키는 정도의 깜냥은 생긴 듯하다.


나에게 사표를 말하는 시점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였다.


나는 여유가 있을 때 말했다.

8월에 과장님과 과장님과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 입장에서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할지 인생선배에게 상담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그건 어느 정도 나중에 실제 퇴사 결심을 말씀드릴 때의 충격을 대비해서

일부러 완충제를 깔아놓은 것이었다.


그래야 그나마 여유 있는 상황에서 동료들과 지금 상황에 대한 마음을 나눌 수도 있고

왜 하필 이렇게 바쁠 때 사직해야 하나?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거 아니야?

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남기지 않을 거 같았다.


그리고 회사생활이 여유가 있어 살만함에도 불구하고 퇴사하고 싶은가?

그럭저럭 지내도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데 퇴사하고 싶은가?

하는 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사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표 너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결정한 거야

난 너를 가볍게 대하지 않았어

난 너에게 최선을 다했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사표를 말하는 방식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

직장을, 특히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을 그만둔다는 것은 인생이 걸린 문제

대한민국 공무원들 모두 나랏밥 먹으면서 결혼해서 아이 낳아 가정 꾸리고 여기저기 사람 도리 하면서 산다.

이들의 삶의 터전인 이 곳을  너는 뭐 그리 잘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놓느냐는 오해를 남기지 않는 것

그리고 나 자신도 좀 더 신중하결정하는 것

앞서도 말했는데 나는 과장님에게 상담을 받았다.

말이 상담이지 사표와 관련한 나의 깊은 속마음을 모두 내비치고

이젠 언제 퇴사하고자 하는지 날짜를 말씀드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만들어 두었다.


어떤 다른 계기로 과장님에게 톡을 보내면서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과장님 중요하게 상의드릴 말씀이 있는데

언제라도 좋으니 잠깐만 시간 좀 내주세요'


그렇게 나는 과장님과 사직에 대해, 일에 대해,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과장님은

'그래도 고맙다. 야, 이렇게 말해주어서'라고 하셨다.


내가 바랬던 또 한 가지

당신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평생을 보냈던 공직을 이제 나는 떠나려는 마음 가득하지만

나는 당신과 같은 인생을 사신 분들의 삶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직은 분명히  좋은 직업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제 저는 다른 길을 가고자 합니다.


일단 나는 win-win 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사표의 이유


8월 당시, 과장님에게 사표와 관련하여 상의할 때는

딱히 내세울만한 사표의 이유가 없었다.

조직사회가 영 맞지 않아서요

글 쓰는 일 하면서 평생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고 싶어요

같이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뜬구름 잡는 얘기는 사람만 우스워 보인다.

인생 고달픈 거 모르고 배부른 소리 하고 있구나 생각하기 십상이다.




과장님
저 공무원 그만하고 글 쓰는 일 하면서 살려고 해요

이미 책도 나왔고요

두 가지 일을 병행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공직과  작가와 육아까지 모두 병행할 수는 없어요
여유롭게 살고 싶어요. 사직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팩트만 말하고 싶었으나 그 정도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나는 워킹맘이라면 가장 이해하기 좋은 주제

'아이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

가장 흔하고, 이해하기 쉽고 사실 핑계도 아니다.


마땅한 이유가 없어 그렇게 운을 떼기는 했으나

사표는 반드시 아이들, 남편, 집안 상황. 이런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어서, 이젠 다르게 살고 싶어서, 이젠 준비가 되어서'이고 싶다.


그리고 최종 면담 때는

'과장님 매일 여기 앉아서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의심하면서 평생 살 수는 없어요

좀 더 의미 있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아이들과 많은 시간 보내면서 소소하게 글만 써도 의미 있을 거 같아요

제 인생 제가 디자인하고 싶어서 공무원을 그만두고자 합니다.'

이렇게 말하기 위해


이젠 뒤돌아보지 않고

오늘도 부지런히 끄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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