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험지

쪽지 육아

by 고도리작가

금요일 미술수업이 있는 날

아이가 평소보다 1시간 30분이나 빨리 왔다

뭔가를 손에 움켜쥐고 뛰어 온 듯 얼굴이 벌겋다.



"빨리 왔네?"

아이는 실망한 표정이다.

"왜 빨리 오면 안 돼?"

"응? 아니... 미술은?"



순간 헉하더니

손에 움켜쥐었던 걸 던져버리고 다시 뛰어 나간다.



뭐야? 싱거운 놈

이건 뭐지?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보니 시험지다.

만점짜리 시험지 2장

저번에 시험치르는 지도 모르고 봤다는 시험지



그랬구나

그래서 그 좋아하는 미술수업도 빼먹고 뛰어왔구나

엄마한테 보여주려고 에고 이놈



학교에서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부터

엄마만 생각했겠다. 보여주려고

학교 앞 좋아하는 슬러시도 안 보이고

친구가 부르는 소리도 안 들리고

우리 집 아파트만 바라보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뛰어왔겠구나



아이는 자랑스러운 일이 생기면 엄마가 제일 먼저 떠오르나 보다

에고 미안해, 못 알아봐서

그리고 잘했어 사랑해~~






이 글이 언제 적 글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미술 방과 후 수업을 받을 때니까 3학년 전인가 봐요

그 아이가 지금 6학년인데 다시 보니 참 새삼스럽습니다. 저렇게 귀엽던 시절이 있었다니요


학교에서 보내는 온라인 알림장에 며칠 전부터 네 과목 수행 평가지와 수학 단원평가 시험지 부모님 사인 꼭 받아오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나는 사인한 기억이 전혀 없어서 오늘 새벽에 아이방에 살짝 들어가 가방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간 치렀던 각종 시험지만 가지런히 모아둔 파일철이 보입니다.

사인한 것도 있고 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10장도 넘는 시험지가 1개 빼고 모두 100점입니다.

국어시험만 1개 틀리고 나머지는 모두 100점입니다.

시험 잘 보았다고 자랑하는 게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에게 시험지 다 사인했다며 다 100점이더라 했더니 시큰둥합니다.

'그거야 뭐 웬만하면 백점이지 뭐...'

그러더니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에 친구랑 만나기로 했다며 막 뛰어 나갑니다.


더 어릴 땐 시험 100점 맞았다고 좋아하는 미술수업도 잊고 바람같이 달려오더니 지금은 엄마보다 친구와의 약속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나 봅니다.


시험지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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